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센스, 퍼펙트 이별
사람들이 이별 후 보면 좋다고 추천하는 영화들은 내용이 모두 똑같았다. 매력 있는 주인공이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지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며 클럽 같은 곳에서 놀다가, 외로움을 느꼈다가, 친구들 덕분에 love myself 하게 되면서 영화 끝. 마침 잘 생긴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하나 공감되지도 않고 위로도 없고 재미는 쏘쏘. 나에게는 더 강력한 감동과 카타르시스가 필요한데.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헐리우드 로맨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데. 저렇게 술 좀 먹고 원나잇 좀 하다가 이제 나았다고? 싶은 생각에 오히려 화가 났다.
그러다 떠오른 영화가 바로 '퍼펙트 센스'다. 오래전에 영화를 처음 볼 때부터 '이건 헤어짐에 대한 거야'라고 생각하고 뿌듯해했다. 영화에 숨겨진 의미를 혼자 찾아낸 기분이었다. 이제 헤어졌으니 이 영화를 제대로 다시 볼 타이밍이었다.
이별은 한 세계의 종말이니까
영화 '퍼펙트 센스'의 주인공은 요리사인 남자와 전염병 연구자인 여자. 염세적이면서도 외롭고 매력적인 두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동시에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증상의 질병이 퍼진다. 증상이란 사람들의 감각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
특이한 점은 감각이 사라지기 직전 강렬한 감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을 떠올리며 격한 슬픔을 느낀 뒤, 후각을 잃게 된다. 다음 단계는 공포, 우린 모두 혼자이고 외롭게 죽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떨며 극심한 허기를 느낀다. 누군가는 립스틱까지 뜯어먹는다. 그 후 모두 미각을 잃는다. 여자는 주차장에서, 남자는 자신의 일자리인 식당에서 이 과정을 겪는다.
하나하나 감각이 사라지며 세상은 냄새를 맡지 못하고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간다. 미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식감 위주의 음식이 개발되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이들에게 숲의 냄새가 어땠는지 음악으로 일깨워주는 길거리 음악가가 있다. 감각이 하나하나 사라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암흑이 될 때까지 요리사와 전염병 연구자는 서로를 미워하고 열망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가 세 번째 단계인 극심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잃고 청각이 사라진다.
누군가와 헤어진 뒤에는 이별을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재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옳다. 이별은 두 사람이 쌓아가던 한 세계의 종말이니까. 이 영화의 남자는 오직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방과 밀가루’만 중요해진 세상의 요리사다. 여자는 고칠 수 없는 병이 도래한 세상의 전염병 연구자다. 우리 역시 끝난 연애에서의 연인이다. 이토록 무기력한 상황이 있을까.
lover without lover
아직 감각이 사라지기 전 분노의 감정을 겪고 있는 여자에게, 이미 청각을 잃은 남자가 어눌한 말투로 사죄의 음성메일을 보낸다. 남자가 먼저 분노의 과정을 겪으면서 여자에게 끔찍한 말들을 쏟아부었다. 그건 병 때문이었다고,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남자는 사죄한다. 여자는 주변의 물건을 때려 부수느라 그의 녹음된 말을 듣지 못한다. 그 감정이 끝난 뒤에는 청각을 잃기 때문에 남자의 메시지는 결국 끝까지 여자에게 가 닿지 못한다.
서로의 사과와 고백을 듣지 못하는 연인을 영화는 20여 분간 침묵 속에서 보여준다. 간간히 나오는 내레이션 말고는 아무도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 침묵과 아포칼립스의 도시에서도 쓰러진 자전거를 정리하고 아무도 없는 근무지를 지키고 텅 빈 레스토랑에 찾아와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 문이 열린 클럽에는 사람들이 우퍼 스피커와 악기에 손을 대고 떨림을 느끼고 있다. 망가진 삶을 이어나가려고 애쓰는 이들이다.
마지막 남은 감각인 시각을 잃기 전 찾아오는 감정은 감사함이다. 사람들은 행복해하고 서로에게 감사하고 다시금 사랑을 느낀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찾아 헤매다가 시각을 잃기 직전에 만난다.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순간 시각이 사라지고 암흑 속에서 영화가 끝난다.
끝난 사랑의 기억 속 감각
사랑은 오직 감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난 사랑의 기억만큼은 대단히 감각적이다. 연인의 냄새, 그의 숨소리, 걷는 모양, 몸의 무게, 모든 감각의 기억이 사귈 때보다 더 예리하게 나를 괴롭힌다. 그 감각을 둔하게 만들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다른 일에 몰두하지만 기억 속의 감각이란 그렇게 쉽게 닳지 않는다. 추억이나 물건보다도 감각의 기억이 가장 강력하다.
그를 불러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 번만 더 끌어안고 냄새를 맡고 싶다고 생각했다. 체온과 무게감에서 오는 안정감을 한 번만 다시 느끼고 싶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었던 그의 포옹을, 가장 힘든 지금 가질 수 없다는 게 서글펐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무력함. ‘퍼펙트 센스’는 그 무기력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중요했던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살아내려 애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영화 말미의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어둠 속의 대사는 꽤 힘이 된다. 아프도록 예리한 기억 속 감각을 잃기 위해서는 병적인 감정의 격동을 거쳐야 한다. 지금의 내가 최소한 영화 속에서의 두 번째 단계, 미각을 잃기 전 불안을 겪는 단계까지는 왔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