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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Apr 21. 2018

디자이너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직업?

제목에서 짐작하신 대로 이 글은 전에 쓴 디자이너와 가장 비슷한 직업? 의 2편입니다.

https://brunch.co.kr/@sooshinchoi/21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기아 세피아의 개발에 5년 반이 걸렸고, 카니발의 개발에는 3년 7개월이 걸렸습니다. 여러 달 걸려서 디자인을 확정하고 나서도 몇 년이 더 결려야 개발이 완성이 되는 일이다 보니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디자인하는 것이 과연 여러 해가 지나도 먹힐까 하는 겁니다. 패션을 봐도 스커트의 길이가 짧아지고 길어지며, 유행을 덜 타는 남성 정장도 칼라의 폭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거든요. 자동차도 곡선 위주의 부드러운 디자인이 대세였던 때가 있는가 하면 날카롭고 직선적인 공격적인 디자인이 많이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자동차의 크기도 크고 작아집니다.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 (산유국들이 기름 생산을 통제해서 국제 유가가 엄청나게 올랐었음) 때에는 커다란 미국 자동차들이 완전히 실패해서 일본 자동차들이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었지요. 오일 쇼크 같은 일이 벌어질 줄을 미리 예상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크라이슬러의 미니밴 개발로 시작된 미니밴 열풍은 10여 년이 지나자 SUV의 유행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개발이 오래 걸리는 자동차 같은 제품의 디자인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요.


1983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이스즈의 디자인 개발 과장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의 심리가 경쟁적, 공격적으로 바뀌고 스커트의 길이가 짧아지며 자동차의 스타일도 공격적으로 바뀐다.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니 스커트의 길이도, 자동차의 스타일도 먼저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변한다는 거지요. 문제는 경제 사정이 어려워질 것을 몇 년 후에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거지요.



자동차 역사에서 참담한 실패작으로 꼽히는 것은 미국 포드의 에젤 Edsel입니다. 창업자의 아들인 에젤의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당시 포드가 얼마나 큰 기대를 가졌었는지 알 수 있지요. 한데 이 자동차가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이라니 마음이 많이 아팠을 듯합니다. 이 모델이 실패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꼽습니다. Ford Edsel을 검색해 보면 그 모델이 왜 실패했는지를 분석한 기사가 수도 없이 많이 올라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만든 자동차이니만큼 곳곳에 힘이 팍팍 들어가 있습니다. 스타일링 적인 측면에서는 곳곳에 무리를 한 흔적이 있고요. 특히나 라디에이터 그릴의 수직 형태가 하도 흉해서 말굽 (horse shoe) 또는 심지어 변기 뚜껑이라고 까지 놀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실패의 이유는 bad timing입니다. 때를 못 잡은 거지요. 포드의 여러 브랜드들은 가격 면에서 상위층과 하위층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에젤은 가운데 층으로 포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즉 중산층이 살 수 있는 자동차로 계획된 거지요. 한데 1957년 에젤이 출시되기 바로 몇 달 전부터 미국의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합니다. 개발 당시의 시장 조사는 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한데, 예기치 않았던 경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게다가 디자인도 외면을 받고.


디자이너를 포함해서 자동차를 개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필자도 자동차를 디자인하던 시절에는 한 몇 년만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 - 훌륭한 디자이너는 포츈 텔러 (Fortune teller) 즉 점장이 와도 같지 않을까. 자 디자이너와 비슷하지만 다른 직업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포츈 텔러 Fortune Teller

약간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내내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왜 포츈 텔러가 디자이너와 다른 직업이라고 하는 걸까. 정답은 디자이너들은 포츈 메이커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속칭 미아리 고개라고 불리던, 사주 관상을 보는 집이 줄지어 있던 동네가 있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면서 든 생각은 저렇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다 안다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남들 관상이나 봐주고 푼돈을 벌고 있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설사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Photo by Jose Antonio Gallego Vázquez on Unsplash

중국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시장 거리에 있는 점집에 가서 물어봅니다. 내 미래의 아내를 보여 줄 수 있느냐고. 그 점쟁이는 저 멀리에서 놀고 있는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저 아이가 장래 당신의 아내가 될 거라고 말해줍니다. 그 아이를 보니까 꾀죄죄하고 정말로 볼품이 없었습니다. 낙담을 한 청년은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서 아직도 시장 거리에서 놀고 있는 이 아이를 향해 화살을 쏘고, 아이가 쓰러진 것을 보고 나서는 자리를 뜹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 청년은 아리따운 아내를 맞이해서 결혼을 합니다. 첫날밤, 머리 장식을 벗기려 하는데 신부가 안 벗으려 하는 겁니다. 이유를 묻자, 자기가 어렸을 때 갑자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을 이마에 맞고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았다는 거지요. 이 이야기의 교훈은 설령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고 해도 피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알아도 소용없는 미래를 알려고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작년, 근무하던 디트로이트에 있는 대학교 졸업식에서 제가 축사 중간에 노래를 불러서 소위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졸업식장에서 노래 부르는 부총장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 축사의 주제는 미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디자이너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디자인하는거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부른 노래가 케세라세라 Que Sera Sera 였습니다. 제가 시작을 하자, 이 오래된 노래를 아는 부모들이 다 따라 부르는 바람에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노래가 끝난 후 제 말이 이어집니다. 이 노래에는 "The future's not ours to see", 즉 "우리의 미래를 볼 수는 없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The future is ours to make", 즉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거야"라고 하고 마쳤습니다. 두고두고 화제가 된 졸업 축사가 되었습니다.


