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잘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 – 얼마나 다른가
우리가 공부를 하고, 대학을 진학하고, 직장을 얻는 일련의 과정을 잠깐 들여다보자.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더 나은 일이나 직장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며, 더 나은 직장을 가지면 연봉도 높고,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수 있으니 할 수 있다면 모두들 그렇게 하려고 애쓴다.
이 패러다임의 핵심은 one-of-them이 되는 것이다. 즉,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남들보다 나은 직장에 감으로서 그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그룹에 포함되고 싶은 열망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런 그룹에 합류하게 되면 안정감을 느끼고 또 그 그룹에 들어온 보상으로 나도 잘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진다.
이러한 생각의 근원은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의 역사적, 환경적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환경에서 농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남들보다 특별히 다르게 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남들이 모내기할 때에 그렇게 하고, 물을 댈 때에 그렇게 하고, 또 남들이 추수할 때에 추수를 하면 되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포함되어 있으면 특별히 잘 못 될 일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대로 유난스러운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와 비슷한 그룹에 포함되고, 또 그렇게 해서 안정감을 유지하고 불안함을 덜어 버릴 수 있었다. 혹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를 망쳐도 나만 잘 못 되는 것이 아니니 그것으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 후에도 이런 생각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남들처럼 하기.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학벌을 가진 취업 경쟁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남들보다 더 나은 차별화를 가지기 위해서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들보다 뭔가 더 잘하고 더 많이 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남의 논에 물을 대기 전에 내 논에 물을 끌어들이고, 더 나은 품종의 쌀을 심고, 제초도 먼저 하고 피도 먼저 뽑아야 더 나은 쌀을 수확하게 되었다.
공모전에도 출품하여 상을 받고, 여러 가지 자격증도 따고, 외국어도 공부하고, 인턴 경험도 하고. 물론 이러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남들보다 뭔가를 더 잘하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니 유리하기는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회사에 반드시 더 나은 기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더 많은 스펙 = 더 유리한 취업’이라는 공식이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물을 더 빨리 대고 더 나은 품종을 심어서 더 나은 쌀을 수확하는 것만으로는 별 차별화를 만들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더 빨리 수확한 쌀이 언제나 더 맛있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똑똑한 농부는 더 빠르게 일하고, 더 우수한 품종으로, 더 많이 수확하는 것으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 다른 품종, 다른 작물을 가지고 승부를 건다. 레드 오션 속에서의 물고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더 열심히 헤엄을 쳐도 별로 건질 것이 없을 것이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 그리고 더 다르게
올림픽의 모토는 ‘Citius, Altius, Fortius’, 즉 ‘빠르게, 높게, 강하게”다. 하지만 속도, 거리, 힘 모두가 내 편이 아니라면 여기에 ‘다르게’를 포함시키면 된다.
전통적으로 동구권, 북미권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한국 선수를 포함한 아시아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1992년 프랑스 알버트 빌 동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의 한 분야이므로 정식 명칭은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이다) 종목에서는 그전까지 빙상 종목에서 얼굴도 볼 수 없었던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건 이래 한국 선수들이 시상대에 선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쇼트 트랙은 우리나라의 속칭 ‘메달 밭’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비슷해 보이는 이 두 종목은 사실은 상당히 다르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누구의 속도가 더 빠른지를 측정하는 반면, 쇼트트랙은 속도에 민첩성, 코너링 기술이 더해지고, 앞다투기를 잘할 수 있는 용기와 순간적인 판단력 등이 종합된 실력을 겨루는 것이기 때문에 속도에서는 떨어지더라도 기민성이 뛰어난 우리나라 선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스케이팅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것을 더 잘하는 것으로는 차별화를 시키기 어렵다면 다른 것으로 돌파를 해야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One-of-them 이 아닌 One-of-a-kind로
남들보다 자격증이 더 많고, 시험 성적이 더 높은 것으로 차별화가 더 이상 생기지 않는 오늘날에는 남들과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다른 사람의 그룹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One-of-them으로서 다른 사람들과의 유사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one-of-a-kind 으로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신이 속한 분야의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실력은 당연히 가지면서도,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특기나 경험을 통해서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해 낼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one-of-a-kind가 되는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같은 기악을 연주해 왔다면,비지니스를 공부했는데 등산을 좋아한다면,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유리공예 같은 비 디자인 수업을 자주 들었다면,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저널리즘을 공부했는데 바다 낚시에 빠져있다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이 전공인데 손으로 만드는 나전 칠기를 좋아한다면, 토목이 전공인데 미술에 조예가 깊다면 등등.
수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음악가 수준으로, 로터리 엔진 (Wankel engine으로도 불린다) 을 발명한 펠릭스 방켈은 첼로를 종종 연주하였고, 그리고 애플 사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대학교에서 유일하게 즐겼던 수업이 캘리그래피 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런 사람들이 가진 각각의 특기나 관심은 그 사람들이 하던 분야와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복잡한 상대성 이론을 규명해 내고 이를 전달하는 일, 직선 왕복 운동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진동이 많은 피스톤 엔진에 비교하여 진동이 거의 없는 회전 운동을 위주로 하는 로터리 엔진을 구상하고 현실화 하는 일, 무미건조하던 컴퓨터 분야에서 각각의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사람받을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의 세상을 여는 일에 이 사람들의 바이얼린 솜씨, 첼로를 통한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 사람 손 맛이 표현되는 캘리그래피에 대한 괸심이 없었다면 닽생하기 어려운 걸작인 것이다.
여기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은 끝도 없이 많다. 당구를 잘 친다든지, 일본 망가에 빠져 있다든지, 자전거 여행을 좋아 한다든지, 시간만 생기면 가까운 외국 여행을 한다든지, 수필을 쓴다든지, 가능하면 남들이 안하는 것일 수록 더 좋다. 얼핏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이러한 취미나 특기, 경험 등이 사실은 전공 분야에 직접,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나를 one-of-a-kind로 만들어 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조리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요리를 잘하는 회계사는 숫자만 다루는 회계사와 어디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또 라틴 댄스를 취미 이상으로 잘 추는 보험설계사는 보험회사 약관만 달달외운 사람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널리고 널린 사람 중 하나'로서가 아니라, '다른 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으로 기억되려면 누구나 한 두가지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공 분야와 딱히 상관없는 이러한 것들을 나의 ‘본업’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잘 표현하면 된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학벌이나 성적 등 한 두 가지 측면에서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one-of-a-kind로써의 자신을 생각해 보고 이를 부각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플리케이션
1. 나와 유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 전공 분야, 성별, 경험 둥 - 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심, 능력, 경력, 자격증 등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적어보자.
2. 내 전공이나 경력과 상관없는 취미나 장기 또는 관심 분야 등, 특별히 다른 사람들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적어보자.
3. 할 일은 제대로 하는, 그저그런 사람보다 뭔가 남다른 부분이 있는 내가 되려면 어떤 다름을 가지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