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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자 Oct 11. 2023

낱말

 낱말에 관한 첫 기억은 명사다. 언제였냐면, 내가 아직 작고 부사에 불과했을 무렵. ‘엉금엉금’이 유일한 일과였던 내게 엄마가 처음 알려준 낱말은 싱겁게도 “지지”였다. 손닿는 건 죄다 집어삼키려 들던 날 말리기 위한 부드러운 훈육의 멘트였는데, 어느 날 그걸 덥석 따라 했다고. 유치한 어감과는 달리 의외로 사전에 정식 등재된 명사라 훗날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의 말로, 더러운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마침 신생아로서의 삶도 슬슬 무료해지던 참이었을 테다. 처음 맛본 낱말의 강렬한 미감은 어린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후 신난 내가 온 집안을 기며 종일 “지지”를 외쳐댄 탓에 엄마는 완전히 질려버렸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육아 난이도를 높여버린 것에 대한 죄송함과는 별개로 나로서도 나름의 변명거린 있었다. 어린아이란 원래 허기와 탐욕으로 이루어진 작은 불가사리나 마찬가지니까. 단지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와중에 첫 탐욕의 대상이 된 게 “솜사탕”이 아닌 “지지”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혹여 함부로 입안에서 굴려대다 허망하게 녹아버릴 염려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불용성과 항구성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개념인 법. 녹지 않는 “지지”도 언제까지고 영원할 순 없었다. 유창해진 내가 “엄마”와 “아빠”를 발음하기 시작하며 이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금지옥엽이던 자식의 첫 호명에 아마도 부모님은 뛸 듯이 감격하셨던 모양이다. 그즈음 우리 집 한쪽 벽에 붙은 커다란 유아용 낱말 카드는 그런 내 영재성을 속단했던 부모님의 소행이었다. 아쉽게도 기대와 달리 실은 그저 수다쟁이 아이였을 뿐이라는 게 지금 우리 가족의 최종적인 결론이지만, 이제와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낱말 카드. 그 칸마다 알록달록한 자모음들의 나열이 아이의 언어관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모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모험」이라든가 「친구」 같은 낱말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무구한 유년기를 보내진 못했을 것이다. 「사랑」은 또 어떠한가. 사춘기의 습격을 받았던 청소년기에는 무엇보다 사랑이 최대 관심사였다. 그땐 사방이 정체 모를 균열들로 가득해서, 벗어나려면 일부러라도 무언가에 몰두할 필요가 있었다. 전 세계 영화사에서 만든 각종 로맨스 무비들은 불안정한 십 대 소년의 정서를 의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피처였다. 정원과 다림, 알라딘과 재스민, 제시와 셀린, 두 명의 후지이 이츠키들…. 저작권에 흐릿했던 시대라서 더 무턱대고 빠져들 수 있었을 거다. 위태롭고 매혹적인 여러 사랑의 전기들을 시청하며 세상엔 택배 상자 위에 적힌 ‘취급 주의’ 같은 낱말도 있단 걸 깨달았다. 수취인은 쌍방이고 파손에 취약한 건 언제나 상자 안쪽. 깨진 후엔 아무리 애써본들 결코 되돌릴 수 없다.


 한편 「쓰기」에 대한 마음이 본격적으로 싹튼 시기는 대학을 갓 나왔던 사회 초년생 때다. 당시 난 첫 직장으로 운 좋게 붙은 자그마한 신문사에 다니고 있었다. 주의할 게 어디까지나 말이 좋아 신문사지 실상은 변변찮은 부서에 불과해서, 하는 일이라곤 신문 별지에 실릴 광고 기사의 작성 따위가 고작이었다. 주로 중소기업들의 제품 소개로 채워진 그 지면을 회사에선 광고라는 말 대신 특집 기사라고 에둘러 설명했다. 지금 생각하면 업계의 은근한 관행이랄지, 수익 창출을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근무한 그 해엔 대선이란 빅 이슈가 있었고, 정치와 언어는 필연적으로 상접하기 마련이다. 덩달아 떠오른 말이 새 대통령의 주요 정책 슬로건이었던 ‘창조 경제’였다. 그 실체와 유효성에 대한 여러 정치적 논쟁 여부를 떠나 어쨌든 언론이란 말에 민감하니까. 해당 구절을 차용한 특집 기사를 신문사들마다 앞 다투어 내놓는 추세였다. 나 또한 유행에 합세해 매일 같이 ‘창조경제 특집’으로 시작하는 꼭지 나부랭이들을 뽑아내느라 정신없었다. 컴퓨터의 시대라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무고한 나무들이 대거 희생됐을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특집 기사의 전성시대였다. 그 많던 특집들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다수가 쓸쓸히 폐지를 맞이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신기루 같은 나날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낱말도 있었다. 마감과 인터뷰로 축약되는 시간들을 통과하며 내 안에 「쓰기」를 향한 열망도 점차 커져갔던 것 같다. 당시엔 그저 멋모르고 기사와 광고 사이를 배회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새 관성이 붙었달까. 정신을 차려 보니 쓰지 않곤 못 배기는 몸이 되어 있었다. 딱히 제동력이 좋은 성격은 아니었으므로 이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메모장에 끄적거려 왔다. 사전을 검색하는 일에 너그러워진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기왕 쓸 거, 잘은 못 써도 잘못 쓰진 말아야 하니까. 어떤 낱말은 오용을 조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알게 모르게 인생의 선로를 뒤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러니 회사를 나온 지금까지도 내가 유독 낱말에 집착적인 인간이 된 건, 모두 그해 선거와 유행과 「쓰기」들의 탓이다. 여전히 난 커다란 낱말 카드 안에 들어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습작에 골몰하는 요즘에는 대부분의 지인들과 메신저로 교류한다. 지인이래 봤자 수시로 편하게 연락하는 건 엄마와 애인을 제외하면 친구인 김덕후와 박말랭 정도가 전부이긴 하지만. 네모난 모니터 혹은 액정 안에서 우린 늘 글자나 그림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가장 잦고 사사로운 수단은 여전히 낱말인 셈이다. 누구나 손끝에 지문 대신 각자의 키패드를 새겨넣고 다니는 세상이니까. 타인의 낱말을 열람하는 일이 아주 어렵지만은 않다.


