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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자 Oct 15. 2023

애인

 애인에 대해 말하기 전엔 늘 숨을 들이쉬게 된다. 우리 사이엔 좀처럼 공해가 없고, 의자만큼이나 공고하다.


 처음 애인을 본 건 어느 연말 모임의 술자리에서였다. 서로 초면인 데다 건너앉아 딱히 접점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계속해서 그쪽으로 신경이 갔다. 안주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매력도 매력이지만 무엇보다 반쯤 걷어붙인 소매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전완근이 그토록 황홀하다니. 실례일 줄 알면서도 몰래 힐끔댈 수밖에 없었다. 안 들켰기에 망정이지, 누가 봤다면 아마 시계 도둑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무언가에 반한 사람은 대개 수상쩍은 얼굴을 하고 있기 마련이니까. 취하기는커녕 자꾸 반하기만 하는 밤이었다. 아무래도 반한다는 건 의지보단 중력의 문제인 듯했다.


 사과가 떨어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본 계절이 채 녹기도 전에 우린 정식으로 사귀었다. 몇 번의 애프터 끝에 안달이 난 내 쪽에서 먼저 고백을 했는데, 나중에 듣기론 애인도 우리가 사귀게 될 줄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단다. 그러니까 그날 안주를 코로 먹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커플이 하나 탄생하기까진 약간의 차력쇼와 예지력이면 충분했다. 나는 우리가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오만한 대사들을 마구 내뱉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연애는 실전. 마냥 순탄할 리만은 없었다. 때에 따라 연애란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만나 문서 없이 체결하는 아주 파괴적인 양해 각서와 같다. 외향형인 나와 내향형인 애인, 문학파인 나와 과학파인 애인, 소음인인 나와 태양인인 애인, MBTI 언변능숙형 선도자인 나와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인 애인, 잘 못 듣는 나와 혀가 짧은 애인… 하나부터 열까지 어긋나는 것 투성이었다.

 한 번은 같이 길을 걷다 구걸 중인 한 노숙인을 마주쳤는데, 내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어 드리려는 걸 애인이 극구 막아섰다. 이런 미시적 요행이 자기 동력을 잃은 인간에게 끼칠 거시적 해악성에 대해 부단히 설파하면서 말이다. 당사자 면전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뭐라 반박하기도 그렇고 해서 결국 머쓱하게 돌아서고 말았다. 그런데 웬걸. 집에 돌아와서 보니 좀 전의 그 연설자가 유튜브로 감기 걸린 고슴도치 영상을 보며 혼자 훌쩍이고 있는 게 아닌가. 인간들이 미안하다며 사과까지 하는 걸 조금 황당한 기분으로 바라봤던 기억이다.  


 그런가 하면 좀 더 제대로 삐끗했던 적도 있었다. 이번엔 고슴도치가 아니라 내 쪽이 감기에 걸린 게 문제였다. 부실한 편도선 탓에 대기가 심술을 부리는 봄이 오면 꼭 한 번씩 연례행사처럼 크게 앓곤 한다. 힘겹게 받은 수화기 너머로 아프면 병원에 가라는 애인에게 서운함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때만 해도 MBTI 테스트 같은 게 유행하기 전이라, 다른 색깔의 화법들에 대해 무지했을 때였다. 아니, 모르는 고슴도치가 아파도 우는 사람이 도대체 왜 나한텐…하며 혼자 계속 침울해 있었대도 무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애인이 보내준 죽과 감기약이 현관 앞에 도착하기 전까진 말이다. 멋쩍은 마음으로 그것들을 뜯으면서, 한편으론 부끄러움이 올라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누굴 좋아할수록 자꾸만 점점 애처럼 굴게 되는 까닭은 어째서일까. 이래서야 좀체 애정과 투정을 올바로 구분 지을 수 없다. 즉각 전활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한 내게, 애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날 벙찌게 만들었다.


 “고마우면 내일 병원 가.”

 “…응.”


 어느 날 우리는 우리의 출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방식이므로. 1991년생. 서울 신림동에서 일남 이녀 중 맏이로 태어난 애인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K-장녀라고 할 수 있었다. 본인 말로는 어릴 적 이마가 예쁜 아이로 동네에서 명성이 자자했다는데 달리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이마라면 몰라도 손재주만큼은 확실히 타고났던 듯하다. 그 손재주로 어려서부터 맞벌이인 부모님 대신 동생들 반찬을 직접 해 먹였다는 걸 보면 말이다. 나아가 중학생 때부턴 식성이 유별나신 아버님 반찬까지 본인이 도맡았다는데, 생각해 보면 꽤 불공평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때의 영향 때문인지 애인은 지금도 “뚝딱뚝딱”이란 말을 제일 극혐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주방으로 향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자기 모습이 떠오른다며. 호박전, 미역국, 닭백숙, 버섯볶음, 오리냉채 등등…. 가능한 레시피가 늘어갈 때마다 미처 몰랐던 세상의 이치도 하나둘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은 썰거나 썰리거나, 지지거나 볶거나 그중 하나라고.


