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Jul 02. 2020

웃기는 이들의 눈물

우연히 TV를 켜니 개그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자막을 보니 그날이 마지막 회였다. 채널을 옮길 수가 없었다. 시작한 지 21년. 개콘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개그맨들이 모여 마지막 회를 꾸미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한참 동안 보지 않았다. 즐겨 찾던 맛집을 오랜만에 찾아간 느낌이었다. 그동안 다른 이들 역시 발길이 뜸했었던지 썰렁하게 변한 곳. 코로나 때문에 관객 없이 진행된 마지막 회를 보며 추억에 잠겼다. '갈갈이' 박준형이 "앞으로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들고 나와 감정이 받치고, 그날만은 연기자이자 관객인 개그맨들이 오래된 코너들을 재연하며 눈물을 계속 훔쳤다.

'개그콘서트' 마지막 회, KBS

시청률이 30%를 넘나들던 시절, '달인' 김병만이 달인도 아니면서 능숙한 척하는 모습이나 '용감한 녀석들'이 평소에 감히 못 하는 말들을 주저하다가 외친 후 서로 '용감했어.' 하며 추켜세우장면에 많이 웃었다. 남들 앞에서 잘하는 척 조금씩 속여가고, 하지만 권위에 쫄아 말도 제대로 못 하며 살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라던가, 네 가지 없는 네 가지라던가 하는 코너도 그랬다. '봉숭아학당'을 끝으로 엔딩 시그널로 'Part-time lover'가 흐르면 이제 주말이 끝났음을 실감하며 아쉬워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 정서도 바뀌었다. 개콘이 점차 외면받으며 시청률이 2%대로 떨어지는 동안 그 자리를 관찰 예능과 경연 예능, 리얼 버라이어티가 채웠다. 연예인들이 여행 가고 음식 만들어 먹고 아이 키우는 모습지켜보거나, 무한 경쟁을 벌이는 오디션, 여럿이 대본이  듯 모여 노는 영리한 예능이 인기를 얻었다. 무대 위에 오로지 관객을 웃겨보겠다는 목적으로 올라오는 순진한 과장과 풍자는 더 이상 잘 먹히지 않았다. 사람들을 웃긴다는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개그콘서트' 마지막 회, KBS

사람을 웃게 만드는 직업이라니, 세상에 그보다 어렵고 보람 있는 일이 있을까? "그래, 어디 한번 웃겨봐."라는 과제는 동화 속이나 면접에나 등장하는 힘든 일이다. 전문가가 만들어준 노래를 반복하여 부를 수 있는 가수와 달리, 시간에 쫓겨 아이디어를 짜내고 같은 개그를 반복할 수 없는 개그맨이라는 일은 훨씬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을 웃기면서 돈을 버는 직업이 지니는 의미는 작지 않다. 그러한 일의 기쁨과 슬픔 속에 오랫동안 지내온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마음이 찡했다.


사람마다 하루 중에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쉬는 횟수는 비슷하겠지만, 웃는 횟수는 저마다 다르다. 채소나 돌멩이같이, 놓아두면 그냥 상하거나 가라앉기에 십상인 것이 사람의 기분이다. 하루에 5분씩 웃는다 도 평생 웃는 시간으로 석 달을 못 채우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마저도 쉽지 않다. 누군가의 그런 기분을 다시 싱싱하게 만들고 띄워 올리는 일, 개그맨들은 '웃기는 사람'이 되어 그런 일을 매일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개그콘서트' 마지막 회, KBS

삶은 어쩌면 한 편의 개그콘서트 같다. 아기 때는 '까꿍'이나 '엄마없~다' 같은 제목을 가진 코너의 관객이었다. 까르르 웃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커서는 어설픈 달인이거나 가끔 용감한 녀석이 되었다. 나름 정색하고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무대에 서기도 했다. 어떤 관객은 웃어주었고 어떤 관객은 외면하기도 했는데, 가장 잘 웃어주던 관객은 지금 가장 가까이에 있다. 언제 다시 웃겨줄래? 하면서 스윽 쳐다본다. 기억 속의 나는 아내에게 '항상 웃게 해 주겠다.'라고 고백했었다. 이제 방송에서 개그콘서트는 막을 내렸지만, 현실 속 소중한 사람에게는 스스로 계속 개그맨이다. 한 명에게라도 항상 웃음을 주며 산다면 그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이전 04화 얼음의 허들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