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함께 온 어떤 아저씨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 일행 중에 멋진 콧수염의 아랍 사람이 있었다. 우주여행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나라, 인종들이 우주로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많았던 부류는 역시 미국인, 그다음이 의외로 아랍인이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적지 않았지만, 아랍 부자들이 더 많았다. 아랍 ‘잘알못’인 내게 그들의 우주생활은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아랍인은 대부분 엄격한 율법을 따르는 무슬림이다. 무슬림이 우주에 나오면 사소하지만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먼저 예배.
그들은 매일 메카를 향해 몇 번씩 엄숙한 예배를 올린다. 우주에서 지구 어딘가를 향해 둥둥 떠다니며 기도를 해야 하는데 더군다나 이곳 우주호텔은 엄청나게 빨리 날아가고 있다.
메카의 정확한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간신히 기도를 시작해도 계속 방향이 바뀌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예배는 계속되어야 한다.
콧수염 아저씨가 슬슬 예배를 준비하면 다들 자리를 피해주거나, 또는 나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멀리서 바라보았다. 찍찍이 슬리퍼 차림으로 메카를 향해서 때로는 천장에, 때로는 벽에 몸을 고정하려 애쓰는 아저씨를 보다 못한 이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늘 시간에 맞춰 《꾸란》구절을 암송하며 기도하는 아저씨가 신기하면서도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을 내렸다.
무슬림은 먹는 음식도 율법에 따라야 한다. 돼지고기 같은 음식은 금기다. 다른 고기도 먹기 전에 꼭 무슬림 율법에 맞게 처리되었다는 표시인 ‘할랄’ 마크를 확인해야 했고.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여행 기간이 하필 라마단과 겹친 것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은 해가 뜬 시간에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다. 새벽 네 시경부터 저녁 여덟 시 정도까지? 물도 못 마신다. 그러니 낮에는 될 수 있으면 육체 활동을 자제하고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무슬림이 하필 그런 중요한 시기에 우주로 오다니.
아이러니한 것은 이곳에서는 낮이 고작 46분만 이어진다는 점이다. 넉넉잡아서 한 시간을 버티면 30분씩 캄캄한 밤이 된다. 즉 장시간 굶지 않고 틈틈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우주적 축복을 놓고 율법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지. 메카 방향은 시시각각 바뀌지만, 밥은 수시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고지식한 콧수염 아저씨는 지구 시간에 맞춰서 금식을 단행했다.
이곳에는 독일에서 온 독실한 기독교인, 유쾌한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 외계인이 지구인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어떤 분 등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 뒤섞여 있다.
지구에서는 서로 박 터지게 치고받고 한다지만, 여기 오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무슨 싸움이 필요할까.
고요하고 어두운 우주에서 단 하나의 별이 따스한 푸른빛으로 우리를 보듬고 있다. 만약 저 별을 누군가 쪼개버린다면 우리는 갈 곳이 없겠지. 작은 배에 같이 올라탄 사람들끼리 다투기에는 지구가 좁아 보인다.
콧수염 아저씨는 기도를 끝내면 조용히 지구를 바라보곤 했다. 여러 신이 함께하는 우주는 정말 괜찮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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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달 앗슈후둣 티자아립
삶에 있어 경험이란 생생한 목격자다.
지금 이 순간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여행 상식 #8 :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의식
소련의 모든 우주비행사는 우주선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잠깐 멈춰서 타이어에 방뇨하는 의식을 치렀다. 이는 첫 우주비행사인 가가린이 갑작스런 생리작용으로 어쩔 수 없이 내려서 실례를 했던 일화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육중한 우주복을 입고 볼일을 보는 것은 매우 힘들며, 여성의 경우는 난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생수병의 물을 타이어에 뿌리는 것으로 의식을 조촐하게 대신하기도 한다.
냉전 당시에는 소련 우주비행사들만의 고유 의식이었으나, 지금은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가는 전 세계 여러 우주비행사가 대부분 따라 하는 보편적 의식이 되었다. 이런 훌륭한 전통에 동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케케묵은 미신이니까 안 해도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