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도 균형이 필요해요.

- 너무 공부만, 일만 강조하는 요즘 우리에게.

by 꿈꾸는 거북이

최근 한 지인의 자녀가 자살과 자해 시도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너무 놀랐다. 자살시도. 입원. 이라는 일련의 과정도 놀라고 걱정되는 일이지만,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아이는 누구보다 영특했고 가정도 너무 행복해 보였으며, 당연히 잘 지낼 거라 생각했기에, 자살시도와 자해라는 말은 너무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사실, 일을 하면서도 이런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가족들 사이도 좋아 보이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고, 학교생활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아이는 너무 힘들고 괴롭고 우울해서, 자살과 자해를 시도하는 아이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심리학적으로 세세히 따져보자면, 사람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을 한 명씩 생각하고 그려보면서,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듯한, 그러니까 한쪽은 너무 독보적으로 우뚝 튀어나와 있지만 한쪽은 너무 밑으로 꺼져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이런 불균형이 그려졌다.


지인의 아이를 생각해보면, 너무 영특했다. 공부도 그 외의 다른 예체능도 너무 잘했다. 눈에 띄었다. 그래서 재능을 키워주려 부모도 많은 노력을 했고, 아이도 열심히 했다. 아이가 달리면, 부모가 옆에서 채찍질도 하고 물도 주고 격려도 하면서 마구 밀어붙인 것이다. 그 아이에겐 그것뿐이었다. 그 외의 다른 것은 없었다. 재능 하나, 공부 하나, 잘하는 일 하나, 그것 하나 만에만 몰두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이성, 지성, 감성, 영성, 육체, 등등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사람을 이루는 것인데. 그 아이는 좀 더 뛰어난 한 재능에만 올인한 것이다. 그 아이의 사고력, 판단력, 감정능력, 체력, 영적 능력 어떤 것도 생각해 볼 가치가 없었고, 물을 주고 키울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나 홀로 독야청청 뛰어난 그 재능이 어느 순간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될 때, 그게 꺾이게 되었을 때, 얼마나 좌절스럽고 고통스러울 것인가? 이 좌절의 순간을 보듬고 견디고 힘이 되어, 좌절을 인내로, 인내를 통한 인고의 열매를 맺을 어떤 마음의 자원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우린 아이들이게 너무 공부만 강조한다. 혹은 어른에게는 너무 일만 강조한다. 우리가 아니라 이 사회가 그렇다.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과 그럴듯한 안정적인 직업이 삶의 전부인양 말한다. 물론 일이 중요하지만, 일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일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고 사람과 소통하며, 책을 읽고 사유하고, 감정을 경험하며, 세상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며, 우주에 대한 영적인 고민을 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내 능력, 내 공부, 나의 일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에 대해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유능했던 그 아이는 과연 자살시도를 하였을까? 물론 고통스러워 우울했을지는 몰라도, 자살이나 자해를 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혹은 인내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공부에 의미를 찾아 더 능력을 발휘했을지, 혹은 과감히 진로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도로 자신 있게 나아갔을지 모를 일이다.


워라벨이라는 말처럼, 한 개인 안에서도 균형이 필요하다. 너무 지식과 공부만 강조하면, 다른 수많은 영역은 너무 미숙한 상태로만 남아있게 된다. 마음의 균형이 깨어진 채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리의 길이가 서로 달라 쩔둑거리는 것, 혹은 손가락의 길이의 균형이 맞지 않아 피아노를 두손가락으로만 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의 반을 떼서, 놀이와 독서와 만남과 음악과 체육과 종교와 등등 다른 여러 것들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 아이가 앞으로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고, 성장하며, 의미있고 균형있게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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