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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자 Oct 21. 2023

영원

 가끔은 내가 사라진 것들의 무덤 위에서 살고 있단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유행이나 애도 같은 낱말들이 존재하는 이상 전혀 근거 없는 착각만은 아니었다. 그런 낱말들은 늘 무언가 죽고 난 뒤에 태어나기 마련이니까. 대개는 물건이나 장소들이었고, 간혹 고인이 된 인물들도 아주 없진 않았다. 그럴 때면 꼭 인간의 일생이 영원이란 글자에서 천천히 하나씩 획을 소거해 가는 오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원, 영워, 영우, 영, 여, ㅇ…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아직은 젊은 나이였기에 사라진 만큼 남아 있는 획들도 적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떤 비틀린 습성 같은 게 작용했었을 거다. 인터뷰라면 자신 있었으므로 주변에 각자가 생각하는 영원의 정의에 대해 묻고 다닌 적이 있다. 대학병원의 보안 노동자인 박말랭은 혹한기 야외 순찰 때 영원을 체감한다고 했고, 김덕후는 피규어라고 대답했다. 피규어는 플라스틱과 금속 따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런 건 잘 썩지도 않는다면서. 얘 이거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건가 싶었다. 이 엉터리 설문 결과를 나중에 애인에게 들려줬더니 전부 틀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영원은… 맛집의 반대말이야.”


 그러고 보니 징크스랄까. 좋아했던 식당들은 하나같이 금세 폐업하거나 얼마 안 가 먼 지역으로 이전해 버리는 우리였다. 처음엔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했으나 점차 반복되자 나중에는 우리 입맛이 이상한가 싶었다. 징크스란 얼마나 자기파괴적인 명사인지. 애인은 너무 짜고 자극적인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의 식성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는 우리 입맛도 딱히 건강한 편은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괜한 말대답을 해서 좋을 리 없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문 채, 나는 속으로 우릴 스쳐갔던 식당들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당장 생각나는 곳들만 해도 전부 술집이거나 술을 겸비한 식당들뿐이었다.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아사거리 채음


 우리가 가장 애착했던 술집이다. 미아사거리역과 미아역 사이, 한산한 주택가에 숨어있는 작은 이자카야였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이 가게의 개업 후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희소하고도 기분 좋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주 메뉴는 일본식 어묵으로, 실제 절반은 일본인인 한국인 사장님이 그날그날 곁들일 만한 요리들을 이것저것 함께 다양하게 판매했다. 여기서 먹은 가정식 스튜와 가지된장볶음의 맛은 아직도 이따금 떠오를 때가 있다. 여섯 명이 앉으면 꽉 차는 다찌에 이인용 탁자 하나뿐인 매장 안은 늘 한산해서, 마주앉은 애인의 음성이 선명하게 잘 들렸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몇 시간이고 앉아 낮에 못다 한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다 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금세 기분 좋은 취기가 오르곤 했다.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나누었던 대화들이 일부나마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엔 사장님과도 친해지고 정말로 정이 많이 들었는데 코로나 시기를 못 넘기고 결국 폐업하고야 말았다. 아지트를 잃은 우리로선 아직까지도 애석해하고 있다.


 속초 또복이횟집


 살다 보면 애착도 애석도 아닌 애도를 전하게 되는 식당도 생기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초고령의 할머님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시던 이곳은, 횟집이라는 간판과 달리 오직 회무침 단일 메뉴만을 판매하던 식당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원래는 탕이나 회, 물회 등도 팔았다는데 할머님이 노쇠하시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메뉴가 축소되었다고 한다. 인당 만 원으로 가격도 무척 저렴한 데다, 이 인분만 시켜도 안에 고등어니 오징어니 복어니 온갖 귀한 생선들이 말도 안 되게 푸짐히 들어가 있어서 도저히 둘이서는 다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정성이 넘치는 여러 밑반찬들도 듬뿍듬뿍 챙겨주셔서 갈 때마다 늘 넘치게 감사했던 마음이다.


