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난치성에 가깝다.
그렇게 확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불과 두어 달 전의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럴듯한 고찰이나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 철학자 흉내를 내기에는 유달리 빠르고 시끄러운 시대니까. 다만 병 앞엔 장사 없다고, 질병이 맞은편에서 작정하고 달려오면 순순히 치일 수밖에 없단 사실을 체득했을 뿐이었다. 컨디션 난조로 찾은 동네 의원의 검진에서 뜻밖의 난치병 소견을 듣게 된 거다.
궤양성 대장염.
살면서 장염은커녕 설사도 몇 번 안 해본 나였다. 그런데 내가 난치라니. 충격을 떠나 황당한 기분이었다. 어쩐지 배우 심영 씨의 유명한 드라마 대사가 생각났는데(내가 고자라니!), 그쪽이나 나나 어느 한 군데가 불능이란 점에선 마찬가지 처지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난 불능보단 고장에 좀 더 가까웠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검사와 전원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장소는 커다란 대학병원의 좁다란 진료실이었다. 모니터에 뜬 내시경 결과를 건조하게 가리키며, 의사는 앞으로 내가 평생 약을 먹어야 될 거랬다. 임상적으로 아직까지 이 병은 이렇다 할 완치 방법이 없다면서. 나는 그저 덤덤히 끄덕였을 뿐이다. 이미 관련된 정보란 정보는 인터넷으로 싹 다 찾아본 터라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위키백과에 등록된 이 병에 대한 개요는 대략 다음과 같다. ‘약칭 UC(ulcerative colitis). 대장에 원인 모를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희귀 난치성 면역 질환.’ 흔히 같은 염증성 질환인 크론병과 묶여 분류되곤 하는데, 궤양성 대장염은 염증 부위가 대장에만 국한된다는 차이가 있다. 주된 증상은 혈변, 설사, 급박변, 빈혈, 복통 등등. 듣기론 환자에 따라 대장을 절제하거나 심하면 암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난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빠르게 내원해서 다행인 케이스랬다. 병원에 오지 않고 버티다가 상황을 키우는 환자들도 많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소 특별히 건강에 유의했던 건 아니다. 단지 시각적인 자극에 반응했을 뿐이었다. 빨간색이 위험 신호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니까.
발단은 닭내장탕이었다. 유튜브 출연으로 유명해진 한 닭내장탕 집에 들러 애인과 맛있게 식사했던 다음날.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는데 변기 안이 새빨개져 있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피똥이로구나.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나였다. 그도 그럴 게 인생을 송두리째 비틀 발병의 전조로 삼기에 닭내장탕은 너무 구수한 감이 있으니까. 때가 되면 알아서 멎겠거니 하고 내버려 뒀는데 웬걸. 이 뜻 모를 유혈 사태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자 나로서도 슬슬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싶어 약국에서 치질약도 사다 먹어 보았으나 의도치 않게 혈액 순환만 원활해졌을 뿐이다.
“아무래도 수상해. 병원 한 번 가 보자.”
보다 못한 애인이 날 항문외과로 끌고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 둘 다 그냥 지독할 치질 정도일 줄로만 알았다. 변변치 못한 항문이라고 꾸짖음 당하기도 했었는데. 항문경으로 내 안쪽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으므로 그제야 뭔가 잘못됐단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최근에 설사한 적 있어요? 복통이나 빈혈은?”
아뇨, 그런 적 없는데요. 진찰인 걸 알면서도 남 앞에서 엉덩이를 활짝 깐 채로 대답하자니 난 좀 수치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봄이었나. 문득 의사 앞에서 입 벌리기가 창피하단 이유로 치과에 안 가고 버티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항문을 벌리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치과라도 순순히 갈 걸…. 뒤늦게 후회한들 소용없었다.
“안 좋은 곳에 염증이 좀 있네요.”
다소 민망했던 진료가 끝나고 의사는 내게 우선 일주일어치의 약을 처방해줬다. 직장 내 군데군데 농양이 보인다며, 약을 다 먹고도 차도가 없으면 그때 다시 찾아오랬다. 그러면서도 어디가 안 좋은지 병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는데, 내 입장에선 정말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 어째 한국식 신파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클리셴데…. 저 죽나요? 성질 급한 애인은 일주일까지 기다릴 거 뭐 있냐며 그 즉시 내 이름으로 내과 진료를 예약했고, 이후의 전개는 전술했던 바와 같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수상하댔지.”
확진 판정 후 힘없이 진료실을 빠져나온 날 보며 어쩐지 우쭐해하는 애인이었다. 난 이제 늙고 시장가치가 폭락한 아저씨라며, 그래도 자기가 잘 돌봐줄 터이니 걱정 말란 이상한 위로를 덧붙이기도 했다. 난 망극하다며 과장되게 큰절을 두 번 올렸다. 이 와중에도 농담에 죽고 사는 우리. 아마 앞으로도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한편 나의 확진 소식을 들은 또 한 사람. 엄마는 최근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느슨한 불자였던 엄마는 돌연 종교계의 FA를 선언. 개종 후 꼬박꼬박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꼭 내 병 때문만은 아니고, 새로 개업한 동네에서의 인맥 활동이라든가 이런저런 사정들이 절묘하게 맞물렸던 모양이었다. 여하튼 그래서 요즘 엄마의 기도 내용은 구 할이 나의 쾌유. “비나이다…”로 시작해 “아멘”으로 끝나는 정체불명의 기도를 올리고 온다는 엄마였다.
“너무 낙담 마라. 생사가판 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다.”
엄마의 위로에서 힌트를 얻은 난 내 질환 앞의 ‘난치성’이란 글자를 ‘난 치성’으로 슬그머니 띄어 읽기 시작했다. 사전적으로 치성은 ‘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신에게 정성으로 비는 일’을 뜻하는데, 그러면 난 어김없이 조금쯤 독실해지고 만다.
아쉽게도 한 번 적힌 철자를 지울 방법은 없었다. 이런 유성 매직 같은 질병이라니. 기적이 없는 한 앞으로 주욱 이 변변찮은 대장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별 수 있나. 받아들일 수밖에.
지난한 투병에도 너무 쉽게 지치지 말 것. 의학과 신앙과 내 몸에 올바르게 성실해질 것. 그것이야말로 난치성 말고 새내기 난 치성 질환자인 내가 할 수 있는 당장의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