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신 Aug 24. 2019

옆 집 잔디가 더 푸른 이유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또는 줄여서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직역하면 남의 집 잔디가 언제나 더 푸르다는 이야기다. 영어에만 그런 속담이 있는게 아니고 어느 나라에나 비슷한 말이 있을텐데, 이는 단순히 속담이라기 보다는 우리들의 심리상태를 명쾌하게 짚어낸 말이다.


Tom Jones가 불러서 세계적인 히트를 했고 지금은 고전이 된 팝송, Green green grass of home에도, 또 남진이 불렀던 당대의 국민가요, "님과 함께"에 등장하는 "저 푸른 초원위에..." 등, 수많은 노래는 모두 푸른 잔디밭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하는 노래로 번안된 곡의 원곡인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도 사실은 누런색의 금잔디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잔디가 푸르렀던 예전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잔디는 푸를때가 아름답다. 그런데 왜 우리 집보다 옆집의 잔디가 언제나 더 푸르게 보이는 까닭은 뭘까.


첫째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먼저 사과의 경우. 흔히 남의 사과가 더 크게 보인다고 하는데, 원근법의 기초해서 생각해 보면 같은 크기의 사과라고 할 때 시각적으로 남의 사과가 더 작아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남의 손에 있는 사과가 더 커 보인다면 그건 시각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이다. 즉 크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크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잔디의 경우, 우리 집과 옆 집의 잔디가 비슷한 상황이라면 옆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의 우리 집 잔디를 보면 위에서 잔디보다 갈색의 땅이 더 많이 보이지만, 멀리 있는 옆 집 잔디는 땅보다 잔디가 더 많이 보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더 푸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 집 잔디에 가서 우리 집 잔디를 보면 우리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일 것이다. 즉 옆 집 잔디가 더 푸른 것은 십중팔구 실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내가 가진 현실적인 문제들과 어려움이 나의 눈에는 가까이 보이는데, 남들이 가진 어려움이나 한계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더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다.


둘째옆집 잔디가 정말로  푸를 수도 있다.


만일 잔디를 잘 관리할 줄 모르거나 게으르다면 십중팔구 우리 집 보다 옆 집 잔디가 더 푸를 것이다. 십여 년 전, 미국에서 교외의 집에 살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은 잔디를 관리하는 것이 절대로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료도 때 맞춰 제주고 잡초도 뽑고 물도 충분히 주고 있어도 푸르고 건강하게 잔디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조금만 딴 데 신경을 쓰다 보면 누렇게 말라가거나 아니면 여기저기 이름도 모를 잡초가 퍼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귀엽다고 생각하던 민들레나 클로버 같은 풀들이 정말로 다루기 어려운 종류의 잡초라는 것도 집을 사고 나서 알게 된 일이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민들레는 잔디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골치 아픈 잡초일 뿐이다.

아예 잔디에 신경을 안 쓰는 듯 민들레 밭처럼 되어있는 집들이 있는 반면, 어떤 집들은 사철 푸른 잔디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집들의 대부분은 잔디 관리 회사에 맡겨서 때 맞추어 비료를 뿌리고 잡초의 종류에 맞추어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다. 물론 그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들은 나처럼 직접 비료와 제초제를 뿌리지만, 성분이 다른 건지 아니면 기술이 부족한 건지 전문 회사의 관리를 받는 집과는 확실히 달랐다.


만일 옆집의 잔디가 정말로 푸르다면 더 많은 관심, 비용, 그리고 노력을 들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정도의 투자를 하지 않고 우리 집 잔디가 덜 푸른 것을 불평한다면 이야말로 뿌리지 않고 거두려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하지 않는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 뭔가를 하지 않으면서 덜 잘 나가는 것을 자책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편이 더 낫다.


셋째사실은 우리  잔디가  푸를 수도 있다.


