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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Jan 25. 2019

인터뷰, The Moment of Truth

사냥 용어에 Moment of Truth라는 것이 있다.


많은 훈련을 하고, 사냥 장비도 준비하고, 사냥터에 나가서 표적이 될 동물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적당한 사냥감을 만난다. 때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 순간을 가리켜서 moment of truth라고 부른다. 한글로 글자 그대로 옮기면 좀 어색하게 들리지만, 원래의 뜻은 deciding instant, 즉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라는 뜻이다.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moment of truth들이 있고, 이 용어는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서 자주 쓰인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두고 고민하고 평가하다가 드디어 그중 한 가지로 정하고 사인 오프를 하는 순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모든 내용을 다 설명하고 투자자의 결정을 끌어내는 순간. 이런 모든 것들이 결정의 순간들이다.


우리들 일상에도 마음먹고 오래 준비했던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이 허다하다. 상점에서 이 물건 저 물건 다 따져보고 드디어 그중 하나를 들고 카트에 담는 순간. 아침에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그중 하나를 입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드디어 한 사람을 정해서 평생을 같이하기로 정해서 프러포즈를 하는 순간. 크고 작은 이 모든 것들이 결정의 순간들이다.  


직장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인터뷰가 바로 moment of truth라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 준비해 온 모든 것의 결판이 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어도 막상 인터뷰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묵었던 호텔 로비에 까만 정장을 단정히 입은 남녀 청년들이 큰 로비에 가득 모여 있다가 조금 지나서 모 대기업 면접 장소로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들 대부분은 인터뷰를 잘하는 법을 책이나 인터넷을 보고 열심히 준비를 했겠지만, 또 호텔 로비에서 대기하는 동안 뭔가를 들여다 보면서 달달 외웠지만, 그들의 뒷모습은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학교를 막 졸업하고 취직을 위한 인터뷰를 하는 일이 결코 쉬울 리 없다. 인터뷰 예상 문제집에 있는 질문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인터뷰를 진행하는 인터뷰어들이 다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대부분의 우리나라 기업 인터뷰처럼 딱딱한 분위기의 인터뷰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옆에 앉아있는 경쟁자들의 일거수 일투족도 엄청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고.


어떠한 인터뷰 환경에서도 아쉬움 없는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인터뷰는 나한테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터뷰를 받는 인터뷰이 입장에서 인터뷰가 어렵지만, 그건 인터뷰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류 몇 장과 짧은 시간의 인터뷰로 정말로 원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나만 마음 졸일 일이 아니다. 내가 직장을 원하는 만큼이나 회사는 쓸만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 애가 타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고 나면 좀 마음이 놓일 수 있다.


인터뷰라는 것이 피차간에 어려운 일이라면 인터뷰하는 사람들 도와주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다. 즉,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해 주는 것이다. 단답형이 아니라 대화형으로. 영어실력을 물어오면 "네, 토익 800점입니다" 하는 대신, "토익 800점인데, 외국인 친구들과도 종종 어울립니다" 하는 식으로 대화를 한다. 회사는 나의 영어 점수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나의 외국어 능력이 궁금하고, 그 능력이 회사의 일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나는 이미 회사 편에 속한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둘째, 지피지기 백전불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를 잘 알고 상대를 잘 알면 아무리 싸워도 절대 불리하지 않다. 이 준비가 잘 되어 있다면 이미 이기고 들어가는 게임이 된다. 상대방이 나를 아는 것은 내가 제출한 서류, 그리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나. 반면, 그 회사의 비전, 장단점, 미래의 계획, 그리고 필요로 하는 사람까지 알고 있다면 내가 훨씬 더 우위에 있는 셈이다.


지원하는 회사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내용을 밑줄치고 달달 외워서 읊는 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그렇게 외운 기억은 막상 인터뷰어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하얗게 휘발해 버리기 십상이다. 어떻게 잘 기억해 냈다고 하더라도 별 내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 왕조의 순서를 “태정태세문단세…”하는 식으로 외워봐야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쓸모가 없는 것과 같다. 그보다는 그 회사의 주요 내용들 상호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서 그 회사가 속한 산업의 변동 내용과 그 회사가 집중하고자 하는 사업의 관계 등.


