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태양을 막아섰다. 달은 태양보다 400배 작지만, 400배 더 가까이 있어서 작은 크기로도 온전히 태양을 가릴 수 있다. 지난 일요일에부분일식이있었다. 달이 태양을 절반쯤 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낮의 붉은 태양이작은달에게꼼짝 못 하는게 신기했다.
다음 일식은 10년이 지난 2030년 6월에나 볼 수 있다고 했다. "10년 후 우리는 어디서 뭘 하면서 다음 일식을 바라보게 될까?" 했더니, 아내가 "우리가 그때도 같이 살고나 있겠나?" 하기에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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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혜성이 떠올랐다. 핼리혜성은 1986년 4월에지구 가까이왔다가떠나갔다. 대략 76년을 주기로 태양을 타원형으로 돌고 있기에, 2061년 7월에 다시 지구를 찾아오기로 되어있다. 이제 주기의 절반쯤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쯤이면 지구에서 가장 멀리떨어져 해왕성 궤도 근처를 지나고 있겠다.
어린시절 핼리혜성은 생애 한 번만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같이 평균 수명 늘어나는 분위기로는다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혹시 다시 혜성을 볼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핼리혜성을 맞이하고 있을까?
Comet Halley (NASA)
'좌절의 기술'이라는 책은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철학자들이 삶을바라보고 좌절을 극복하는 방식을 담고 있다. 그 책에서 소개된 좌절 극복의 방법 중에서 '전망적 회고'라는 기법이 있다.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가서바로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는 자신을 그려보는 방법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그동안 죽음을 잘 피하고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자. 그때가 되면, 예전에 차를 몰고 마트에 다녀와 식사를 준비하고가족과 아웅다웅 어울렸던 일상을 꿈같은 시절이라그리워할 것이다.그러고 나면지금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시간인지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내 경우라면핼리혜성이 다시 지구로 돌아올때쯤, 매일 아침출근 전커피숍에 앉아 글을쓰는 지금 이 시간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아빠. 언제 와?"
저녁 약속 중에 딸에게서전화가 왔다.
"왜?"
"보고 싶어서..."
엄마가 전화해보라고 시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조금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언제 올거냐는 물음에는 상대방이 온다는 믿음과 함께 나는 기다릴 것이라는 다짐이 담겨있다. 여우가 어린왕자를 기다리며 행복해하듯, 기다림의 주체이던지 기다림의 대상이 되던지 기다림으로 채워지는 삶은 풍요롭다.
기다리는 시간은 꼭 온다. 10년 후에는 일식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고, 40년 남짓 지나면 다시 돌아온 핼리혜성 뉴스로 세상은 또 한차례 떠들썩하겠다. 그동안 달은 열심히 지구 주위를 돌고있겠고, 혜성은 반환점을 돌아 지구를향한 긴 여행을 계속하겠다.혜성을 기다리는 기다란시간은,이루어지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극복하는짧은 기다림의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다.
먼 훗날 내가 다시 찾아온 혜성을 맞이할 때, 부디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있기를, 그리고 지금 이시간에 그 순간을 이미 떠올렸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추억하기를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