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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자 Oct 17. 2023

건강

 철 지난 비관주의는 절대 아니었다. 그 겨울, 직장인들의 의례적인 건강 검진 시즌에 김덕후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했었다. 다름이 아니라 혈액 검사에 이은 엑스레이 결과가 상당히 심상찮게 나왔던 거다. 미상의 흰 물질들이 대장과 위장 사이에서 다량 포착된 건데, 정확한 진단은 내시경을 해봐야 안다면서도 병원에선 조심스레 대장암을 의심했다. 암이라니. 그 무시무시한 단어를 듣기엔 아직 한창 젊은 나이였다. 뜻밖의 이야기에 김덕후가 몹시 심각해졌음은 당연하다. 수화기 너머, 한 달 뒤 있을 내시경 검사 때 보호자로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하는 그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침울해져 있었다. 장난을 칠 기분조차 안 들었으므로 얼른 알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어쩐지 나까지 뱃속이 얼얼한 기분이었다.


 “우리 집 시계 움직이는 거 구경하러 올래? 되게 굼뜨고 재밌어.”


 겨우 일주일 정도 지난 무렵이었을 거다. 한 달이 그렇게 긴 시간일 줄, 예전엔 우리 둘 다 미처 예측하지 못했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와 도저히 일상생활을 못 할 지경이었다. 인간은 어째서 방부제만으로 만병통치할 수 없는 걸까. 조미 김이 부러워지긴 난생처음이었다. 문학이 아직 인간을 해결하지 못했듯, 의학 역시 마찬가지였던 거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이 정돈데, 하물며 당사자인 김덕후는 더 심란했을 것이다. 와중에 불안함을 달래겠다며 술을 마시는 게 쟤도 참 한결같구나 싶었다. 의사가 검사 전까진 술 담배를 해도 상관없다고 그랬다는데, 과연 믿을 만한 얘기인진 잘 모르겠다. 얼큰한 얼굴로 만약 자기가 죽거든 집에 있는 피규어들을 같이 순장시켜 달란 그를 보며, 인간이란 참 쓸데없이 입체적인 동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행여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검사 날이 다가와서 다행이었다.


 거듭된 폭주 탓에 한껏 우둥퉁해진 김덕후의 엉덩이가 내시경실 안으로 빨려 들어가던 장면을 기억한다. 약 한 시간 후, 다시 만난 김덕후는 흡사 물에 불린 곰인형 같은 모습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피로한 얼굴의 담당의가 내게 다가와 몇 가지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문과 함께 못 보던 청구서 한 장을 내밀었다. 환자 분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검사 중간에 진정제 한 병을 추가로 투여했다며, 그에 따른 새 청구서랬다. 혹시 엉덩이 때문인가요, 실없는 농담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세상 공손하게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병원 안에선 어쩐지 의기소침해진달까. 나의 문장이나 김덕후의 코딩력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단 기분이 든다. 곳곳에 미미하게 떠도는 불안과 약품과 죽음의 냄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검사 결과를 물었더니 그건 이 주 뒤에나 환자에게 전화로 따로 통보된다고 했다. 난 마취 기운에 흐물대는 김덕후를 부축해 최대한 빨리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땐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차피 그래 봤자 또 한동안은 하염없이 병원 측의 연락만 기다리는 지난한 날들이 이어질 터였다.


 살면서 남의 대장을 이렇게나 궁금해했던 적이 있던가 싶다. 그래서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면, 다행히도 검사 결과 모두 정상이었다. 대장이 아주 예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우린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다만 장내 헬리코박터균 수가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는데, 엑스레이에 찍힌 흰 물질들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랬다. 간단한 복약만으로도 처치가 가능했으나 대신 좋아하는 술은 당분간 끊어야 했다. 김덕후는 좋아하기도 슬퍼하기도 했던 것 같다. 식후 30분마다 빠르게 건강해지는 그를 보며 가장 기뻐했을 건 아무래도 피규어들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순장되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이래저래 천만다행이었다.


 한편 소동의 중심에 있던 건 박말랭도 마찬가지였다. 건강 검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느닷없이 채식주의자 선언을 함으로써 날 놀라게 했다. 완전한 채식은 아니고 정확히는 소와 돼지만 먹지 않겠단 거였는데, 그게 전문 용어로 ‘폴로 베지테리언’을 뜻하는지는 본인도 몰랐을 거다.


 갑작스런 편식의 동기는 단순했다.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어느 날 그에게 도축 산업 실태에 관한 한 고발 영상을 띄워준 거다. 무심코 누른 영상 속에서 무엇보다 끔찍했던 건 망치였다. 산 채로 머리를 가격 당해 죽어가는 소와 돼지들을 보며, 박말랭은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을 느꼈다. 그건 그간 그가 도축이라 오인해 온 도륙이란 명사를 식탁 밖에서 제대로 마주한 첫 순간이기도 했다. 박말랭은 어릴 적 보았던 영화「꼬마 돼지 베이브」를 떠올렸다고 한다. 베이브와 똑같이 생긴 분홍색 친구들이 화면에서 무참히 도륙당하고 있었다. 그 아비규환의 참상이 중학교 때 이후로 잠들어 있던 박말랭의 어떤 스포츠맨십을 일깨웠을 것이다. 우화가 거짓말이 되는 세상에선 어떠한 교훈도 진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박말랭은 가장 정적인 명사로 가장 극적인 형용사를 실천해 내는 부류 중 하나였다. 바로 ‘채식’함으로써 ‘건강한’ 도축 환경에 일조하는 것. 입맛을 바꾸는 덴 미식보다 의식이면 충분했다. 본인이 부당하다 생각된 일에 가차없는 부분이 누구보다 그다웠다.


 “그런데 왜 소랑 돼지만이야?


 궁금해진 내가 묻자 박말랭은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이 다 있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본 게 소, 돼지뿐인데?”


 새삼 영등위의 중요성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달까. 영상 속에 등장한 게 밥이나 물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어쩌면 건강이란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디테일함에서 비롯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부디 박말랭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계속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비록 그로 인한 내시경적 시력이 내 친구를 심하게 착한 편식쟁이로 만든다 할지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치킨뱅이 마니아가 됐다. 치킨과 골뱅이가 푸짐하게 공존하는 그곳에서 그는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폴로 베지테리언 생활을 실천 중이다.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박말랭과 만나는 날이면 나까지 덩달아 편식에 동참하는 날이 자주 있었다. 어차피 소, 돼지를 제해도 먹을거린 무궁무진한 세상이므로 실질적인 불편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미안함을 느낀 그로 인해 얻어먹은 횟수가 늘어난 건 부차적인 이득이었다.    


건강 [명사] 보는 것. 하지 않는 것. 하지 않음으로써 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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