책은 또다른 프로듀서
책 한 권이 열어주는 세상
-책은 또다른 프로듀서
책은 언제나 저의 또다른 프로듀서였습니다. 새로운 기획을 떠올릴 때마다, 그 중심에는 늘 한 권의 책이 있었죠. 책은 저에게 세상을 해석하는 언어를 가르쳐주었고, 때로는 삶의 방향을 다시 편집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누군가의 문장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도, 결국 그 문장이 저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연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언어와 이야기의 역사입니다.
불을 발견하고 농경을 시작한 일만큼이나, 문자를 만들고 기록을 남긴 순간은 인간 문명의 방향을 바꿔놓았습니다.
한글의 창제는 그 대표적인 사건이었지요.
백성들이 스스로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었을 때, 그들의 세계는 비로소 달라졌습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서문은 단순히 글자를 설명한 문장이 아니라, 언어가 곧 삶의 권리임을 선포한 선언문이었습니다.
책은 그런 언어의 결정체이자 사유의 완성된 형태입니다. 한 권의 책은 작은 우주이며, 그 안에는 언어와 감정, 시간과 사상이 층층이 쌓여 있지요.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기도 합니다. 최인훈의 『광장』이 그랬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읽는 이의 마음에 깊은 파문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지만, 사실 책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은 사람이 변하고, 그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그렇게 보면, 책은 결국 우리를 연출하는 또다른 프로듀서입니다.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저는 자주 불안했습니다.
작은 도시의 라디오 PD로서, 내가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곤 했지요.
그때 우연히 다시 펼친 책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절벽 끝에서, 그래도 희망을 말해야 했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대학 시절엔 그저 ‘꼭 읽어야 할 시대의 소설’쯤으로 읽었지만, 현장에서 시민들과 부딪히며 다시 읽으니 그 문장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그때의 문장은 더 이상 문학의 언어가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방송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습니다.
“시민들의 삶을 담아내는 일” ― 그것이 제가 지켜야 할 직업적 양심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또 하나의 전환점은 서경식 교수의 『디아스포라 기행』이었습니다.
그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주류’가 아닌 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낯선 도시에서 방송을 이어가던 저의 모습과 겹쳐졌습니다.
‘나는 비록 작은 도시의 PD이지만, 이곳에서 시민들과 연결될 수 있다.’
그 확신이 생기자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그 무렵, 시애틀 공공도서관의 사서 낸시 펄이 던진 질문을 읽었습니다.
“모든 시민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그 문장은 내 안의 ‘설렘 스위치’를 켰습니다.
그 설렘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었습니다.
저는 독서운동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교수와 사서, 공무원을 찾아다니며 설득했습니다.
“이 도시에도 ‘원북원시티(One Book One City)’ 운동이 꼭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철없는 아마추어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심은 전해졌습니다. 전문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시민이 함께 한 권의 책을 읽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책이 나를 움직였고, 내가 다시 도시를 움직였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저는 방송 분야에서는 전문가였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철저한 아마추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아마추어리즘이 저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책축제를 기획할 때도, 저는 전문가에게 배우며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덕분에 오히려 더 진심 어린 기획이 가능했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사이드는 『지식인의 표상』에서 이렇게 말했죠.
“지식인의 길은 전문가주의가 아니라 아마추어리즘에 있다.”
아마추어란 단순히 비전문가가 아니라, 애착과 양심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뜻합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전문가주의의 한계를 경험했습니다. 지식과 권력을 독점한 전문가들이 자신들만의 리그를 지키려다 사회는 멈춰 섰고, 시민의 삶은 소외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마추어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외쳤고, 세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서경식 교수가 사이드의 글을 통해 지식인의 본질을 되새겼듯, 저 역시 『지식인의 표상』을 통해 ‘아마추어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책은 저의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지방의 한 PD가 공적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문가는 필요하지만, 전문가주의는 위험합니다. 오직 아마추어의 감수성과 양심만이 권력과 이익을 넘어 인간다운 세상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책 한 권은 우리에게 바로 그 아마추어적 양심을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책은 언제나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방송을 기획할 때도, 시민과 연결될 때도, 책 속의 문장이 내 안의 ‘설렘 스위치’를 켜주었습니다.
이제 다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 한 권은 무엇입니까?
그 책의 문장은 지금,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나요?
혹은 아직 그런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책이 당신 안의 설렘 스위치를 켜는 순간입니다.
언젠가 책 한 권이 당신을 불러내어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아마추어의 끈기와 진심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마추어리즘을 지켜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 한 권 속 오래된 문장을 마음에 품는 일입니다.
당신은 어떤 책과 함께,
어떤 세상을 열어가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