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지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나의 꿈은 도서관장
― 도시의 지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회 구성원의 수만큼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저는 그중 하나가 ‘도서관장이 존경받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이 꽂혀 있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곳은 공동체의 지혜가 모이는 공간, 시민의 광장,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책이 숨 쉬는 도서관에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놓이고, 그 다리 위에서는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그렇다면 그 도서관을 이끌어가는 사람, 도서관장은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도시의 지성이자 문화의 길잡이여야 하지 않을까요?
책을 통해 도시가 성장하고, 지식이 공유되며, 공동체가 함께 호흡하는 세상.
그 시작은 어쩌면 도서관과 도서관장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방송을 하며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작가 인터뷰, 낭독, ‘책읽는청주’ 선정도서 퀴즈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압록강은 흐른다』로 치른 첫 번째 책 축제였습니다.
오랫동안 꿈꿔온 책 축제를 현실로 만들어낸 그날, 저는 책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날, 책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고, 시민들은 책을 매개로 이야기하며 서로을 알아갔습니다.
첫 번째 축제의 열기를 이어 두 번째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배틀북스’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캐나다 CBC의 <Canada Reads>를 벤치마킹한 프로그램으로 ‘지금 우리 도시가 함께 읽어야 할 책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독서 토론 배틀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습니다. <Canada Reads>는 매년 “캐나다 사람들이 지금 봐야 할 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네 번에 걸친 치열한 토론 배틀을 벌여 한 권의 책을 선정합니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하게 즐거웠고, 동시에 진지했습니다. 책이 한 개인만의 독서 대상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관심과 화두가 되는 장면은 가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시도한 배틀북스 역시 뜨거웠습니다. 두 시간 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터서 네 시간
특집으로 꾸몄고, 패널들은 후보 도서 다섯 권을 놓고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책을 수호하며 토론을 벌였습니다. 시민들은 방송을 듣고 문자로 의견을 보내며 토론에 참여했지요. 문자 요금이 붙는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생각을 문자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건 단순한 참여가 아니었습니다. 이 도시의 책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의 선언처럼 느껴졌지요.
결국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최종 선정되었지만, 사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책을 화제로 삼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함께 고민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성의 온도로 도시의 공기가 따뜻해졌지요.
그 뜨거운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늘 도서관을 떠올렸습니다. 도서관은 이런 토론과 참여, 상상력을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하며 선정도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도서관장이 서지 못했습니다. ‘직급이 낮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도시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이 시장과 나란히 서서, ’우리 도시가 함께 읽을 책‘을 선포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던 꿈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언젠가는 도서관장이 존경받는 사회, 지식이 공유되는 도시를 만들어야겠다고 말이죠.
도서관장이 시민 앞에 서서 도시가 함께 읽을 책을 선포하고, 지성의 축제를 여는 도시.
그곳이 진정한 책의 도시, 그리고 문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도시의 모습일 것입니다.
뉴욕 공공도서관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이런 메시지를 던집니다.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도서관은 책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토론이 이루어지고, 문화가 피어나며, 세대가 교차하는 광장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장은 행정가가 아니라 도시의 가치와 철학을 설계하는 리더여야 합니다. 도서관장이 존경받는 사회는 곧 지식과 대화가 존중받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시장이 도서관장을 최고의 지성으로 존중하고, 시민이 그와 함께 도시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회. 그곳에서 책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됩니다.
책은 세대마다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20대, 30대에게 책은 진로와 자기 설계의 나침반이 됩니다.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책은 길을 열어주고, 질문을 던져줍니다.
40대, 50대에게 책은 공동체적 지혜와 유산으로 다가옵니다. 인생의 경험과 지혜를 모아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도서관은 바로 이 두 세대가 만나 서로에게 배우고 나누는 광장이 되어야 합니다.
책 읽는 도시, 도서관이 중심이 되는 문화 공동체. 저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향해야 할 미래라고 믿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책이 당신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나요?
당신은 지금 책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고 있나요,
아니면 공동체와 지혜를 나누고 있나요?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의 도시 도서관장이 시민 앞에 서서
“이제 우리 함께 이 책을 읽읍시다”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끼시겠습니까?
책은 길이고, 대화이며. 미래입니다.
당신에게 책은 어떤 등불이 되어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