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는 다가오지 않는다. 매끈한 화면 안에 정돈된 메뉴 사진을 나란히 늘어놓고 숙련된 직원처럼 서있을 뿐이다.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다. 손으로 일단 터치를 해야 반응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앞에 서면 조금 긴장한다. 한두 문장으로 끝날 주문이지만 한두 번의 손놀림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분류 체계를 보고 차근차근 찾아 들어가야 한다. 일행의 주문을 받아 이리저리 화면을 오가며 평소 생각지도 않던 옵션 여부까지 지정한다. 카트에 주문을 담고 확인하여 전송하거나 결제까지 해야 끝이 난다. 키오스크는 거의 실수하는 법이 없다. 실수는 내가 한다. 뭔가 잘못되었으면 수량이나 옵션을 잘못 입력했거나 끝까지 완료하지 못한 내 탓이다. ATM에서 현금 찾기처럼 간단한 일은 기계가 친숙한데 키오스크는 편리하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가평 가족 여행길이었다. 예전부터 들렀던 오래된 맛집에 다시 찾아갔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도 소개된 가마솥에 끓이는 잣곰탕과 잣국수가 주메뉴인 곳.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입구에 패스트푸드점에 있음 직한 키오스크가 서있다. 주방 쪽 점원이 키오스크로 주문해 달라고 소리쳤다. 우선 먹고 갈 건지 포장인지부터 선택해야 했다. 먹고 간다고 입력했더니 그럼 어디에 앉을건지 묻는다. 이건 뭐지 하고 둘러보니 자리마다 번호가 크게 붙어있다. 비어있는 테이블 번호를 넣으니 가족들 메뉴를 골라야 할 차례다. 너는 잣국수 나는 잣곰탕, 너는? 어 그런데 잣해물짬뽕도 있네 그거 먹어볼 사람 있나? 없구나 아 그리고 도토리묵 시킬래 감자부침 시킬까 의견을 모으고 공깃밥은 포함인가요 주문해야 하나요 점원에게 묻는 동안 식구들 모두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있어야 했다. 그동안 뒤에 줄을 선 다른 손님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기술의 발달은 사람이 좀 더 편해지자고 하는 것 아닌가?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어떻게 할지 일행과 천천히 얘기 나누고, 모르는 것은 점원을 불러 물어보며 주문하는 여유가 없으니 불편했다. 키오스크가 너무나 일상화되어 간다. 일본에 가면 테이블에 앉아 커피나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직접 가져다주는 체인 커피점이 아직 많이 있다. 얼마 전에 갔던 서울 시청 부근 칼국수 집은 키오스크뿐 아니라 셀프서비스도 없이 종업원이 가져다줄 테니 부르기만 하라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에 가면 참 마음이 편안하다. 곰탕집 주인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가마솥에 장작을 때어 전통 방식으로 끓여내는 시골 음식점에서조차 키오스크를 만나야 하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 혹시 나도 키오스크 같은 사람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와락 다가서지 않고 상대가 나에게 이해되는 순서로 오지 않으면 불통이지 않았나. 나는 많이 알고 있다 내 안에 다 들어있다 뽐내며 정작 네가 필요한 것을 주기보다 네 마음이 입력되는 것만 바라지 않았나. 누가 내 앞에서 서성이고 당황하고 있어도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나. 무엇인가 계속 따져 묻거나 결정을 재촉하지 않았나. 누군가 한참 애쓰는데 결국 내 마음에 담기지 않으면 그냥 없던 것처럼 여기지 않았나. 매끌거리는 반듯한 그 화면 앞에서 내가 느끼는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