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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자 Oct 13. 2023

우정

 딱히 자의식 과잉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확실히 중학교 2학년은 병적인 시기임이 분명했다. 그게 꼭 세간에서 일컫는 중2병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나만 해도 그땐 꼭 핸드폰 진동 모드 같았달까.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면 긴장으로 고개가 빳빳해지다 못해 어쩔 땐 저 혼자 막 부르르 떨리곤 했다. 그 정도가 점차 심해져 나중엔 혼자 버스도 제대로 못 탈 지경이었다. 행여 누가 볼까 창피해 맨 뒷자리 구석으로만 숨어 다녔던 기억이다.


 어쩌다 그렇게 됐던 건지, 갑작스런 이상의 원인을 한 가지로만 특정할 순 없었다. 그 무렵 극에 달했던 부모님의 불화, 가정 폭력,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의 부적응 등 의심할 만한 단서들은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오히려 고장 나지 않았던 게 더 이상했으리라 생각한다. 앓던 증상의 정확한 병명이 공황 장애였단 걸 알게 된 건 그보다 한참 나중의 일이었다. 건강히 자라기엔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이지 않았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스스로가 조금 안쓰러운 기분이 든다.


 그 침잠했던 시기에 박말랭을 만난 건 정말로 행운이었다. 반 배정날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난데없이 지우개 따먹기를 하자며 말을 걸어오던 게 그 애에 관한 첫 기억이다. 내가 지우개를 몽땅 따갔으므로 한동안은 필기할 때 무척 조심해야 했을 것이다. 어차피 나나 걔나 상대의 지우개가 탐나서 그런 건 아니었을 테니 별다른 죄책감은 없었다. 나는 다만 반가웠을 뿐이다. 적어도 앞으로 쉬는 시간에 심심하진 않겠단 생각이었다. 어떤 우정은 그토록 사행성 짙게 얼레벌레 시작되기도 했다.  


 생김새에 대해 묘사하자면, 모든 게 나와는 정반대였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중학생치곤 덩치도 큰 편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어쩔 수 없이 눈에 확 띄었다. 수업 시간에 딴짓하기엔 여러모로 불리한 인상이었다. 본인도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동아리 모집 활동이 시작되자마자 냉큼 유도부에 가입해 버렸다. 당시의 교육 시스템상 운동부란 선생님들에게도 불가침 취급이었으므로 덕분에 교실에선 아무도 그를 터치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 눈엔 또 멋있어 보였고, 아무튼 여러모로 우리들의 새카만 하입보이였다. 박말랭 인생에서 그토록 주변이 시끌벅적했던 시기는 그때가 유일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한다. 딱 하나. 남중이라 다들 동성들뿐이었다는 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 가정 방문이 아니었더라면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부터 박말랭은 우리 집에 놀러 오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친구란 이웃보다 가깝고 가족보단 조금 헐거운 준동거인 같은 거라나. 하굣길에 몇 번이나 집 근처까지 졸졸 쫓아오는 걸 간신히 따돌리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박말랭 나름대로의 진한 우정 표현이었을 거다. 반면 나는 나대로 비참한 집안 꼴을 같은 반 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집 대문 앞에 찾아와 죽치고 서 있는 통에 결국 들여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눅눅한 내 반지하에 입성해 넉살 좋게 물까지 한 잔 얻어먹은 박말랭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부모님은 집에 안 계셔?”


 나는 괜히 부끄러웠다.


 “아빠는 야간 일 나갔고, 엄만 요즘 보험 판다고 집에 잘 안 들어와.”

 “오. 그럼 나 방학 때 맨날 놀러 와서 같이 게임해도 돼?”   


