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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자 Oct 16. 2023

성탄

 단 거라면 질색인데, 유독 크리스마스는 예외였다. 충치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 빨갛고 노랗고 반짝이는 하루를 좋아했다. 딱히 독실했다거나 커플이어서 그랬던 게 아니다. 오히려 이십 대 땐 내내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나는 늘 본질보단 부차적인 것들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고, 그건 일종의 불치병에 가깝다. 캐럴과 트리, 산타, 구세군 냄비,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들이 주는 유니크한 설렘을 차마 외면할 순 없었다. 12월에만 접어들면 목이 빠져라 크리스마스 디데이를 고대했던 기억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딱 하나. 울음을 참았다고 해서 선물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 요행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예나 지금이나 잘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 당일은 조금 부끄러웠기에 박말랭과는 24일 이브에 명동에서 만났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중 커플이 아닌 일행은 얼핏 우리밖에 없어 보였으므로 우린 조금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모른 척 분주히 싸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스키니진이 잠식했던 밀리오레 패션 상가와 방문객들로 묘하게 들썩이던 명동 성당, 지금은 사라졌을 어느 지하의 노래방도 들렀지만 우리의 진짜 목적지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샐러드 바. 당시 모 피자 프랜차이즈가 야심 차게 내놓은 샐러드 바 서비스는, 어디까지나 ‘바’를 빙자한 서양식 무한 리필에 가까웠단 점에서 성장기 굶주렸던 우리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피자는 물론이고 푸실리며 볶음밥이며 마카로니며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산타식 경제주의의 산물이자 박리다매형 세일즈의 정점처럼 여겨졌다. 우리로선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만찬이었던 셈이다.  


 다만 변수라면 우리 둘 다 샐러드 바가 처음이었단 점이다. 그때까지 경험해 본 무한 리필이라곤 동네의 고기 뷔페가 고작이었던 우리에게, 그 이름부터 생소한 샐러드 바는 어딘가 다소 진입 장벽이 높은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주문에 앞서 메뉴판을 꼼꼼히 읽어봐야 했음은 물론이다. 메뉴판엔 피자 주문 시 자동으로 샐러드 바 이용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으므로 우린 맨 앞 장에 있던 아무 피자나 얼른 주문했다. 물론 라지 사이즈였다. 주문한 피자가 우리 테이블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어디까지나 ‘보였다’는 말이다.  


 우리가 간과했던 사실이라면  다만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의 명동이었고,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홀 직원들은 모두 정신없이 바빴으며, 우린 뜨내기였다는 것. 직원의 안내 없이 덜컥 가서 샐러드들을 담아 오기엔 뭐랄까, 용기 같은 게 부족했다. 가서 한 접시만 살짝 담아와 볼까? 장발장이 그러다 전과자가 되었다지, 아마. 쓸데없는 농담들만 지껄이다 결국 식사가 끝날 때까지 샐러드 바는커녕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와중에 피자만은 정말 맛있었다는 게 아이러니다. 

 지금 같았으면 별로 대수롭지도 않았을 일을 그땐 왜 그렇게 쭈뼛거렸던 걸까.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그나마 유도부 출신인 박말랭이 나보다는 조금 더 대범했다. 손을 들어 지나가던 직원을 불러 세우곤 씩씩하게 물었다. 


 “계산은 어디서 해요, 누나?”


 그토록 시의적절한 질문이라니. 내 친구지만 박말랭은 가끔 나조차도 깜짝 놀랄 만큼 날카로운 데가 있다. 그래서 그날 계산을 누가 했던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린 무모할 만큼 어렸고, 단지 멍청함과 즐거움 사이 어디쯤에 속해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튼 지치지도 않고 이후로도 부지런히 여러 뷔페들을 전전하던 박말랭은 요 근래 초밥 뷔페에 완전히 꽂혀버렸다. 툭하면 입에서 고추냉이 냄새를 풍기며 옷소매에 간장을 묻히고 다니는 그가, 벌써 십수 년도 더 지난 명동의 크리스마스이브 따윌 기억할 공산은 그리 크지 않다. 미처 먹지 못한 그날의 샐러드 바는 어떤 맛이었을까? 어쨌거나 우린 지금 그때보단 포만하다.  