 일례로 요 며칠간 박말랭이 가장 자주 언급한 낱말은 다름 아닌 「날씨」였다. 모 대학병원의 외주 보안 노동자로 재직 중인 그는 이런저런 업무 특성상 날씨 변화에 무척 민감하다. 이골이 난 덕에 기온차는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지만, 강수라면 사정이 다르다. 병원의 낙후한 배수 시설 탓에 한여름 장마철만 되면 달랑 삽 한 자루만 들고 범람 현장으로 투입되기 예사다. 정신없이 물을 퍼낸 뒤엔 아무리 우비를 두 겹으로 껴입었어도 속옷까지 흠뻑 젖고야 만다고. 겨울의 폭설 역시 퍼낼 대상이 눈에서 비로만 바뀌었을 뿐,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보안이 배수로를 퍼?”


 언젠가의 내 물음에 박말랭은 그럼 의사가 푸겠냐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만한 게 보안이니까. 까라면 까야지….”


 까라면 까는 그가 고난의 삽질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왔으므로, 나로선 상대의 은밀한 신체 사정까지 알 수밖에 없었다. 대개는 날씨 때문에 자기 고추가 얼거나 젖었다는 식의 저질스런 농담들뿐이었다. 남의 생식기 안부를 진지하게 논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별다른 대꾸는 안 했으나, 고생이긴 고생이겠다 싶었다. 인생이란 거, 마냥 맑을 수만은 없는 법이로구나. 앞으로 몇 번의 폭설과 폭우가 우리 앞에 남아있을지 헤아려 보자, 문득 「날씨」라는 게 어마무시한 낱말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당분간 화창한 날씨가 지속된다고 하니, 일단은 내 친구의 그곳도 무사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엄마의 메시지는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었다. 꼭 휴대전화 키패드를 방치하기로 작정한 사람인 양 절대로 직접 용무를 수기하는 법이 없었다. 온라인상에서 맘껏 수다스럽기엔 아무래도 옛날 사람이니까.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마 자신의 소셜적 수다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엄마는 이내 나름의 대책을 강구해냈다. 보내는 모든 메시지를 「사진」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거다. 그리하여 주로 기복적 카드, 초점도 구도도 엉망인 풍경 사진, 출처 불명의 지라시로 압축되는 엄마의 메시지는 늘 「사진을 보냈습니다」. 바로 메신저의 자동 알람 문구다. 엄마의 이 무대뽀적인 소셜 활동에 대해 전해 들은 애인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소감을 대신했다.


 “백종원 씨의 만능 간장 같은 거로구나….”


 어쩌다 한 번은 친구에게 보낼 축하 메시지를 고르느라 고심 중인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사진과 사진 사이를 전전하는 손끝엔 뭐라 형용 못할 엄숙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 미간을 닮아갈 것이다. 부디 그때까지 내 데이터 요금제가 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많은 사진을 저장해 두려면 용량도 아주 넉넉해야 할 터였다.


 어느 날 나는 새로운 원고의 작성을 위해 여느 때처럼 책상 앞에 앉았다. 「새해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나와 우리의 낱말에 관한 이야기였다. 때로는 ‘낱’이 ‘말’이 된단 사실이 새삼 놀랍다. 일단 덜컥 시작하긴 했으나 결말은 아직 딱히 정해둔 게 없었다. 다만 여태껏 그래왔듯 이 세계에 낱말은 충분하므로. 한동안은 멈추지 않고 계속 써나갈 수 있을 터였다.


낱말 [명사] 이 세계 모든 말들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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