 세월의 흔적을 흠뻑 머금은 가게 안에는 할머님의 본명인 김말복 씨의 젊었을 적 사진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가끔 가게에 관한 신문 인터뷰 기사들도 붙여져 있던 걸 보면 예전에는 일대에서 꽤 번성했던 가게였던 듯싶다.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시멘트 덩어리가 아닌 한 사람의 청춘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예쁜 청년들이 왔다며 갈 때마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반갑게 맞아 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꼭 한 번씩 들르곤 했었는데, 한 해 전 할머님께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며 문을 닫고 말았다. 황량한 가게 입구에는 할머님의 자제 분께서 붙여 놓은「주인 할머님께서 그간 찾아주신 손님께 감사를 표하시고 하늘나라로 편히 돌아가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쪽지만 뎅그러니 붙어 있었다. 우린 황망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기분이 좀 이상했던 것 같다. 그럴 리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그곳에 가면 어쩐지 주인 할머님이 나와 우리를 반겨줄 것만 같다. 밥정이란 뭘까. 예기치 못한 이별 앞에서 우리는 늘 애도하며 살아간다.


 서촌 부르크보드


 젊은 남자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던 서촌의 작은 햄버거 가게였다. 워낙 핫플이 밀집한 서촌이다 보니 생각만큼 매번 들르진 못했지만, 패티에 진심이신 사장님 덕분에 갈 때마다 육즙에 감탄하며 먹었던 기억이다. 뭔가 입에는 무척 건강하고 몸에는 조금 해로울 프랑스식 수제버거 맛이 났다. 항상 토요일 정오에 방문했었는데, 센스 있는 음악 선곡과 사장님의 취향이 잘 반영된 인테리어 덕분에 오감이 만족스럽게 식사할 수 있었다. 햄버거 처돌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SNS에도 알려지던 와중에, 사장님께서 인스타그램으로 갑작스런 영업 종료를 공지하며 문을 닫고 말았다. 그 두툼한 패티를 다시 못 먹게 된 건 심히 유감이지만, 그때 먹은 버거의 일부는 아직도 내 혈관 어딘가를 떠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콜레스테롤의 기꺼운 각인이랄지. 그런 경험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몸에서 좀체 지워지질 않는다.  


 엠비티아이 INTJ인 애인이 그러니까 식당도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둥의 맥 빠지는 소리를 해댔으므로 퍼뜩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 옆에서 홀로 꿋꿋하게 감상에 젖어 있던 중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을 빌리자면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재미있고 즐거운 날들은 언제나 조금 슬프게 지나가는 법이다. 아름다움과 슬픔. 그 순간엔 그 두 단어야말로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감정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설문자인 내 대답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아무도 물어본 적도 없었지만, 나는 속으로 영원이란 시간의 반대말이 아닐까 하고 혼자 조용히 생각했다. 이미 다수의 서양 철학에서 영원의 반대말을 시간이라 규정하고 있단 사실에 꼭 동조하려 했던 것만은 아니다. 영원을 일컫는 영단어 timeless는 직역하자면 무시간성, 즉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어떤 장소에서의 어떤 순간들은 너무나 충만해서 꼭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흐르는 시간 속에 틈틈이 숨겨 놓은 세이브 포인트와 같고, 마치 게임처럼 불러오기 해서 언제든 편의대로 꺼내 쓸 수 있다. 세어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저장점들이 아주 적지만은 않았다. 앞으로도 우린 작고,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이 느껴질 수도 있는 그런 사사로운 영원들을 꾸준히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터였다.


 개인적인 기록지에는 애인의 대답만 남겨놓기로 했다. 아마도 박말랭과 김덕후가 알게 된다면 격하게 항의할 것이 틀림없다.  



 영원 [명사] 맛집의 반대말. 혹은 시간의 반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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