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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n 01. 2022

화분에 작은 돌을 까는 일

집에서 작은 어항에 키우던 물고기가 세상을 떠났다. 6년 전 동대문 수족관 골목에서 집으로 데려온 11마리 몽크호샤 중에서 마지막 남은 한 마리였다. 작은 물고기가 6년을 살았으면 아주 노년인 셈이라서 눈에 띄게 없이 바닥에 눕다가 갑자기 튀어 오르기를 며칠 동안 반복할 때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6년 전에 우리 집에 오던 날 몽크호샤 물고기들

물고기를 건져내어 화단묻어주고 물이 담긴 채로 어항을 한참 놓아두었다. 추모 주간이라고 할까. 오랜 시간 매일 지켜다가, 이제 먹이를 줄 일도 물을 보충해주거나 청소할 일도 없는 어항만 남으마음이 많이 허전했다. 물고기를 들이지는 않기로 했다. 삶을 전적으로 나에게 의지하는 생명체를 돌보는 에서 벗어난 홀가분함도 있었다.


물고기는 다른 반려동물과는 달리 서로 직접적 접촉이 없고, 사는 공간도 완전히 구분된다. 그냥 먹이 주고 물 갈아주고 어항 닦고 여과기를 청소하며 바라보는 일만 꾸준히 해왔다. 어떤 대상과의 애착은 서로 따르고 반가워하고 쓰다듬고 껴안고 혼내거나 칭찬하는 것 같은 상호 작용으로 쌓여가는 것일 텐데,  물고기들을 구별하기도 의사를 나누기도 어려웠고 그들도 나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같이 지낸 긴 시간에 비해 이별의 슬픔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고기가 떠난 빈 어항. 바닥의 돌들에도 연륜이 묻어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물고기가 살던 어항의 물을 비우고 마지막으로 청소를 마쳤다. 어항 바닥에 깔려있 작은 돌들은 어찌할까 하다가 집에 있던 화분들 흙 위에 골고루 깔아주었다. 문득 어항 대신 화분을 더 들여놓아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말 양재동 꽃시장에 가서 몇 가지 작은 식물을 골라 사 왔다. 꽃나무보다는 잎이 크게 자라는 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새 토분에 좋은 흙으로 분갈이해준 덕분인 건지 우리 집에 온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는지 새로 들어온 식물들이 생각보다 무럭무럭 자랐다. 옅은 연두색의 작은 잎을 올리나 싶더니 어느새 보면 초록의 큰 잎을 펼치고 있고, 기대도 별로 하지 않았던 꽃도 피워 올렸다.

알로카시아, 몬스테라, 베고니아, 안시리움이라고 한다.

살면서 주위에서 뭔가 힘을 내어 노력하는 보면 안쓰럽고 또 대견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헤엄치려 안간힘을 쓰던 물고기, 햇빛과 물을 받아 뿌리를 내리고 새잎을 펼쳐 올리면서 성장하는 식물들이 그랬다. 한 골이라도 더 넣으려고 종료 휘슬까지 힘을 내어 달리는 선수들, 항상 나름 열심히 뛰며 가끔씩(!) 이기는 한화 이글스 같은 야구팀이 있어 스포츠도 애증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어항의 돌들을 큰 화분에 깔아놓았다

사소한 일과 소소한 것들을 지키며 돌보는 일은 화분의 흙 위에 작은 돌을 펼쳐 깔아놓는 일 같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삶에 비가 내릴 때 물이 튀지 않고 깔끔하게 물을 흡수하여 흘려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별 의미 없는 하루를 보냈네 하며 풀이 죽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동안 열심히 잎을 틔우며 자라난 식물들을 보며 그래 나의 하루도 헛되지는 않았겠지, 위로받고 힘을 내는 것처럼. 내가 돌본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알고 보면 가만히 나를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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