 그토록 태연한 “오”라니. 분위기랑은 상관없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나도 얼떨결에 그러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박말랭은 그때나 지금이나 눈치 없긴 마찬가지다. 한편으론 딱 그런 열쇠만큼의 무해함이었기에 그때까지 걸려있던 내 마음속의 빗장도 풀릴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방학 동안 박말랭은 매번 새로운 게임 CD들을 들고 하루도 빠짐없이 줄기차게 우리 집에 드나들었다. 그렇게 테트리스와 피파와 발더스 게이트 등의 게임이 우리를 스쳐갔을 즈음. 불의의 사고로 허리를 다친 그는 유도를 그만뒀고 덩달아 성장판도 굳게 닫혀 버렸다. 세월이 흘러 아저씨가 된 지금은 튼실했던 종아리 근육 따윈 온데간데없고, 다니는 보안 회사의 대표적인 걸그룹 각선미로 불리고 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거리. 그 사이 몇 번의 이사를 거치고도 우린 신기하게 여전히 지하철 한 정거장 간격 지척에 산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서로의 집에 주기적으로 드나든다는 점 또한 여전히 그대로다. 어쩌면 박말랭의 말대로 우정이란 가정 방문에서부터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편 박말랭과 달리 김덕후를 처음 만난 장소는 교실 밖이었다. 그것도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비스듬하게나마 문학이 촉매제가 됐다. 당시 PC통신에서 시작된 출판계의 장르소설 붐은 나를 「퇴마록」을 거쳐 「드래곤 라자」로까지 이끌었고, 아마도 그건 운명이었을 거다. 공교롭게도 우린 드래곤 라자를 숭배하던 같은 팬페이지의 회원이었다. 처음엔 온라인으로, 그다음엔 오프라인 정모로 얼굴을 트더니 나도 모르는 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땐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모니터 뒤의 인맥이라는 점이 친해지는 데 이래저래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틈만 나면 채팅 프로그램에 접속해 밖에선 절대 할 수 없었을 이야기들을 밤새도록 서로 떠들어댔다. 이를테면 가족의 허점이라든가 반작용에 관한 것들. 이제 와 추측컨대 서로에게로 달아날 상대가 필요했던 거다. 어떤 우정은 문학만큼이나 음울하고, ‘또박또박’이란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둘 다 오타쿠 성향이 짙었다는 점도 관계 발전에 한몫했다. 한 번은 코엑스에서 열렸던 코믹 축제에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여태까지 내 흑역사로 남아있다. 흑역사래 봤자 직접 코스프레를 하고 사진까지 찍힌 김덕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흰 가발과 도복을 입고, 허리의 장검을 빼든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김덕후의 눈빛에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그날의 경험이 꽤 만족스러웠던지 김덕후는 그대로 그쪽 세계에 귀의해 버렸다. 돌아올 수 없는 2D의 강을 건넜달까.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월급의 상당 부분을 피규어와 게임기와 만화책을 사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엔 취미를 살려 아예 판교에서 내로라하는 게임 회사로 덜컥 이직까지 해버렸다. 과도한 야근에 대한 불만이 아예 없는 아니나 나름 즐겁게 모니터 안쪽의 세계에 심취해 있다 하니, 이만하면 자랑할 만한 덕업일치의 선례인 셈이다.


 속한 세계와 관심사가 현저히 달라진 지금도 우린 틈만 나면 서로의 동네로 찾아간다. 웬만해선 응당 나타날 법한 심리적 지리적인 거리감이 우리 사이엔 없다. 마주앉아 스즈메니 송태섭이니 떠들고 있노라면 꼭 ‘우정’의 ‘우’자가 ‘벗 우’가 아닌 ‘어리석을 우’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단 착각이 든다. 맨 정신으론 도저히 이 즐거움을 감당할 수 없어 우린 진즉 성인이 되자마자 술을 찾기 시작했다. 부작용이라면 둘 다 주정뱅이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무수한 술병과 안주들을 양분 삼아 우리 우정은 무럭무럭 자라왔다. 모르긴 몰라도 청진기를 갖다 대면 혹사당한 간들의 아우성이 적잖이 들려올 것이다.



우정 [명사] ‘어리석을 우’자로 이루어진 정. 친애하는 나의 말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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