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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필라테스를 만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

by 물고기

몸은 쉽게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나는 도저히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던 심각한 전신 피로감에서 벗어났다.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였다. 20분 정도의 산책이 가능해지고 짧은 운전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만 하는 것이 내 인생의 열쇠였지만 그것만으론 3년간 무너진 몸을 다시 돌리는데 충분하지 않았다.


무너진 시간만큼의 시간이 다시 필요할 것이다. 통증의 시작은 2017년 여름, 섬유근육통으로 악화된 것은 2018년 2월이다. 아직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아프기 전의 나는 주로 마르고 건강했다. 날마다 쇳덩이를 들었다. 잔병치레가 많아 내 몸을 단련하고 싶은 마음 반, 몸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스물다섯부터 쭉 그렇게 살았다. 서른셋까지 날을 세우고 살았는데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런 몸이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재활 필라테스를 하러 가면 겨우 초급 동작인데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숨을 헉헉 댄다. 운동의 여파는 길게는 사흘까지 간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작년 가을에는 주민센터에서 요가 수업을 들었다. 첫날 자기소개를 시키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50명이 넘는 회원들의 나이를 알아버렸는데 삼십 대는 둘 뿐, 모두 50-70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제일 무력한 것은 가장 어린 나였다.


나보다 인생을 두 배는 더 산 분들도 척척 해내는 동작을 나는 통증 때문에, 그리고 온몸을 감싸는 피로감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서글퍼서 자꾸 눈물이 났다. 요가를 하다가 울 줄은 몰라서 휴지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곤란해졌다. 남의 속도 모르고 요가 선생님은 자꾸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생각해보라고 해서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하다 점점 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대체 내가 뭘. 내가 왜. 왜


단체 운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런 절망감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즈음 나온 이승환의 노래 ‘30년’이 머릿속에 자꾸 재생되어 내가 30년을 더 살아도 요가교실 회원들의 나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인생이 너무 길었다.



잠시 괜찮았던 12월과 1월, 운동할 곳을 찾아다녔다. 자세교정, 척추교정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며 이런 곤란한 상태의 환자와 같이 운동해 줄 운동 선생님을 찾아 헤맸다.


미국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카이로프락틱 강사에게는 거절당했다. 그럴듯하게 돌려서 말했지만 어렵고 효과도 확실하지 않을 케이스를 굳이 맡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었다.


집 근처의 요가원에 갔다. 아파도 일단 하면 나아진다고 말하는 직원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아프면 운동을 할 수 없다. 몸이 나아져야 소위 말하는 일반 운동을 하는 거다. 운동하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은 통증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소리다.

그러다 지금의 필라테스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통증 카페에서 우연히 *PAT 마스터 도수치료 자격증을 가진 물리치료사들의 현재 근무지 목록을 보게 되었고 내가 사는 곳에 단 한 분이 있다는 것, 그것도 병원이 아닌 필라테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센터 이름은 아니었다. 이미 몇달 전 운동할 곳을 찾을 때 물망에 올렸던 두 곳 중 하나였고 한 곳은 실패했고 남은 한 곳이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PAT : Pelvic Alignment Therapy 골반 정렬 도수치료

당장 센터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거절당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도 진정 통증인으로 살아본 적이 있던 사람에게. 병원이나 운동 센터를 처음 갈 때 언제나 그랬듯 A4용지에 내 증상을 적어갔고, 유독 무뚝뚝한 그는 통증기록을 읽은 후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울고 싶지 않았는데, 그 말에 울컥했다. 나는 버텼다고,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죽을 것 같았는데 그냥 버텼고, 집 밖에도 못 나갈 것 같다가 지금은 집 밖엔 나올 수 있는 상태가 돼서 이렇게 재활할 곳을 찾으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통증이 정말 없어집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본인이 팔조차 들지 못했던 상태에서 3년의 재활로 통증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고쳐주는 일까지 하고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싶어 졌다.


올 1월에 3번을 나갔다. 그러고 나서 2월, 몸 상태가 악화되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속상했다. 나아지고 싶은데. 이제야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달을 쉬고 4월에 한 번 나갔다. 그러고선 세 달을 쉬었다. 올 상반기는 그저 단 5분의 산책도 어려운 상태였다. 운전하면 겨우 15분 남짓인데 그걸 할 수가 없었다.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7월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기로 완벽하게 마음을 먹은 후였다. 그제야 나는 다시 운전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의 운동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등록한 횟수를 일정 기간 내에 소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나는 한 번 나가고 두 달을 앓아눕는 나를 그가 기다려줄지 의문이었다.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한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웠다.


선생님, 저 다시 운동하려고 하는데 다음 주 오후에 시간 괜찮을까요?


세 달만의 문자에 그가 일주일 전 연락한 듯 답장을 해주었다. 우린 그렇게 다시 재활을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경상도 출신이라 무뚝뚝한 편이고,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도수치료가 매우 아프므로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이 통증이 낫긴 하는 건지,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으면 그는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어 같은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반복한다.

지금 회원님한테는 다른 거 하라고 안 하잖아요. 일단 체력이 올라오는 게 중요해요.

일주일에 두 번 운동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통증 없어지는 건 금방이에요.

걸으세요. 무조건 하루에 30분 걸으세요.

바른 자세로 생활하는 게 중요해요. 근데 지금은 그게 안 될 거예요. 통증이 있으니까요.

24시간 안에 회복하기 시작하면 괜찮아지고, 괜찮아지면 나아져요.

천천히 가면 돼요. 급할 거 없어요. 오래 아프면 통증을 그냥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돼요.


근데 정말 없어져요. 없어집니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없어져요.


사실 난 3년을 갖고 온 이 통증이 사라진다는 말을 믿기가 어렵다.

하지만 없어진다고 확언하는 이가 있으니 믿고 싶다. 그런 말은 백번이고 천 번이고 믿고 싶다.


'맞아요. 그런 사람 있어요.

무슨 말이든 무조건적으로 믿게 되는 사람.

제가 쌤 말이면 다 믿잖아요.'

강현이 나에게 그랬다.


아, 나는 꼭 나아져야 한다.

그래서 강현에게 말해줘야지.


'강현아, 섬유근육통 그거 낫는 거더라.

쌤 이제 훨씬 괜찮아졌어.

이제 공연도 다시 하고 여행도 다녀.' 라고.


그러니 너도, 나도

우리 모두 결국엔 다 괜찮아질 거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믿는 것밖에 없지 않겠니.

'걸으세요. 무조건 걸으세요.

통증 정말 없어집니다.'


그렇게 나는 처음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강현은 나의 아끼는 제자. 그리고 섬유근육통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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