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를 발견하고, 말하고, 기록하게 만든다
나의 이야기로 서사의 주인공 되기
-책은 나를 발견하고, 말하고, 기록하게 만든다; 읽는 나에서 말하는 나, 쓰는 나로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문장 하나가 마음 깊이 들어와 흐름을 멈추게 합니다. 그 문장이 마음 속에 들어온 순간 책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경험이 됩니다. 조용해 보이는 독서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내 이야기는 별게 없어서요.”
“나는 글을 잘 못 써서요.”
그 말 속에는 나를 드러내는 일이 낯설고 두려운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책은 그럴 때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줍니다.
‘괜찮아. 너의 이야기는 이미 네 안에 있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떤 문장에서 멈추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어떤 질문을 오래 품어왔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책에서 반복해 만나는 감정은 내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주는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의 언어가 됩니다. 책은 결국 나를 기획하도록 돕는 오래된 도구였습니다.
책읽는청주 캠페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좋은 책을 소개하면 도시가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건네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데, 어떤 사람은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을 따라가며 저는 독서가 읽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쓰고 공유하는 경험으로 확장될 때 삶 속에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다시 열어본 블로그에는 오래전부터 쌓아온 기록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장해둔 문장들, 지나가듯 적어둔 생각들, 읽고 싶은 책 목록.
이미 저는 나를 꾸준히 기록해오고 있었던 겁니다. 이 조각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고, 읽기에서 말하기와 쓰기로 저의 독서 경험은 한 단계 확장되었습니다.
충청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했던 ‘리딩코리아 선정도서 북트레일러 제작’수업은 이 확장의 힘을 눈앞에서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기말과제로 북트레일러 만들기를 제안했을 때 학생들은 자신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책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던 학생들은 책의 장면을 메모하고, 메시지를 찾아 이야기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팀은 주인공의 하루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풀어냈습니다. 또 다른 팀은 책의 핵심을 한 줄 카피로 담아냈습니다.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완성된 영상을 보며 저는 조용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책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고, 그 말은 누군가에게 전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읽기가 표현으로 확장될 때 책이 전혀 다른 깊이로 이해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북저널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기록하는 감정과 주제 속에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지요. 얼마 전에는 몇 년 전 적어두었던 문장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 문장은 지금의 저를 설명해주는 가장 솔직한 기록이었습니다. 기록은 나를 드러내는 언어이자 마음을 정리하는 기획서였습니다. 이 기록들이 쌓이며 저만의 책 플레이리스트가 생겼고, 그것은 저의 정체성과 브랜드가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이 기록을 공동체와 연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독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도와줍니다.
말하고 쓰는 경험은 내 안에 숨어있던 목소리를 드러내고, 그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나의 방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됩니다.
기록은 브랜드가 됩니다.
독서 노트와 북저널링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나를 기획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어떤 감정에서 멈추는지 보여주는 가장 솔직한 자료입니다. 이 기록이 공동체와 만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지요.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또 다른 사람의 경험은 다시 누군가의 삶을 바꿉니다. 결국 독서는 정보를 축적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을 오래 붙잡고 있는 문장은 어떤 문장인가요.
그 문장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가요.
당신만의 책 플레이리스트 첫 장에는 어떤 책을 놓고 싶은가요.
책은 읽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말하고 쓰는 과정에서 당신의 이야기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기록하는 한 문장은 당신의 서사를 여는 첫 문장이 됩니다.
당신의 서사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