 미대 입시를 잠깐 꿈꾼 적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진학한 곳은 일반 인문계 대학교였다. 기왕 대학에 온 김에 남들 하는 연애나 해볼까 싶었지만 여대라는 게 문제였다. 연애와 여대는 나란히 붙여서 쓰기엔 아무래도 다소 공간적인 제약이 있는 명사다. 따로 소개팅을 잡지 않는 한 이성과의 접점은 딱히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첫 회사는 안 그래도 곤궁했던 애인의 남자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깨부쉈다. 꽤 알려진, TV 광고에도 나오는 유명 치과 기자재 회사의 영업지원 부서였다. 접대를 빙자해 당당히 법인 카드로 유흥주점을 드나드는 영업 사원들을 보며, 애인은 걸러야 할 이성에 대한 여러 특징적인 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 불온한 표정을, 말투를, 몸짓들을. 첫 연애를 시작한 건 그것들에 대한 목록이 족히 한글 파일 한 장을 다 채워갈 즈음이었다.


 “주선자가 누구였더라? 소개팅으로 만났고, 고시생이었어.”


 일단 덜컥 사귀기론 했으나, 딱히 아름답다고 할 만한 추억은 절대 아니었나 보다. 말을 하는 애인의 표정이 내내 험악했으므로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고시생이라는 신분이 연애 내내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데이트는 고사하고 한 달에 겨우 한두 번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고. 심할 경우엔 서로 일주일 가까이 연락 한 통 없이 지낸 적도 있었다. 특히 기념일이라도 끼어 있는 주간엔 그런 일시적 연락 두절 현상은 더욱 심해졌는데, 늦게나마 준비했던 선물을 전달했던 건 늘 애인 쪽이었다. 그러면 남자는 늘 마지못해 받는 척했다.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던 애인도 같은 패턴이 계속되자 점차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선물 주기 싫어서 일부러 그러는구나. 애인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꼭 고장 난 저울 위에 올라타 있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김장이었다. 이별 사유로 꼽기에 김장은, 그 음식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와는 별개로 어디 가서 말하기 조금 생뚱맞은 감이 있다. 허나 한쪽이 개연성에 취약했던 게 문제였다. 시간 되면 와서 우리 엄마 일 좀 거들라며, 남자 측에서 자기 집 김장 날에 애인을 초대한 거다. 보편적인 미풍양속에 위배되는 이성의 짜친 행동이라면 이미 지긋지긋하게 겪어 온 애인이었다. 이건 또 무슨 대리 효도 뚝딱뚝딱하는 소리인가 생각하며 단칼에 거절했고, 남자는 빈정이 상했었나 보다. 이것저것 되도 않는 이유로 시비를 걸어오다 급기야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너 혹시 페미 그런 거 해?”


 다분히 책임 전가적인 그 말에 애인이 분개했던 건 당연하다. 김장이 페미면 겉절이는 그럼 뭐 남녀평등이니? 격한 말다툼 끝에 다다른 결말은 당연하게도 연애의 폐기였다. 헤어지고도 채 분을 삭이지 못한 애인은 한동안 주변에 조롱조 다분한 호칭으로 남자를 추억하고 다녔다고 한다. 끝까지 들은 난 그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페미 제조기라는 자신의 새 별명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남자는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하다.


 “늪과 동굴 같은 이야기로구나….”


 내가 말했고 애인이 중얼거렸다.


 “꼭 마법의 성 같네. 시발….”


 양팔로 앞에 앉은 애인의 어깨를 장난스레 끌어당기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어쩌면 연애의 성패를 결정짓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부합보단 불화일지도 모르겠다고. 예컨대 지금까지 8년을 사귀어왔음에도 여전히 내게 있어 애인은 불가해한 존재다. 꼭 외국어로 설명서가 이루어진 인공위성처럼, 언제 발사 버튼을 눌렀는지도 모르게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내 궤도를 빙글빙글 맴돌고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더 열렬히 어긋날 수 있을지, 가늠이 잘 되질 않았다. 한편으론 이 완만한 어긋남이야말로 오랜 연인의 특권이자 주특기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미래가 도킹과 낙관으로 가득할 거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을 기꺼이 두 사람의 편으로 포용하는 것. 그게 우리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접속사였다.



 애인 [명사] 나의 애틋한 궤도. 가장 결정적인 접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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