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행이 무르익을 무렵, 나는 호기심 가득한 일행 앞에서 패션쇼를 시작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쫄쫄이 옷을 먼저 입었고, 그 위에 망사처럼 생긴 체온 조절복을 걸쳤다.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스누피’처럼 보이는 모자를 썼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로봇처럼 생긴 우주복 앞에 섰다. 등 뚜껑을 열고 미끄러지듯 올라타려 했다. 그러나 혼자서는 쉽지 않았다.
“윙.”
체온 조절복의 물 호스를 연결하고 장치를 켜니 물이 순환하는 게 느껴졌다. 호흡 장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공기를 내뿜었다.
이윽고 좁은 감압실에 4명이 남겨졌다. 2명의 여행자와 2명의 승무원. 표시등이 녹색으로 바뀌고서야 헤드셋으로 음성이 들려왔다.
“앞으로 30분 동안 감압을 하니까 그대로 있어야 해요.”
방 안의 압력과 함께 옷 안의 압력도 서서히 낮아졌다. 몇 번이나 귓속에서 ‘띵’ 하는 이명이 들렸고, 그럴 때마다 훈련받은 대로 침을 꿀꺽 삼키면서 버텼다. 누군가 콧노래를 부르기에 질세라 같이 흥얼거리며 기다렸다. 우주복은 바깥과 차단되어 소리가 들릴 턱이 없었다. 헤드셋이 유일한 대화 창구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표시등이 빨간색으로 점멸했다.
“오케이, 라이트를 켜세요. 안전줄 확인하시고….”
헬멧 양쪽에 붙어 있는 라이트가 켜졌는지 살피고 줄을 당겨보았다. 바깥에 나서면 몸을 돌려 자세 잡기 어려우니 여기서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갑자기 옷이 팽팽해졌다. 감압실 안이 진공상태가 된 것이다. 옷 안쪽보다 바깥쪽 기압이 낮으니까 우주복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승무원이 먼저 앞장서서 익숙한 솜씨로 해치를 열어젖혔다.
나는 용기 내어 우주를 걸어보기로 했다. 물론 잠깐 발만 담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지만.
두꺼운 우주복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헤드셋에서 뭐라고 떠드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느껴지는 것은 한껏 치솟은 내 심장박동 소리뿐.
심장은 터지기 직전의 엔진처럼 “쿵쿵”거렸다. 마구 분출되는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호흡이 가빠지면서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활짝 열어젖힌 해치는 벽면에 뚫린 시커먼 구멍 같았다. 해치 너머론 칠흑 같은 어둠이 스며들었다. 머뭇거리며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갔다.
공간과 우주의 경계선에서 다시 멈칫했다. 얼결에 허공으로 머리를 내민 순간, 말할 수 없는 오싹함과 마주했다.
‘아무것도 없어!’
다리가 덜덜 떨리면서 눈물이 나려 했다. 갑자기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에라, 모르겠다.’
두 눈 질끈 감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이쯤이려나 싶어 실눈을 살짝 떴더니….
어둠을 뚫고 무수한 보석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별들은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하나하나 또렷하게 시야에 잡혔다. 이미 내가 뭘 하는 건지 망각했다. 홀린 듯 꼼짝도 않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우와….”
몸을 돌려보니 커다란 보석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어떤 시로도 써낼 수 없는 사파이어가 항상 그랬다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 떠 있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겠지?’
많은 사람이 왔겠지만, 너무 넓어서 같은 곳에 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걷는 기분, 주변은 한없이 고요했다.
여행 상식 #9 : 사람이 맨몸으로 우주에 나가면
오래전, 우주비행사들이 진공 실험실에서 훈련을 받던 도중 사고로 우주복이 찢겨나간 일이 있었다. 다행히 15초간의 진공 상태에서도 의식을 잃지 않았고, 곧바로 실험실을 정상 기압으로 올려서 무사할 수 있었다. 동물 실험으로도 우주 공간과 유사한 상황에서 잠깐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개와 침팬지 실험에서는 10~15초간 의식을 유지, 이후 의식을 잃고 30~60초 사이에 심장박동이 급격히 느려지며 혈액 순환이 점차 멈췄다. 최대 90초간 생존 가능성은 있지만, 구출과 동시에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대체로 60초간 진공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다.
진짜 우주에서는 이보다 더 상황이 나쁘다. 햇빛에 직접 노출된 피부는 화상을 입고, 폐 속의 공기를 재빨리 내뿜지 않으면 팽창해서 영구적인 손상을 입는다. 가장 치명적인 점은 우주에서 남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팀을 이뤘더라도 우주복이 손상되어 공기가 빠르게 새어나가면 동료가 도와줄 시간이 별로 없다. 모든 조치는 30~60초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
지난 10월에 첫 책 『프로젝트 로켓』, 이어서 11월에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지구를 떠났거든요』를 출간했습니다. 두 권을 연달아 낼 수 있었던 것은 브런치북 콘테스트에서 입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브런치 작가의 꿈이라는 책을 출간하다 보니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미디어셀러의 시대라고 하죠. 책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의 브랜드 네임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주별곡>이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주별곡>은 우주 토크쇼입니다. 우주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는데요, 천문학부터 시작해서 SF, 인문학을 포함하여 시시콜콜 잡다한 지식을 이야기합니다. 매주 화~수요일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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