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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Apr 25. 2020

길들이면 길이 된다

출근길에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가려면 공원 한 귀퉁이를 지나야 다. 나무들 사이 걷기 좋게 포장된 보도가 하철 입구를 향해 이어지는데, 산책로 보통 그렇듯 공원을 빙 둘러 조금 돌아가도록 어있다.


이른 아침 지하철은 배차 간격이 길다. 한번 놓치면 십 분을 기다려야 해서 시간을 맞추려 바삐 가야 다. 오 분만 일찍 나오면 굳이 그럴 일은 없겠으나 잠을 줄이는  매번 생각뿐이었다.

스는 보통 지하철 시간  분 전에 나를 지하철역 근처 정류장에 내려놓는다.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시작하여 지하철 플랫폼에서 뚜두두두 소리가 나기 직전에 겨우 도착한다. 요즘 대중교통은 배차 시간이 정확해서 버스나 지하철이나 나나 모두 그런 일상 반복하고 있었다.


길이 눈에 띄었다. 나무들 사이를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바로 질러가는 길이 있었다. 사람들에 밟혀 풀자라지 않아 길처럼 보였.  길 따라가면 끝에 얕은 울타리도 뛰어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 길이 공식 통로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길을 통하조금 여유롭게 뛰어도 시간을 맞출 수 있었기에 나는 가끔 양심 시간맞바꾸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진짜 길이 생겼다. 그대로 바닥에 거적을 깔아 길게 펼쳐 길을 만들어놓았다. 지하철역 앞에서 항상 쑥스럽게 뛰어넘곤 했울타리도 이제는 뚫려있었다. 사이로 멋진 길이 생겼다. 그 길 따라 달리면서 나는 공원을 관리하는 이름 모를 공무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곳에 길을 만들면 이유는 없었지만, 관리하는 입장에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샛길은 이름 자체부터 샛길이라 보통은 지 못하도록 줄이나 철조망으로 막아 통행을 막기 마련이다. 기존에 길이 있는데도 샛길이 나 있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그 길 따라 새로운 길을 뚫는 경우는 그래서 드물다.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부터 길은 아니었다. 사람이나 짐승자주 다니다 보니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이 길이 된다. 길은 결국 길들임의 결과다. 반복이 공간을 길들이면 길이 되고, 반복이 마음을 길들일 습관이 된다. 


세상에는 다들 그 길로 가면 좋다고 하는 미리 닦여진 여러 길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그 길로 가길 바라 못 가서 안타까워한다. 사실 그 길의 풍경이 누구에게나 좋을지, 그 길로 가면 바라는 것이 있는지, 그 길이 제일 가까운 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 모르니 남들 가는 대로 그냥 가는 경우도 많고,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고민의 연속이 되기도 한다.

샛길을 본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길들여 만들고 있샛길이 있는지 살펴본다. 점점 진해져 가고 있는 마음속 샛길이 있는지 길을 멈추고 돌아본다. 낮은 울타리 넘기 두려워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들여다본다. 마음이 자꾸 그쪽을 향하여 점점 진하게 샛길을 내고 있다면 그곳에 바닥을 깔고 한번 길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향하는 마음이 진심일까 아닐까, 너에게 그렇게 가도 될까 모르겠으면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들여다본다. 마음이 너를 향한 공간을 길들이며 샛길을 만들고 있는지, 그 공간이 점점 진해지며 길이 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길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다면, 그래서 마음의 길이 보인다면 그때 울타리를 열고 길을 만들어 걸어가면 되겠다.

'군자는 대로행'이라는 말을 듣는다.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큰길만 다니고자 면 놓치는 재미가 많았다. 어린 시절 속칭 개구멍으로 다녔던 짜릿한 경험이 있다. 어쩌면 그 개구멍이 원래 길이 생겨야 할 곳일 수도 있었다. 길은 결국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길들여 길을 만들면 더 이상 그 길은 샛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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