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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지 않고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만성’ 편두통

by 물고기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거울로 바라보는 내 얼굴은 항상 미간에 주름이 져 있다. 새벽 내내 편두통과 사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얼굴을 찌푸린다고 덜 아픈 건 아닌데 머리가 빠개질 것 같으면 나는 미간을 찌푸리게 되고 사투의 흔적은 고스란히 얼굴에 남는다

이번 편두통이 시작된 것은 1월 15일이었다.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 많은 것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다정한 사람들과 라이브 방송을 켜고 점심도 먹고 다이어리 꾸미기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그러다 친구의 연락도 받고 가족과 통화도 한 그런 날이었다. 그러고는 두통과 메스꺼움과 전신 피로감에 넉다운이 된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편두통에 절여져 살았기 때문이다. 방의 불을 끄고 작은 조명만 켜고 살았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들을 수 없었다. 가끔 마음의 평온을 위해 명상 음악을 들을 때도 최저 볼륨으로 들었다. 티비는 너무 크고 큰 만큼 많은 빛을 뿜어내 집안의 물건 중 나의 가장 큰 적이었고 거의 대부분 보지 않다가 최애를 보기 위해서만 틀었다. 백라이트를 1까지 낮추니 티비 회사가 의도했을 밝음과 선명함이 거의 사라져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볼륨은 아무리 즐거워도 7을 넘기지 않았다. 빛과 소리와 냄새, 움직임에 취약해진 나는 그야말로 유약하고 괴로운 생명체가 되었다. 나는 어둡고 조용한 집에서 몸을 낮추고 숨죽인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다.

손 수술 후 한 달쯤 지나자 이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좀 가능해져 1월부턴 책을 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편두통의 방문과 함께 독서도 멈췄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메스꺼움과 두통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심심하고 지루할 때 하는 SNS 탐방도 자주 할 수 없었다. 모든 움직이고 빛이 나는 것들은 나의 증상을 악화시켰다. 휴대폰의 밝기는 최저로 해둔 지 오래였지만 그보다 더 어둡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집 근처 신경과에선 작년부터 주로 실망과 분노만 안고 왔다. 이번에도 갈 곳이 없어 가긴 갔지만 약이 효과가 없다는 데도 굳이 그 약만 처방해주는 무능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침대 위에 나뒹구는 책 중에 편두통 책이 있었다. 그 책의 감수를 맡은 의사 선생님의 현재 근무처가 적혀있었고, 서울이고 큰 병원이니 너무 늦게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일단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계속 두더지처럼 땅만 파는 것은 너무 괴로웠다.

생각보다 예약이 근간에 잡혔다. 갑자기 누군가 취소한 경우, 이런 행운이 생긴다. 그렇게 예약일만 기다리다 기차를 타고 상경해 처음 가는 병원에 다다르니 편두통에 통달한 듯한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편두통 환자의 일반적인 행동특성처럼 형광등 불빛을 피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위로 뜨지 않은 채 책상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대화했다. 사람의 얼굴을 보려면 눈꺼풀을 위로 올려야 하는데 그 행동이 나에겐 두통의 악화로 이어져서 웬만하면 얼굴의 근육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편두통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시던 선생님이 편두통 백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 백신이요?

나는 너무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눈꺼풀을 들어 교수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백신이라니. 우와 이래서 기술이 발전한 곳으로 와야 해. 신식 기술 만세. 대학병원 만세.

편두통을 예방하는 항체를 형성할 수 있다니 2년 전 임신 때 편두통으로 죽을 뻔한 나에겐 그 말이 구원의 메시지로 들렸다. 의학이 발전해서 사람들이 너무 오래 살게 된 것을 못마땅해했던 점을 잠시 취소했다. 하지만 70%의 환자가 편두통의 일수와 강도가 줄어드는 놀라운 효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30%가 존재한다는 점을 선생님은 조심스레 분명히 강조하셨다.

아주 비싼 편두통 백신을 두 번 맞았다. 한 달에 한 번, 총 6번을 맞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아침도 미간을 부여잡고 깼으니 나는 30프로의 집단에 더 가까운 걸까. 사실 아직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오래 길게 아프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 편두통 시즌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통증이 나를 집 밖으로 나가는 것에 제약을 주는 것이라면 편두통은 내가 집에서 하는 것에도 제약을 주기 때문에 이놈은 빨리 작별하고 싶다. 이 정도 함께 했으면 죽을 때까지 안 봐도 될 것 같다.

불도 켜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싶다. 밥을 먹을 때 반찬이 보였으면 좋겠다. 숨지 않고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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