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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Apr 05. 2023

유산. 받고 더블로!

ㅣ 나는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가?

어느새 70이 훌쩍 넘어버린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첫새벽에 일어나 아파트 뒷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신다. 벌써 40년도 더 지난 습관이다. 직장 생활할 땐 정말 피곤하셨을 텐데 주말도 거르지 않고 산을 오르셨다. 토요일 아침. 늦잠을 즐기고 싶은 어린 나를 굳이 깨워 뒷산에 끌고 가는 아버지가 정말 귀찮았고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렸고, 당연히 잠이 훨씬 더 달콤했다. 어쩌면 운동과 부지런한 습관에 대한 조언을 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억에는 남아있는 것은 없다. 그저 매일 새벽. 뒷산으로 향하는 아버지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만이 기억에 선명하다.


가족이 그 성실함을 알아주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평생 한결같으셨다. 배운 것 없이 맨손으로 도시에 나와 학업을 이어가고, 가정을 일구고, 재산을 불리는데 한마디 불평 없이 작은 한걸음을 끝없이 내딛으셨다. 건강한 식습관으로 자신을 지키고, 책임감으로 일과 가족을 지키셨다. 현역에 계실 때 직업과 관련된 모든 자격증을 섭렵하고 주조(鑄造) 명장의 자리까지 오르신 아버지는 지금도 현장교수로 일하며 평생 일궈온 기술을 전수하며 사신다. 어린 날의 나는 솔직히 이런 아버지가 그저 답답하고 지루해 보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등산을 즐기지 않는 성인으로 자라 독립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등 삶의 숙제를 풀어가며 살기 바빴던 젊은 날들. 누구나 그렇지만 살다가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린 때가 있었다. 미움과 원망이 가득 차서 아무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이성이란 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날들이었다. 삶과 죽음을 고민하느라 일상이 피폐해지던 그 시절.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새벽마다 집 근처 문수산을 오르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산을 찾아가 육신을 다그치며 무너져가는 멘탈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평생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그것들. 성실, 반복, 인내, 책임. 내 안에 인이 박히게 긴 세월 보여주신 그것들이 위기의 순간 나를 살게 했다. 아버지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행동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온몸에 베여있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아무리 옳은 말을 한들 들으려 하지 않는 고등학생 아들 둘이 한집에 같이 살고 있다. 도움 되라고, 아프지 말라고, 앞으로 잘 되라고 했던 수많은 잔소리 앞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쉽지만 그만 '말'해야겠다는 것을 좀 늦게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해 삶에 도움 되게, 아프지 않게, 잘 살면 되는 것을. 그럼 녀석들 사는데 필요한 것을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을더불어 매 순간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살포시 덧붙여 본다. 성실과 인내로 점철된 아버지의 삶은 정말 지루해 보였으니! 결국... 나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배우고 듣고 행하는 것이 내일의 우리를 만든다.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가를 일컫는 '문화자본'은 어떤 자본보다 사회적 경계를 더 많이 만들고, 이 경계는 한 번의 도약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

- 아비투스 / 도리스 메르틴 / 다산북스 /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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