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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자 Oct 18. 2023

전문가

 비단 알람뿐만이 아니더라도, 아무튼 휴대 전화란 손 많이 가는 기계임이 분명했다. 이삼 년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교체해 줄 필요도 있었다. 딱히 얼리어답터라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약정 기간만 끝나가면 기계가 귀신 같이 고장을 일으켰던 거다. 보통은 배터리나 충전 단자 불량 같은 사소한 고장이었다. 수리의 난이도 여부를 떠나 힘들게 고쳐 쓸 바엔 이참에 바꿔버리잔 주의라서, 별 숙고 없이 그때그때 과감히 기종들을 갈아치워 왔다. 무엇보다 안 쓰게 된 공기계를 팔아 주머니로 들어오는 현금도 생각보다 쏠쏠했다. 한 달치 식비 정돈 충분히 충당하고도 남을 만한 돈이었으니까.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이 연쇄적 경제 행위야말로 리사이클의 바람직한 표본이 아닌가, 이삼 년마다 생각한다.


 그 주말, 애인과 함께 중고폰 매입 매장에 방문한 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요즘이야 스마트폰 수거기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매입 과정을 알아서 처리해 줘 번거로울 일이 없다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게 생기기 전이었다. 중고거래 카페에 가입하거나 중고폰 매입 전문 업체를 직접 찾아가는 것 말곤 이렇다 할 판매책이 없었다. 기왕이면 ‘전문’을 내세운 쪽이 좀 더 그럴듯해 보였으므로 내 선택은 늘 후자였다.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기보다는 낱말을 신뢰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게 매장에 들어서는 내 왼손엔 집에서 가져온 구형 사과폰이 꼭 쥐여 있었다.  


 “저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누가 봐도 앳된 얼굴의 직원이 안내한 대로, 우린 물건을 건넨 후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다. 홈페이지 상으로 봤을 땐 분명 꽤 커 보였는데, 막상 와서 보니 말이 매장이지 협소하기 짝이 없는 규모에 직원이라곤 달랑 혼자였다. 그 직원마저도 갓 스무 살이나 넘겼을까. 생각보다 너무 어려 보여서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내 불안감을 불식시키려는 듯, 매장 벽면엔 왕년의 스타들과 찍은 거래 후기 사진들이 트로피처럼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심야 예능 프로의 고정 출연자인지라 난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됐다.


 “저런 거 다 돈 받고 찍는 거야.”


 애인만이 귓속말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 십 분쯤 지났을까. 우릴 다시 부른 직원이 문제가 좀 있다며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 액정 하단에 흑점 보이시죠?”


 그러면서 직원은 손가락으로 액정 한 곳을 가리켜 보였다. 참고로 흑점이란 액정 표면에 생긴 검은 점을 말하는데, 중대한 메인보드 결함이므로 발생 시 매입가의 치명적인 차감을 피할 수 없앴다. 당황한 애인과 내가 어디 있나 하고 뚫어져라 들여다봤지만 흑점 같은 건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한참 헤매자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게 크기가 작아 육안으론 확인이 어려우실 수도 있다며 금세 말을 바꿨다. 육안으로 찾기 힘든 걸 육안으로 찾아보라 하셨군요, 빈정대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래서 과연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는 거였다. 차감액을 빼고 난 최종 매입가를 물었더니, 처음 유선 상으로 안내받았던 금액의 절반이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짜증이 난 애인이 완강히 반대했으나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이 거래를 파기할 만한 체력도 의지도 내겐 없었다. 대충 오만 원만 더 올려 받는 걸로 합의해서 거래를 성사시켜 버렸다.


 혹시나 싶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애인의 반대 의사도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꽁돈이 생긴 기념으로 그날 저녁에 쏜 고기 앞에서 금세 평정을 되찾았던 걸 보면 말이다. 열심히 고기를 구우면서, 다만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던 결함을 직원이 어떻게 발견했는가에 대해선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전문가니까. 우리가 모를 어떤 비법이라든가 초능력 같은 게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애인의 말대로 그냥 별 볼 일 없는 사기꾼에 불과할 텐데, 어차피 거래는 끝났으므로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끝이라는 건 그만큼이나 단호한 명사였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이 이야기를 박말랭에게 들려줬더니, 내가 만만하게 보여서 호구 잡힌 거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가스라이팅을 시전했다. 그런 식이라면 나도 할 말이 많았으므로,


 “암만 내가 호구 잡혀 봤자 네 첫사랑만 할까….”


 하고 되받아치자, 꼭 독침에 쏘인 침팬지 같은 얼굴을 하고선 입을 꾹 다물었다. 오랜 우정의 미덕이라면 필요에 따라 상대에게 마음껏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벗어난 지 오래지만, 한때 뒤늦게 빠진 유흥에 누구보다 심취했던 박말랭이었다. 서른을 앞두고 부쩍 외모에 관심을 가지더니 나중에는 클럽이나 나이트에도 종종 드나들었던 모양이다. 어떤 날은 클럽에서 만난 여자가 너무 좋아 죽겠다며 털어놓아 날 놀래키기도 했다.


 “얼굴도 예쁜 데다 취미가 운동이라는 것까지 완전 딱 내 이상형이야. 근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뒤에 있었다.


 “남자 친구가 있대. 그것도 몇 년 사귄.”

 “뭐라고?”


 들어보니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고, 나중에 여자 쪽에서 비겁하게 은근슬쩍 정보를 흘렸던 모양이다. 주말에 남자 친구랑 어딜 다녀왔다며 뷰가 끝내주더라니 어쩌니 떠드는데, 그때까지 썸인 줄로만 알았던 박말랭으로선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부비부비하며 만난 사이에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니 이게 무슨… 클럽이란 데가 새삼 무시무시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몹시 당황해선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른 채 어버버 거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첫사랑이란 얼마간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는 오랜 격언을 박말랭은 심히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충실히 이행했다. 크게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렇다고 곧바로 연락을 끊진 않았던 것 같다. 이후로도 정신 못 차리고 간간이 이어지던 그 무모한 자해는, 약 일 년 가까이 지나서야 여자의 갑작스런 결혼 소식과 함께 강제적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결혼 전 박말랭에게까지 청첩장을, 그것도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는데 당사자로선 그 일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보다. 한동안 오락가락하다가 결과적으로는 이상형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사주에 치癡는 없고 정情만 있는 여자가 좋아.”


 그럴듯한 말들을 다 놔두고 고작 치정에서 ‘치’ 하나만 제외한 게 너무나도 좀스럽고 지질해서 그만 한숨이 났다. 절대 감싸려는 건 아니지만 저 살벌한 유흥계에선 애초에 그 정도의 뻔뻔함도 내 친구에겐 무리였던 거다. 한편으론 그것도 첫‘사랑’이랍시고 떡하니 드러났던 흑점을 보지 못하고 쉽게 현혹되었던 걸 보면, 전문가가 아닌 건 나나 박말랭이나 마찬가지 같았다. 물론 각자의 장르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우린 늘 전문가보단 호구에 가깝고, 조심해야 할 건 중대한 메인보드의 결함이다. 


 훗날 안줏거리 삼아 박말랭의 이야기를 김덕후에게도 말해줬더니, 무슨 그런 불쌍한 영혼이 다 있냐는 듯 혀를 쯧쯧 찼다.


  “그러게 나처럼 2D를 좋아하면 될 것을….”


 그 초연함에 순간 경건한 마음까지 드는 듯했다. 정말이다. 어쩌면 우리 중 진짜 전문가는 김덕후뿐일지도 모르겠다.



 전문가 [명사] 어떤 분야의 비범한 초능력자. 호구의 반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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