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랑 Jan 04. 2019

코끝이 근질근질, 발바닥이 간질간질

처음 우주여행 길에 오를 때, 우리는 모두 우주복을 입었다. 옷을 다 입고 헬멧을 내렸는데 갑자기 코끝이 간지러웠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꾹 참고 버텼다.

그럴 때는 신경을 딴 데로 돌려야 한다. 의식하면 오히려 더 견딜 수 없으니까. 다행히 10분 만에 우주로 나왔고, 경고등이 꺼지자 나는 허겁지겁 헬멧을 올려 코끝이 빨개지도록 벅벅 긁어댔다.


그런데 귀찮은 우주복을 우주선 안에서까지 왜 입어야 할까?

오래전에 3명의 우주비행사가 있었다. 우주선 안이 안전하리라 믿고 평상복 차림으로 탔는데, 모두 숨이 막혀 질식사한 채로 지구로 돌아왔다.

대기권에 들어서자 생긴 벽의 균열 때문이란다.

그 뒤로 우주선 안에서도 모두 우주복을 입게 됐다. 숨 쉴 수 있다는 건 정말 고맙고, 소중한 일이다.


곧 돌아가야 할 텐데 그때는 미리 머리도 긁고 코도 풀어둬야지.




어느덧 6월이 되어버린 땅을 밟았다.

마치 머나먼 신대륙에서 방금 돌아온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우주선의 해치가 열리자 숨을 크게 들이켜 신선한 공기를 맛보았다. 그러곤 감격스러운 고향 별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우두둑.”


처음에는 어디 부러진 줄 알았다.

온몸의 관절에서 뼈가 맞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다리가 풀렸다.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여러분, 무리하지 마시고 힘드시면 그대로 앉아 계세요.”


잠시 뒤 직원들이 휠체어를 가져와서 한 사람씩 실어 날랐다. 내가 휠체어 신세라니, 황당할 뿐이었다.

달콩이는 금방 적응했다. 풀어놓자 헥헥거리며 이리저리 잘도 쏘다녔다. 거추장스러운 기저귀 없이 자연스럽게 쉬야도 맘껏 하고 말이지.


나는 한참을 앉아서 손목 발목을 풀어준 뒤에야 묵직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한 발짝, 다시 한 발짝 조심스레 내딛다가 겨우 두 발을 번갈아 움직이며 걷게 되었다. 오랜 시간 거추장스러웠던 하체가 드디어 휴가를 끝낸 셈이다. 가기 전에는 탱탱했던 다리 근육이 꽤 가늘어진 듯했다.


“아하하!”


이건 뭐지?

방금 지구로 돌아온 내 발바닥은 아기 피부처럼 매우 부드럽고 보송보송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누군가 사정없이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느낌이었다. 때수건으로 피부를 박박 벗겨낸 것처럼 쓰라리기도 했다.

발을 제대로 딛지도 못하면서 겨우 거울 앞까지 갔다. 거울에는 보름달 대신, 초승달처럼 갸름한 얼굴이 있었다.


“쨍그랑!”


순간 놀라서 바닥을 봤더니 유리잔이 박살나 있었다. 내가 들고 있던 잔이었다. 무심결에 우주에서 하듯이 그대로 손을 놓았나 보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지구로 돌아왔다.






[ 새로운 우주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


안녕하세요. 엘랑입니다.

벌써 위클리 매거진 <부재중입니다, 지구를 떠났거든요>의 연재가 끝났네요.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서 지난 크리스마스부터 새롭게 <우주별곡>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놀라운 것은 <우주별곡>이 첫 회만 올라갔었는데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아마도 <알쓸신잡>이나 <지대넓얕>과 같은 잡다한 지식을 다루는 코너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서일까 싶네요. 어떤 곳에서도 들려주지 않는 우주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볼 생각입니다.


팟빵, 팟티, 애플 팟캐스트에 방송 중이며, 매주 화요일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많은 성원 바랍니다!


https://www.podty.me/cast/190447





이전 09화 하늘을 거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