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장난을 친다.
사회적 관습과, 통용되는 상식과, 시대적 취향과, 형성된 습관들.
이것들이 어우러져 무언가를 정의하고 믿게 만든다.
가령, 사랑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의하여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으며,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감정이기에 사랑이 끝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잠재되어 있는 듯하다.
당연한 순리처럼 반복되는 남녀 간의 사랑.
여기에 과연 진짜 사랑이라 할 만한 게-그만한 가치를 지는 게-있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재단되는 사랑.
내가 기대하는 만큼 상대도 맞춰줄 것인가, 함께 부담을 질 수 있는가, -얼마만큼의 희생이 따를 것인가.
연애에 따르는 감정 소모가 싫어 밀고 당기기를 하며 갖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라는 식의 안일한 마음을, 사랑을 위한 과정이라 볼 수 있는 걸까?
혹은, 상대를 향해 휘몰아치는 정열과 숨이 조일 듯이 들뜬 감정을 가졌다고 해서
사랑이라 할 수 있는가.
나의 기대에 어긋나면 분노하고, 전적으로 나만 사랑해 주길 바라며, 소유하고 싶은 감정은 사랑이라 불러도 될 감정인가.
사랑에는 욕망이 깃든다고도 한다.
허나 어떤 욕망은, 커져갈수록 나를 파멸시킨다. 상대를 파멸시킨다.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기보다 탐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욕망이라 불러야 할 뿐, 사랑은 아니지 않을까?
흔히들 이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바뀌지 않는 상대를 멀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곤 한다.
어쩌면 상대를 향한 욕망을 사랑이라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나약함과 모순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사랑이라는 숭고한 단어로 덮어두는 것은 아닌가.
욕망에 부합하지 않아도 사랑한 적은 얼마나 되며, 인생에 진정 사랑한 사람은 몇 명이라 할 수 있을까?
나의 이루지 못한 갈망을, 견디기 힘든 약함을 채우기 위해 나의 존재 그대로를 확인받고 싶어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근원적인 결핍을, 굳이 이성을 통해 채우려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온갖 환상과 설렘과 대단한 삶의 화두로 여겨지는 남녀 간의 연애.
연애 경험은 사랑의 경험과 비례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이라 떳떳하게 이름 붙일 수 있는 확고한 감정은 인생에 몇 번이나 찾아왔다고 할 수 있을까?
규정! 규정으로 이루어진 패러다임, 그것은 옳은 것일까.
사랑이라는 이념, 그에 따른 행동양식은 '학습된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가?
정의! 정의란 무수하다.
우리는 멋대로 정의하며 살고 있다. 감정은 장난을 치기에.
하지만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질투가, 상대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기심이-여기에 개인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 있는가?-사랑해서 생겨나는 감정이라 여긴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 비이성적이고 자기애적인 감정이 클수록 사랑이 크다고 여겨질 수 있다니 말이다.
애써 힘들이지 않아도 내가 지닌 이성과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관계는, 있는 그대로도 좋다.
그것은 곧 너와 나의 해방이다. 자유이다.
믿을 수 있는 건 덧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확신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자유를 주지 않는 사랑을 사랑이라 할 수 있는가.
감정은 장난을 친다.
우리가 사랑이라 여겨온 감정은 장난일까, 장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