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이럴 때니? 몇 살인데 이러니?라는 질문을 듣는 이를 위한 글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한창 대학원 다니고, 수련을 받을 때는 지금쯤이면 초보 전문가 딱지를 떼고, 어느 정도 연륜 있는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연륜 있는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기보다, 여전히 공부하고 배우며 협소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심리치료를 정말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그리고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에 닿게 되었다. 나이 30대 중반에 '아! 이것이다.'라는 확신으로 정신분석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은 이론 공부뿐만 아니라 임상수련에도 수년동안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국내에서 전공자를 위한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기관도 흔치 않고 자격요건도 까다로워 내가 하고 싶다고 언제든지, 마음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정신분석가'로 일을 하고자 10-20년을 더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떤 이는 나에게 소신 있다며 비꼬기도 했다. 한마디로 뭘 그리 피곤하게 사느냐이다. 그렇게 심리치료를 하고 싶다면 적당한 full-time job을 잡아서 일하며 지내라는 뉘앙스였다. 그리고 세상의 관점에서 보기엔 난 이미 한 집안의 엄마이자 아내였다. 이제 애들은 커가고 생활비와 교육비가 늘어날 텐데, 날 위해 공부하는데 돈을 써도 될까? 내가 마치 집안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았고, 나잇값도 못 하고 엄마라는 역할도 잘 못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내가 너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다 과거 나의 선택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보라며 노래를 불렀는데, 난 그냥 심리학과를 택했지. 대학교 졸업할 때도 공시 준비하면 전폭 지원하겠지만 대학원을 가면 1원 한 푼 안 줄 거라는 부모님의 협박을 무시하고, 엄청난 욕을 먹고 대학원을 택했지. 그리고 지금도 남들은 안정된 직장과 고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일하지만, 난 정신분석을 하겠다며 공부하는데 돈을 다 쓰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지.' '내가 세상과 현실에 맞추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대학교 때부터 심리학을 택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공무원 시험을 쳤을 것이며, 공무원이 되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을지도.'
그래, 난 이런 사람이었다.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택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그때마다 부모님의 질책이 있었다. '네가 지금 몇 살인데 진로를 고민하느냐? 벌써 결정했어야지!' '지금 누구는 어딜 취직하고, 어딜 합격했다더라.' '너만 생각하고 되게 이기적이다. 취직을 해야지. 무슨 대학원 공부냐.' 이런 말을 20대 내내 들어왔다. 당시 나는 돈과 직장만 생각하는 부모님이 보기엔 세상 '답답이' '모지리'였다. 그런데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뒤에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유명해지고 각광받는 분야가 되자, 나는 부모님에게 세상 모지리에서 세상 '똑똑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었을 뿐인데, 돈 되는 좋은 직업이라는 것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때는 세상 모지리였고, 이제는 세상 똑똑이가 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내가 들었던 부모님의 말, 그 지긋지긋한 말들이 내 안에 깊이 박혀있는지 몰랐다. 부모님의 생각이 바로 내 생각이었고, 바로 내 목소리로 드러났다. '지금 나이가 몇인데 공부하느라 돈을 쓰냐' '누구네 와이프는 일해서 돈을 얼마큼 버는데, 나는 보탬도 못 되고, 오히려 돈을 더 쓰고.' '나 때문에 애들도 남편도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
부모님의 관점, 부모님의 시간, 세상의 시간과 틀로 보자면 나는 이기적일 수 있다. 그리고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엄마, 아내의 역할을 잘 못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시간과 내 삶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매 순간 내 마음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순간, 내가 정말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여러분들, 모두 자신만의 시간과 자신만의 삶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의 흐름은 세상의 관점에 맞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도 내 마음에 확신이 있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나아가셔도 괜찮습니다. 정말 진실로 마음에 닿은 행동과 결정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이며, 여러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나의 진실된 삶을 공감하는 사람과 시간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