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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10. 2019

추어탕_옛날 맛 같지가 않구나  

잊고 지냈던 할머니의 추어탕

외할머니댁에서의 식사를 떠올리면 커다란 상 두 개, 그 상다리 부러질만큼 가득한 상차림이다.

손주들 온다고 하면 국 한 솥에 각종 김치,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먹던 일명 '박상', 쌀과자를 직접 한 상자 만들어주셨다.

그 밥상을 몇 번의 계절이 바뀔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한국에 휴가로 들어올 때는 뭐가 그리 바쁘고 만날 사람도 많은 것 같던지,

 도저히 4-5시간 버스를 타고 경주까지 내려갈 수가 없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사실,

 할머니 손에 자랐거나 근처에 살며 지낸 것은 아닌지라 아주 뜨거운 정이 있다고 말은 못하겠어서, 라고 하겠다. 또 솔직히, 손녀들보다는 손자녀석들을 조금 더 챙겨주시는 것 같으니 내 쪽에서도 막 살갑게 못했달까. 매번 언니와 내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하셨는데, 그럴때는서운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래도저래도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이고 아버지, 나의 피붙이인 분들. 오랜만에 뵈니, 뭉클하더이다.

내 기억속에 자리한 두 분의 모습은 더 젊으신 때로,

이번에 뵈니 그렇게나 상투적인 말 '언제 이렇게 늙으신건가'를 깨달았다.

등이 깊게 굽어버리신 외할머니와 주무시는데도 아픈 소리를 내시는 외할아버지.

그렇게 거동도 불편하신 할머니는 국이라도 끓여야한다며 새벽 6시부터 주방에 들어가셨다.


양심있게 반찬은 엄마랑 내가 준비했다.

전날 시장에서 사온 버섯으로 간단하게 볶음을 해드렸는데 좋아하셨다.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해드린 음식이라고 해야겠다. 평생.

우리 엄마 열무김치를 왜 잘하시나 했더니,

외할머니 손맛에서 배우신건가 보다.


그리고 추어탕.

이곳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미꾸라지라, 추어탕을 많이 끓여주셨었다.

어릴때에는 미꾸라지 자체도 싫었고 그걸 갈아버린다니 생각만해도 쳐다볼 수도 없겠다 싶었던 국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연세를 드신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

아침에 이만큼 구수하게 잘 넘어가는 것도 없더라.


그런데 할머니는

"이게 예전 맛 같지가 않다, 와그라지 뭘 안 넣었나?"

할아버지가 대답하시길

"늙어서 그런거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먹어도 맛도 잘 모르겠고 그러신다고.

아.

요새 다들 못 가보고 못 먹어봐서 안달인데, 이 분들은 드시려고 해도 어렵구나.

새삼, 먹는 것에 대한 관심 9할로 살아가는 나로서 그 얘기를 들으니 무척이나 서글퍼졌다.

역시 음식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만큼 다양하게 존재해야 함을 느낀 아침이랄까.

아침부터 가히 철학적이다.




나에게만큼은 최고의 아침이었다. 아침에는 도저히 쌀밥 안 먹히던 나인데.

'너무 단촐한' 상이라고 자꾸자꾸 미안해하시던 할머니.


트렁크 미어터질만큼 밭에서 직접 기르신 채소 넣어주시고는 인사를 하는데

"다음에 또 이렇게 오랜만에 오면 할미 못 볼수도 있다"

라는 말문이 막혀버리게 하는 직설화법 날리신다.


할머니 입맛 더 잃으시기 전에,

찾아뵙겠습니다.

핑계없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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