 애인이 새로 생긴 카츠 집에 가보고 싶어 했으므로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는 안국에서 보내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웨이팅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우리에겐 웨이팅 예약 어플이 있었다. 그 치트 키스러운 어플만 있다면 웬만한 핫플은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나름 수월히 입장할 수 있을 터였다. 철저하게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아직도 그 어플의 작용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첨단에 민감한 애인 덕을 이래저래 보고 있다. 제아무리 크리스마스이브의 안국이라 해도 완전히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혜택을 누리긴 했지만 ‘몰이해’와 ‘상용’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가 되는 사회가 과연 괜찮은 건가,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소한 디테일로 가득했던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엔 평소 즐겨 찾던 인근의 카페에서 애인과 함께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면을 꽉 채운 책장과 흥겨운 재즈, 주방에서 퍼져 나오는 바질과 토마토 향 같은 것들이 크리스마스 특유의 분위기와 이질감 없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충만한 안식감을 주었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와 함께한 햇수가 늘어간다는 건 공통의 취향을 점점 늘려가는 일과 마찬가지 같기도 하다. 여태까지 애인과 남쪽 나라의 북쪽 끝에서, 동쪽의 작은 바닷마을에서,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장에서 조촐히 둘만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왔다. 돌아보면 그야말로 안녕한 우리만의 12월 25일들이었다. 안녕이야말로 오랜 연인이 추구할 수 있는 최상급의 명사가 아닐까, 속으로 생각한다. 


 이른 저녁에는 장소를 옮겨 동네의 순댓국집에서 약소하게 반주를 했다. 우리의 오랜 단골 식당인 그 집은, 간판은 일단 순댓국집이지만 정작 순댓국보단 겨울엔 계절 메뉴인 굴 무침이 정말로 끝내주는 곳이다. 12월과 1월 두 달간만 판매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들러줘야 한다. 다행히 작은 동네의 작은 노포라 그런지 아직까진 SNS에 그리 유명하지 않아 아무 때나 가도 웨이팅 없이 편히 식사할 수 있다. 술자리를 끝내고 일어서며 익히 얼굴을 튼 사장님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더니, 사람 좋은 인상의 사장님은 아이고 그래. 모쪼록 근하謹賀한 성탄 되라며 남다른 언어로 화답해 주셨다. 


 차마 일차로 끝내기 아쉬웠던 우린 근처의 와인 바에 들러 칵테일과 위스키도 한 잔 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긴 천변에서 한껏 흥겨워진 나는 애인의 옷소매를 붙잡고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모쪼록 근하한 성탄이다!”


 ‘모쪼록’이란 단어가 완전 깬다며 애인이 웃었지만 막상 난 진지했다. 내가 강조하고자 했던 악센트는 그보단 ‘성탄’에 있었기 때문이다. 취기로 부정확해진 발음 때문인지, 혹은 크리스마스의 마법 때문인지 성탄이란 단어가 꼭 설탕처럼 들렸다. 이토록 당분 가득한 날들이 언제까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취한 와중에 혼자 조용히 되뇌었다.   


 사전에 계획된 대로 오늘은 애인과 함께 우리 집으로 귀가했다. 애인이 먼저 씻는 동안 바닥에 누워서 아녹의 <이와이 슌지>란 노래를 들었는데, 가사가 꼭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건네는 말들 같았다. 냉장고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꺼내 함께 먹으며, <나 홀로 집에>를 틀어 크리스마스 정각에 케빈이 건네는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들었다. 더 늦은 새벽엔 삐걱거리는 내 싱글 사이즈 침대에서 다소 야한 섹스를 한 뒤 서로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난방을 세게 틀어둔 탓에 한겨울이었음에도 실내가 지나치게 후끈했는데, 나는 이게 꼭 보일러의 온도 같기도 하고 우리의 온도 같기도 했다. 더워서 잠결에 계속 걷어차던 애인의 이불을 내가 집요하게 도로 덮어줬다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떤 날의 사랑은 꼭 아침이면 잊고 말 잠버릇 같았다.


 무엇보다 숙면을 했다. 그날은 너무 깊게 잠들어서 어떠한 꿈도 꾸지 않을 정도였다. 부디 애인도 그러했기를. 모쪼록 근하했던 그해 우리의 메리크리스마스, 아니 설탕 성탄이었다. 



성탄 [명사] 얼핏 설탕처럼 들리는. 그토록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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