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나를 프로듀싱하는 법
책이 알려준 기획자의 삶 — 콘텐츠는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는 지금, ‘자기 자신을 콘텐츠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SNS의 짧은 한 문장,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한 컷, 유튜브의 몇 초짜리 영상까지도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됩니다.
기업의 광고 문구나 거대한 담론보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더 귀 기울입니다.
그 목소리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진정성’이 오늘날 콘텐츠의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담는 일입니다.
기획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믿고,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가 콘텐츠의 색과 결을 결정합니다.
같은 책을 소개하더라도 누군가는 줄거리만 나열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책이 자신에게 전해준 감정과 경험, 깨달음을 이야기로 엮어냅니다.
하나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다른 하나는 공감을 만들지요.
그 차이는 바로 ‘자신의 서사’를 담고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 콘텐츠는 기획자의 자화상입니다.
내가 추천하는 책이 나 자신을 설명하듯,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프로듀서’로 거듭나게 됩니다.
저 역시 이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라디오 PD로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저는 ‘프로’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객관적인 시선, 완벽한 구성, 정해진 형식에 어긋나지 않는 방송.
그것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길이라 믿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그램에는 어딘가 빈자리가 느껴졌습니다.
나름대로 정확하고 완벽하다 생각했지만, 온기가 없었습니다.
큰 문제없는 방송이었지만, 그 안에 제 마음은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책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책은 묵묵히 물었습니다.
“너는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그 안에서 너는 누구인가?”
그때부터 저는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문장과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로진 작가의 ‘인디라이터’ 과정에서 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한 구절이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오딧세이아>의 줄거리는 길지 않다. 어떤 사람이 다년간 이역에 나가 있다. 그는 늘 해신 포세이돈의 감시를 받고 있고 고독하다. 그런가 하면 고향에서는 아내의 구혼자들이 그의 재산을 탕진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적에게 덤벼든다. 그는 구원받고 적은 살해된다. 이것이 골자고 나머지는 삽화다.’
그날, 다이어리에 적었습니다.
“주제문을 잡아라. 일관성 있는 흐름을 만들면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때부터 저는 늘 스스로 물었습니다.
‘내가 만드는 방송에도 주제문이 있을까?’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그 질문이 제 기획의 흐름을 바꿔놓았습니다.
이후로는 청취자가 좋아할 만한 것보다, 제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 직접 느낀 감정의 결을 담은 이야기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가끔씩 오프닝 멘트에 제가 실제로 감동한 책의 문장을 담아봤습니다. 그 문장이 왜 저에게 특별한지,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켰는지 솔직하게 전했습니다.
그럴 때 청취자들은 응답해줬습니다.
“PD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어요.”
“그 책, 바로 사서 읽었습니다.”
차가운 전파에도 진심이 실리면 누군가에 마음에 닿는다는 것을 느꼈지요.
책은 단순한 정보의 원천이 아니라, 저 자신을 기획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따뜻한 매체가 됩니다.
‘책읽는청주’ 캠페인을 마무리하고 한동안 현장을 떠났을 때,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물음이 ‘리딩코리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슬로건은 단순했습니다.
‘한 달에 한 권, 일 년에 열두 권’.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숨어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프로듀싱하는 일이다.”
2022년 캠페인에서 선정한 열두 권의 책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혼돈의 시기를 함께 건넌 ‘공동체’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단절과 고립의 시대에 ‘우정’을 다시 생각하게 한 『프렌즈』,
편안함을 좇는 시대의 노동 현실을 마주하게 한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전해주는 책들이었죠.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섬에 있는 서점』의 주인공 피크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리딩코리아는 이 문장을 현실로 옮긴 캠페인이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연결’의 행위이고,
그 연결은 곧 자기 자신을 새롭게 기획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책의 전권 낭독을 시도했습니다.
책이 말하는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고 싶었지요.
그리고 방송이 끝나면 블로그에 감상을 남겼습니다.
그 글이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리딩코리아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책읽는청주 캠페인 시기의 ‘배틀북스’ 프로그램에서는 청취자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했습니다.
패널들이 자신이 추천한 책을 설명하면, 청취자들은 문자로 생각을 나누었죠.
“이 장면이 내 이야기 같아요”
“이 책 덕분에 가족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했어요.”
이런 과정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책과 방송, 그리고 캠페인은 서로를 프로듀싱하는 순환 구조라는 것을요.
저는 책을 통해 기획을 배우고, 청취자는 방송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며,
이렇게 우리는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책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내 안의 세계를 편집하고 기획해주는 ‘인생의 프로듀서’입니다.
내가 어떤 책을 고르고,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가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 보여줍니다.
내 책장은 곧 나의 세계관의 지도입니다.
책 속 문장은 내 사고의 뼈대를 세우고, 내 감정의 근육을 단련시키며, 내 콘텐츠의 모습을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기획은 외형이 아니라, 기획자의 정체성과 가치가 드러날 때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콘텐츠는 결국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창이며,
책은 그 창을 투명하게 닦아주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책은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가장 정직한 프로듀서입니다.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책들이 당신의 삶을 이끌어왔나요?
그 책들은 당신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관계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요?
혹시 아직 자신만의 기획 방향을 찾지 못했다면,
오늘 손에 든 그 한 권의 책이 당신의 새로운 프로듀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읽은 책의 문장 하나가,
당신이 쓰는 글, 말, 표정, 행동 속에서 빛나고 있지 않나요?
책은 단지 읽고 덮는 것이 아닙니다.
책은 당신의 삶을 설계하고, 당신 자신을 브랜딩하며, 당신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도구입니다.
오늘, 책으로 당신 자신을 프로듀싱해보세요.
당신의 삶은 그 순간부터 새로운 이야기의 무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책으로 자신을 프로듀싱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