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옷 정리
옷을 정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얼마나 기능하지 못하게 됐는지 현실적으로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는 옷은 얼마 되지 않는데 서랍장과 옷방이 꽉 차서 옷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작년에 이미 한 번 많은 옷을 덜어냈는데 여전히 일 년 동안 손길 한 번 닿지 않은 옷들이 가득하다. 그 옷들은 내가 아직 세상 여러 곳을 누빌 수 있을 때 입던 옷, 날마다 출근할 때 입던 옷, 외출이 어려운 미션이 아닐 때 입던 옷들이다.
작년에 옷 정리를 하며 2018년 이전의 옷들은 거의 다 버렸다. (나의 섬유근육통은 2018년에 시작됐다.) 나의 청춘을 모두 다 정리했다. 그럼에도 차마 버리지 못한 2014년의 빨간 바지, 2015년의 주름치마가 보였다. 용기가 필요할 때 입었던 옷이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도 찰랑이는 치맛단이 좋아 그 힘으로 출근할 수 있던 옷이었다. 나는 저 옷들을 버릴 수 있을까. 옷방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내가 정말 좋아하던, 날마다 색깔과 디자인을 바꿔가며 입었던 재킷들이 줄지어 걸려있다. 올해 나는 겉옷으로 운동복 밖에 입지 않았다. 그 이외의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편한 옷만 입어야 했다. 옷을 입는 것에 에너지를 소비하면 안 되었다. 옷의 어떤 부분도 내 몸에 거슬리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무해한 부드러운 옷들만 입었다.
나는 6개월 단위로 휴직했고, 그때마다 매번 학교에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었다. 옷을 살 때도 학교에서 입을 수 있을지, 복직하고도 입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사고 아직 버리지 않은 옷들이 옷장 한가득이다.
이번 겨울이 지나고 새 학기가 와도 나는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평생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적절한 옷, 교사가 입어도 되는 옷을 고민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매일 출근하는 것도, 매일 아이들을 보는 것도 아니니 다양한 옷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 옷들을 바라본다. 나는 이 옷을 다시 입을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산책이나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외출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외출을 할 때 운동복을 입지 않아도 될 만큼 옷에 내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할애할 수 있는 상태가 될까. 지금의 나는 내가 입는 옷에 내 에너지를 단 1퍼센트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총량이 적기 때문이다. 가장 부드럽고 편한 옷들, 움직임이 자유롭고 특별히 유의하지 않아도 되는 옷들만 입는다. 짧은 머리에 키만 껑충 큰 내가 운동복만 입고 다니는 것은 여자 배구팀의 리베로 같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엄청난 장신은 아니기 때문에 리베로다.) 그런 나의 모습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프기 전에 입었던 옷들을 보니 마음이 쓸쓸해진다.
옷을 바라보면 그 옷을 입고 외출했던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긴 원피스를 좋아했다. 셔츠 원피스를 특히 좋아했다. 원피스라니. 병원에 갈 때는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색깔이 겹치지 않게 신경 써야 할 만큼 재킷이 많았다. 재킷이라니. 옷에 각이 잡혀있으면 불편하다. 지금의 나는 축구 유니폼이나 바람막이가 좋다.
좋아했다. 옷을 입는 것을. 이제 입을 일도 없고 맞지도 않을 텐데 2016년의 치마가 아직 그대로 걸려있다. 나는 아직 미련을 떨치지 못했구나.
언젠가는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다시 내가 원하는 옷을 맘껏 입고 이곳저곳을 활보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가서 옷이 하나도 없으면 큰일이니까,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옷들을 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입지도 않는 옷들을 방안에 둔다. 입지도 않을 옷들.
내가 다시 출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옷들은 입고 싶다. 잠깐 외출할 때, 데이트를 할 때, 외식을 하러 갈 때, 내가 고르고 골라 남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옷들을 입고 싶다. 그런 외출이 가능해져야 입을 수 있다. 일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도 여분의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그때야 나는 이 옷들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건 내가 꽤 괜찮아진 상태라는 걸 의미한다. 괜찮아져야 입을 수 있다. 괜찮아지면 입을 수 있다.
아직은 버리고 싶지 않다.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괜찮아질지도 모르니까. 봄이 오면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별 목적 없는 외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이 다가올 내년 봄이 아니어도 난 그리 실망하지 않겠다. 봄이 지나고 여름, 다시 가을이 왔을 때여도 나는 괜찮을 것 같다. 예쁜 옷들은 전부 봄과 가을에 입으니까.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옷을 정리하려 했지만, 지금의 나에게 재질이 너무 거친 옷들 몇 개를 덜어냈을 뿐 나는 옷을 거의 버리지 못했다. 그 옷을 입을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검정 재킷과 빨간 치마를 입고 집을 나설 것이다.
가을이다. 힘내자.
20.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