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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Feb 16. 2022

오늘도 득근득근

어릴 적 나는 몸이 아플 때 아픈 게 티가 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거나 식은땀을 흘려서 누가 봐도 아프다는 걸 알 수밖에 없는 몸. 그에 비해 나는 아파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가끔 몸살 기운이 있어도 겉모습은 말짱하다 못해 생생했다. 어른이 된 후에는 술을 마셔도 전혀 취기가 드러나지 않았다. 제법 마신 날엔 얼굴이 빨개질 법도 한데 전혀 취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주야장천 들었다. 


그렇지만 운동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크로스핏을 꾸준히 한 뒤로는 누가 봐도 ‘나 운동했소.’라는 티가 팍팍 났다. 생기 있는 표정도 표정이지만 몸 여기저기 없던 근육이 드러난 덕분이다. 허벅지 둘레가 늘어났고 팔꿈치와 손목 사이의 전완근이 피부 위로 도드라져 보였으며 목과 어깨 사이 승모근도 더욱 단단해지고 어깨도 넓어졌다. 신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근육이 적을 수밖에 없는 여성 치곤 ‘근수저’에 가까운 몸이다.


달리기를 오랫동안 한 사람은 그 특유의 체형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크로스핏도 마찬가지다. 크로스핏을 오래 한 사람이나 전문 선수들의 몸을 보면 직각으로 뻗은 어깨 대신 살짝 솟아오른 승모근이 다각형을 연상시키고, 등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라인은 곡선이라기보다는 단단한 코어 근육이 사선으로 뻗었으며, 허벅지는 당장이라도 앞으로 터져나갈 듯 옹골지다. 흔히 미디어에서 말하는 여성스러운 체형과는 거리가 멀다. 


종종 크로스핏을 하면 근육이 커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다. 남자라도 근육이 잘 커지지 않는 체형이 있고 여자라도 근육이 잘 커지는 체형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사람마다 몸이 가진 특성이 다르기에 직접 움직여보지 않으면 얼마나 ‘득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몸에 근육이 생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 요즘엔 근육이 탄탄하게 자리한 몸매를 선호한다. 예전엔 여성으로서 한 번쯤 여리여리한 몸매를 꿈꾼 적도 있었으나 포기한지 오래다. 


솔직히 말해 부서질 듯 가녀린 어깨와 잘록한 허리, 길게 뻗은 다리를 지닌 여성의 몸도 여전히 부럽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는 게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몸이기도 하고 곡선의 아름다움이 눈으로 보이니까. 그와 동시에 어깨, 등, 가슴, 엉덩이, 팔, 다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단단한 여성의 몸도 동경한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고 빠르게 움직이고 고난이도의 동작을 하는 다부진 몸은 내게 선망의 대상이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근육이 있고 그에 상응하는 근력을 갖춘 몸이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나와 같은 여성이라면 더욱 매력적이다! 처음으로 크로스핏을 하러 간 날, 철봉에 매달려 풀업(턱걸이)하는 여성 회원에게서 그 멋짐을 보았다. 코칭대로 철봉에 매달리고 팔을 굽혀 턱을 철봉 위로 올리면 되는 걸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좌절하는 내 옆에서 풀업을 뽐내는 그 여성은 그 자체로 빛나 보였다. 풀업이라는 동작을 하려면 거기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고 단련해야 한다. 결국 나는 부단히 연습한 후에야 얻을 수 있었다.


운동은 내가 원하는 몸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운동의 목적은 건강관리를 제외하면 불필요한 지방을 태워 몸의 무게를 적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요즘은 하고 싶은 동작을 더 잘하기 위한 훈련이라는 점을 운동의 목적으로 둔다. 물론 두 가지 목적이 따로 있진 않다. 하지만 전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마음이 더 크고 후자는 개인적인 발전을 기대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 목적을 바꾼 뒤로는 운동하는 게 더 즐겁기도 하고. 


원래 몸의 구조상 여자는 남자보다 근육이 적은 건 맞지만 얼마든지 비슷해질 수도 더 강해질 수도 있다. 신체능력이 발달하고 할 수 있는 동작이 많아지면 자신감도 덩달아 커진다. 대표적인 가슴운동인 벤치프레스는 여자라도 잘하고 싶은 맘이 크다. 간혹 여자 몸에 근육이 너무 커지면 보기 싫다는 그런 삿된 말에는 굳이 신경 쓰지 않는다. 요즘 운동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덕담은 다름 아닌 ‘득근하세요.’ 그리고 ‘중량길만 걸으세요.’인 걸. 나도 올 새해 덕담으로 들었는데 매우 기뻤다. 여러분도 오늘은 득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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