우리 집 잔디가 더 푸르거나 비슷한데도 옆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건 바로 "옆집 잔디가 언제나 더 푸르다"라는 영어 속담의 영향이다. 그러니까, 옆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더 푸르게 보인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실제적, 시각적인 판단이 아니라, 막연하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생각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생각은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몸에서 화학적인 반응까지 일으켜서 그 영향을 받게 된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땅을 사면 아무 일도 없는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게 되는 것은 늘 비교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면 샘이 나고, 이러저러한 생체 화학적인 반응을 거쳐 실제로 속이 쓰리게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남의 잔디에, 남의 일에 신경을 덜 쓰는 것이다. 쓰더라도 포지티브 한 방법으로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넷째우리  잔디가  푸르게   있다


옆 집 잔디가 실제로 더 푸른데 반해 우리 집 잔디는 성기고 누렇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실망하는 것 만으로 잔디가 푸르게 되는 일은 안 생길 테니까. 또 우리 잔디가 누렇다고 속만 태우고 있으면, 내 속뿐만 아니라 잔대도 같이 타들어 간다. 그 대신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고 필요한 만큼 기다려 주면 금방 푸르게 될텐데. 


처음 잔디 마당이 딸린 집에 살게 되었을 때는 잔디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잡초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당연히 잔디는 자주 누렇게 변하고 말라죽기도 했었다. 또 이름도 모를 잡초가 여기저기에 출몰하였고, 그럴 때마다 가까운 HomeDepot 스토어에 달려가서 잡초를 보여주고 적당한 잡초 약을 사다가 뿌리곤 하였지만, 신기하게도 잠깐 죽은 척하던 잡초들은 잔디보다도 더 파랗게 되살아나곤 하였다. 잔디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해서 종일 햇빛을 받는 곳에 적합한 종자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특성을 가진 잔디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잔디를 어느 정도의 길이로 깎아야 하는지, 물은 어느 시간대에 얼마나 자주 주어야 하는지, 비료는 어떤 것을 주어야 하는지, 어떤 종류의 해충이나 동물들이 잔디가 자라는데 장애가 되는지, 이런 해충과 동물들을 제거하거나 쫒아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로 알아야 하는 것이 많았다.


이런 것들을 10여 년 동안 공부하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제는 우리 집의 잔디가 웬만한 집 잔디에 비해 더 푸르게 되었으니, 누구나 푸른 잔디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다섯째우리 동네 잔디가  푸르게 되면  좋은 일이다.


사실 어느 한 집의 잔디가 다른 집 보다 더 푸른 것보다는 모든 집의 잔디가 다 푸르게 되는 것이 가장 좋다. 미국의 웬만큼 사는 동네에서는 잔디를 때 맞춰 깎지 않고 긴 채로 놔두는 집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은 물론, 시청에서 우선 경고장을 보내고, 그래도 대응이 없으면 불시에 나와서 잔디를 깎아버리고 벌금을 부과한다. 나의 게으름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치게 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각기 ‘우리 집’ 잔디를 푸르게 유지하면 모든 집들이 잔디가 보기 좋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들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으며, 당연히 집 값도 잘 유지될 수 있다. 


한마디 

잔디에 대한 영어 격언이 하나 더 있다. Grass cannot grow through concrete, 즉 잔디는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지 못한다.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은 굳이 필요 없을 듯하다.


- 새벽의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며 -


어플리케이션


1. 나보다 더 모든 일에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은 나에 비해 어떤 점이 다른가 살펴보자. 특히 선천적인 (부모나 물려받은 것) 것들 말고 후천적인 것들 가운데 나에게는 없거나 또는 나는 하지 않는 것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적어보자.


2. 나는 '나의 잔디'를 더 푸르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 생각해 보자. 앞에 말한, 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던 것 들 중에 지금은 하지 않고 있는 것 등을 적어본다. 굳이 하기도 어려운 것들을 억지로 적지는 않는다.


3. 위에서 적어 본 것들 가운데 가장 쉽고 재미있는 것을 해 보고 더 푸르게 되는 내 잔디를 즐기자. 예를 들면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보고 마음에 드는 명대사를 비슷한 상황에 인용해 보면서 훨씬 풍부해진 대화 기법을 즐기는 식으로.

이전 13화 인터뷰, The Moment of Trut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