셋째, 수비를 공격으로 바꾼다.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는 곧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질문의 의도도 파악해야 하고 또 답도 준비해야 하므로 마음이 급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룹 인터뷰인 경우, 옆에 앉은 사람이 내가 할 답을 미리 해 버리면 다른 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수도 있다. 찬스만 생기면 내가 질문을 하도록 한다. 대답을 하다가 말미에 질문을 달아도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외국어 실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내가 가능한 외국어를 이야기하고, 이어지는 질문으로 그 회사나 부서가 앞으로 어떤 나라와 비즈니스를 하게 되는지, 또는 출장이나 해외 파견에 외국어 능력을 감안하는지 하는 것들을 짤막하게 덧붙여 물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그 회사와 그 회사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수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하는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물론 ‘공격’이라고 해서 공격적인 태도는 곤란하겠지만, 패시브한 모습이 아니라 액티브한 모습은 대부분의 경우에 좋은 인상을 남긴다.


넷째, 앞으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뿐만이 아니라 나의 꿈과 그 꿈을 위해 해 온 실질적인 노력을 설명한다. 물론 이런 내용은 자기소개서나 포트폴리오에도 잘 나타나 있어야 하지만, 인터뷰 때에도 이런 것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외국어 회화 실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에 대한 답만을 하지 말고, 외국  기업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러면 당장 그런 일을 하게 되지 않더라도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줄 수 있다.


최근 여러 회사들이 며칠에 걸친 인터뷰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질문-답변의 형식 이외에 태도나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 형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회사로서는 지원자들의 특성을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고, 지원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서 효과적이다.


합숙 기간 동안에 개인의 자질과 다른 사람과의 인터랙션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더십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가 속한 그룹을 자기 뜻대로 이끌어 가려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받을 리가 없다. 반면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그 의견들을 협동적으로 조율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또 수준이 높은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라면 회사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뽑고 싶어 질 것이다.


다섯째, 뻔한 말은 하지 않는다. 뽑아만 주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 같은 것들은 하나마나 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의 아쉬움을 통째로 드러내어 오히려 나는 별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절하해 버리는 모양새가 된다.


내가 미국에서 교수 채용을 할 때 왜 우리 대학에 지원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가르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것은 하나마나 한 소리일뿐더러 대개는 솔직하지 않은 답이기도 해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인터뷰를 하는 상황이라면 가르치는 것을 즐긴다는 답을 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몇 가지만 더 질문해 보면 바로 바닥이 드러난다.


내가 왜 이 회사에 지원하는지, 그 회사 입장에서는 왜 나와 같은 사람을 뽑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아까의 그 교수직에 지원한 사람도, 이 학과는 이러저러한 분야를 더 가르치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자신의 전문 분야가 바로 그런 내용이며, 또 그런 과목을 성공적으로 가르친 경험도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안 뽑을 이유가 없다.


여섯번째, 내가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 장소는 그동안 외부적, 피상적으로만 알아오던 회사를 직접 만나보는 순간이다. 나를 인터뷰하는 사람들은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서 그 회사의 실질적인 모습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질문을 하고 나는 답을 하는 구조에서는 그들을 통해 회사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따라서 간간히 내가 질문을 던지는 기회를 잡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중국과의 무역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대해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 직원들의 이직률은 어떤지, 직원들의 계발을 위한 프로그램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하는 것들은 좋은 질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회사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사실, 어떠한 인상을 주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반응을 통해 과연 내가 일을 할 만한 회사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회사를 인터뷰하는 것이다.


요점은 간단하다. 나를 만나는 순간이 인터뷰할 사람에게 있어서 moment of truth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도 취직을 할 수 있어서 기쁘겠지만, 그보다 나를 뽑을 수 있어서 더 기쁘다는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와 자세로 제대로 된 인터뷰를 했는데도 되지 않는다면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 또는 나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두 가지 모두 나와 궁합이 맞지 않은 경우이니, 나를 자책할 일이 아니다. 궁합이 맞는 곳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다.


어플리케이션


1. 나를 한 마디로 소개할 수 있는, 소위 '엘리베이터 피치'를 적어보자.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수정해 가며 적어보자. 나는 어떤 것을 가치있게 여기며,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또 그 역할을 위해서 어떠한 준비를 해 왔는지를 30초 안에 귀에 쏙 들어오게 말 할 수 있도록 정리해 본다. 


2. 내가 관심있는 분야, 또는 기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외에 더 깊이 알아보자. 긍정적인 면과 그렇지 않은 부분, 앞으로 변화해 갈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 당면한 문제 등을 속속들이 알아보고, 그런 것들과 나와 관련이 있는 부분을 적어보자.


3. 내가 인터뷰어라면 나한테 무엇이 궁금할지, 또 무엇을 물어보고 싶을지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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