흔히들 디자이너는 스토리 텔러가 되어야 한다고 하고, 스토리 텔링 능력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온 이야기를 해도 훨씬 더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으니, 스토리 텔링 능력이 중요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스토리 텔러가 아니라 스토리 메이커입니다. 포츈 텔러가 아니라 포츈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입니다.


2. 디자이너 Designer

이건 더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디자이너가 왜 디자이너를 다른 직업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잘 못 쓴 거 아닐까? 아닙니다. 스스로가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다 역할 놀이를 합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고, 클라이언트나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은 디자인을 선택합니다. 대개의 경우,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은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경우에 마케팅을 담당한, 즉 매출을 담당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디자이너들은 클라이언트한테 받게 되는 용역비나 회사에서 맡겨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 내는 것이 목표가 되는 반면, 디자인은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디자인을 선택했을 때 발생하는 것 들, 즉 투자비, 시장에서의 경쟁력, 예상 매출과 이익 등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사실 엄청난 문제점이 숨어 있습니다.

Photo by Kaboompics .com from Pexels

예를 들어 보지요. 요즘 들어 디자인 방향이 고갈된 A사 (Apple을 말하는 걸 거라고 넘겨짚으셔도 크게 틀린 것 아닐 것 같네요)가 내게 새로운 제품의 디자인을 맡긴다고 가정합시다. 디자인 용역비로는 5천 만원이 책정되었고 채택을 하면 채택 보너스로 5천만 원을 책정했다고 가정하지요. 나는 밤낮을 새고 열심히 작업을 할 겁니다. 저도 한국인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밤새는 것은 아주 잘 합니다. 작업하는 내내 1억 원이라는 디자인 용역비가 아른거립니다. 잘 못하면 5천 만원만 받고 끝날 수도 있는데 잘 하면 1억 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완성이 되고 경영진 앞에서 발표를 합니다. 발표 내내 1억 원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한데, 같은 시각, 발표를 듣고 있는 책임자 머리를 떠나지 않는 액수는 500억 원입니다. 만일 잘못된 디자인을 채택하면 500억 원 (물론 제가 가정한 액수입니다)을 날리게 되거든요. 디자인 하나를 놓고 발표하는 디자이너인 나는 1억, 듣는 사람 경영자는 500억을 생각합니다. 즉 500배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거지요.


결론적으로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는 내내 경영자 모자를 쓰고 해야 합니다. 즉 500억짜리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아니면 500분의 1, 즉 가벼운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3. 창조자 Creator

점입가경이로군, 아마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디자인 작업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이니까 당연히 디자이너는 창조자가 되고, 디자인 결과물은 피 창조물, 혹은 피조물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다 보니 내 디자인이 처하게 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일쑤입니다.


샴푸 용기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라고 가정해 봅시다. 실제로 이런 이런 일을 하시는 디자이너도 이 글을 읽으실 수 있겠군요. 담아야 할 양의 샴푸를 담기 위한 크기를 정하고, 브랜드와 제품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형태를 만들고,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면, 후면에 들어갈 그래픽을 위한 작업도 하겠지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디자인이 선택이 되고 별 문제가 없이 생산이 되면 디자인 및 제품 개발 프로세스가 끝납니다. 또 하나의 피조물이 만들어진 것이죠. 한데, 디자이너, 즉 창조자 스스로가 피조물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디자인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즉 피조물 경험을 해 봐야 한다는 거지요.

Photo by Igor Ovsyannykov on Unsplash


나 스스로가 내가 만든 샴푸병이 되어서 큰 마트 샴푸 전시대에 놓여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전시대, 매대에는 수 십 가지의 각기 다른 형태의 샴푸병들이 놓여있습니다. 저 쪽 끝에 한 사람이 걸어 들어옵니다. 샴푸병들을 대략 훑어보더니 이것저것을 들고 살펴봅니다. 이윽고 한 제품을 사 가지고 사라집니다. 또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이 사람도 어떤 제품을 선택해서 사라집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나는 선택되지 못했습니다. 매장의 불이 꺼지고 밤이 됩니다. 나는 덩그러니 서서 내일을 기다립니다. 다시 날이 밝고 매장에 사람들이 들락거리지만 결국 오늘도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내일은 운이 좋겠지. 하지만, 내일도, 그다음 날도 지나가 버리고, 팔리지 못한 나는 박스에 다시 담겨서 뒷 창고에 던져집니다.


제대로 된 디자이너라면 창조자 코스프레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조물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맨 처음에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스스로도 언젠가 뒤 창고 신세가 될 거거든요. 좀 섬뜩하게 들리나요? 그런 모습,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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