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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Jan 19. 2022

첫 만남

해장엔 술이 최고고 근육통엔 와드가 최고라고요...

소셜미디어에서 한 아기가 처음으로 탄산수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탄산수의 톡 쏘는 맛이 입안에 들어가 뇌로 전달되는 그 순간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지?’ 했을 것이다. 두 눈은 동그랗게 커지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 그 표정이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지 등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계속 보게 만드는 귀여움은 기본.


내게도 새로운 것이 최초로 오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뿐만 아니라 여행, 연애, 직장, 독립, 출판 같은 것들의 처음을 기억한다. 첫 경험은 그게 뭐든 기억에 오래 남는다.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처음으로 하고 나서 온몸이 근육통에 시달리던 일주일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크로스핏을 하기 전에는 살면서 근육을 제대로 쓴 날이 별로 없었다. 운동을 하는 것이나 그로 인해 온몸이 쑤시듯 아팠던 적도 손에 꼽혔다. 몸을 쓰는 삶에서 거리가 멀었다. 스포츠로 대변되는 것들은 내 취미가 아니었고 노동에 있어서도 책상에 앉아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생에 처음 크로스핏을 했던 일주일은 나름 대단했다. 근육통은 내 몸을 기계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거덕거리게 만들었는데도 마음에는 묘하게 희열이 왔다.


새해 다짐이 불러온 대망의 첫날. 무릎을 굽혀 앉는 스쿼트와 덤벨을 들고 팔을 들어 올리는 푸시 프레스, 엉덩이와 뒤쪽 허벅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데드리프트라는 동작을 배웠다. 둘째 날에는 어른이 되고 처음 마주하는 철봉에 매달렸다. 팔로 버티고 손으로 잡는 힘, 몸통에 힘을 주기 위해 하는 여러 동작들이 쉬워 보이는데도 몇 번 하자마자 금세 힘들어졌다. 셋째 날은 바벨이라는 도구를 들어 올리는 역도 자세를 배웠다. 그러고 나서 메디신볼을 벽에 던지는 동작과 누워서 몸을 V자로 만드는 복근 운동을 했다. 그리고 넷째 날이 되었다. 어제와 조금 다른 방식의 역도 동작을 배웠고 또 철봉에 매달려서 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운동을 했다.


둘째 날에 철봉 운동하면서 손바닥에 잡힌 물집이 넷째 날 철봉운동하면서 터졌다. 굳은살이 벗겨진 자리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새살로 인해 움직일 때마다 따끔거렸다. 특히 샤워할 때 물에 스치는 그 따끔거림은 처음 맛보는 극강의 고통이었다. 운동을 하면 전반적으로 온몸의 근육이 두루 쓰이지만 나는 특히 하체의 힘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여러 동작의 기본인 스쿼트 덕분인지 엉덩이와 허벅지의 뻐근함이 다른 부위보다 크게 느껴졌다. 평소 속도대로 걷지 못하고 계단을 오르내릴 땐 난간을 붙잡아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보려고 매일 스트레칭을 했다. 아니, 태생이 게으른 내가 자발적으로 스트레칭을 다 하다니?


확실한 건 크로스핏은 30년간 쓰지 않은 내 몸의 근육들에게 광란의 파티를 선사했다. 한편에선 거의 쓰인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내 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입에선 “아아아, 에구구” 하는 소리를 연신 내면서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움직이는 내 몸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났다. 최대한 무릎을 굽히지 않고 마치 학처럼 걸음을 떼면서 입꼬리는 올라가 실실 쪼개고 있는 나를 누군가가 봤다면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처음 맛보는 고통이 꽤 즐거웠던지 하루도 운동을 땡땡이 칠 생각이 없었다. 근육통이 내겐 첫 탄산수를 마시는 아이의 마음과 같았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리 운동하러 체육관에 갔다. 다리와 팔이며 등, 어깨, 엉덩이 심지어 배까지 아프다고 생난리를 치는데 막상 운동하러 가면 괜찮아진다. 워밍 업으로 조금씩 몸을 움직여 열을 내면 운동하기에 적합한 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전날 먹은 술로 쓰린 속을 또다시 술로 해장한다는 지인이 생각났다. 아, 나는 운동으로 뭉친 근육통을 운동으로 푸는 맛을 처음부터 알았구나! 사실 죽을 만큼 힘들다 해서 죽지는 않는다. 그저 그럴 것 같다는 거지, 거기에 따른 선택은 결국 마음이 하는 거였다.


운동을 한 첫날 빼고 3일 동안 근육통을 달고 사느라 그때 맞이한 주말은 참 꿀맛이었다. 지금도 근육통이 심할 때면 그때가 떠오른다. 처음 배워보는 동작을 비슷하게 따라 하기 급급했던. 그래서 몸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고 서툴렀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던. 철봉에 매달려 내 몸뚱어리를 들어 올리려고  악, 하고 소리까지 내질렀다. 꼭 하고야 말 테다는 굳은 심지가 내 안에 발현되던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운동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처음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하던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처음 이후에 올 여러 가지 경험들의 기준점이라서 그런가 싶다. 운동을 처음 했을 때 느낀 근육통이 내게는 즐거운 기억이라 다행이다. 나는 그때부터 내 근육들과 친해지리라 맘먹었다. 친해져서 더 이상 몸 안에 숨지 말고 좀 티 나게 나와주기를. 이왕이면 당장에 그러고 싶었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모든 건 어느 정도 단계를 밟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꾸준히의 힘은 무시 못 한다.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연습하는 만큼 느는 것은 운동이 지닌 장점이다. 만약 내가 첫술에 배부름을 바랐다면 지금까지 운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친해진 것 같긴 한데, 아직까지 내외하는 근육이 하나 있으니. 그 애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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