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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Oct 07. 2023

완벽이라는 벽을 넘어 저탄고지를 향해

우리는 실패자가 아닌 에이스다

할 거면 제대로 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부터 매사에 의욕이 넘쳤던 나는 그 말을 벗 삼아 오늘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도전에 관대했고 천진난만한 나에게 열정이 가득한 꼬마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작한 도전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였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당연했지만 어떤 결과는 아쉽거나 기대 이하였고, 나는 어떤 것을 하든 이런 질문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성공했어?" 

성공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을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웃고 말았다. 성공이라 부를 수 없는 것. 그것은 실패라고 불렸다. 실패라고 부르는 것까진 괜찮았다. 다만 실패-라는 매듭을 든 나에게 더 이상 응원도, 다정한 시선도, 관대한 박수도 없었다. 세상은 나에게 늘 성공과 실패, 두 개의 답안을 주며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나는 시작이 쉬운 반면, 그것을 이어 나가는 끈기는 좀처럼 여물지 않았기에, 초심의 기둥은 꼿꼿하게 서있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나는 열정 꼬마에서 실패의 아이콘이 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말은 여전히 버거웠다. '제대로'에 힘을 주어 말하면 가시처럼 뾰족한 악센트가 가슴을 콕콕 찔렀다. 특히 다이어트를 할 때 더 많이 들었고 더 아팠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하면, 그래서 얼마나 감량했냐, 운동량이 충분하냐, 식단 관리가 철저하냐, 질문이 쏟아졌다. 1kg 정도 감량했다고 말하면 오늘 저녁에 먹고 나면 그대로 도루묵이 될 거라는 비웃는 사람, 다이어트는 과학적으로 해야 한다며 수십만 원어치의 다이어트 보조법을 추천하는 사람, 다이어트를 실패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 나열하며 그게 나에게 해당됨을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까지,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과한 애정의 말들이 급하게 마신 물처럼 고통스럽게 명치를 때렸다. 제대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건넨 주변의 말을 나는 애써 외면하기로 했다. 아이를 낳고 꽤 오랫동안 그랬다. 다이어트를 시작하지도,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은 채, 제대로 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라고 믿었다. 미처 감량하지 못한 5kg 은 매 해마다 나의 덜어내기 1순위였지만 시작도 마무리도 하지 못한 상태로 미운 숫자가 되어갔고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이어트라는 주제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실패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실패한 적이 없는 나는 어설픈 완벽주의자였고, 언젠가 제대로 다이어트를 할 거라 말하는, 다이어트-신용 불량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 건강검진을 예약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원하는 날짜에 받으려면 일찍 예약하라는 당부에 어느 항목으로 검진을 신청할지 찾아보기로 했다.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를 열어보았다. 단순히 체중만 보면 '정상'범위 내에 있지만 체지방과 근육량은 삐쭉 튀어나와 그래프가 중심을 잃었다. 검진 결과지의 하이라이트인 종합 소견에 굵은 글씨로 간 수치와 췌장 종양 표지자 수치가 서서히 올라간다는 경고가 있었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피드백을 뒤늦게 발견한 나는 숫자들이 나를 노려 보는 것 같았다. 정상 범위 선을 넘어 버리고 말 그래프는 핏자국처럼 검붉게 색을 입고 나에게 이렇게 단호히 말할 것만 같았다. '당장 큰 병원으로 가시오.' 단 몇 초 사이에 죽음의 문턱을 상상하던 나는 지금이 바로 '시작'할 때임을 직감했다. 어쩌면 성공과 실패 보다 더 중요할, 가슴 뛰는 '시작'을 필요한 순간이라는 걸.  



할 거면 일단 시작해.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다이어트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다이어트는 저항이었다. 평생 즐겨 먹던 식습관과 변화가 달갑지 않은 관성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나의 결심을 의심하는 모든 것과의 냉전이었다. 운동해봐야 아플 사람은 다 아프더라, 오늘 같은 날에도 유별스럽게 굴어야 하냐,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이 좋다, 뭘 그렇게 먹는 것 앞에서 깐깐하게 구냐, 어차피 죽고 없어질 몸인데-따위의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를 뒤집어쓴 말들은 투명한 가시처럼 예고 없이 다가와 말없이 상처를 남기고 만다. 그런 핀잔과 시선에도 화내지 않고 묵묵히 나의 식단과 루틴을 찾아가는 과정은 나의 권리와 선택을 사수하는 항거에 가까웠다. 굴복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처절한 전쟁을 선포하며, 유혹에 쉽게 무너질수록 외롭게 싸우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 말고도 다이어트를 마음먹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마음먹었지만 도무지 그 마음을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곳곳에 있다는 걸. 고요한 투쟁도 소문이 나기에, 나의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결심의 강도를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그렇게 시작한 질문 퍼레이드는 왜 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할 거냐, 얼마나 감량할 거냐-를 거쳐, 과거에 감량했던 에피소드들과 지인의 노하우까지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넘나들더니, 어느 순간 동료 두 명이 다이어트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오랜 점심 멤버였던 나와 그들은 사적으로도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A4용지와 펜을 꺼냈고,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일단 다이어트 도시락을 공동 구매했다. 탄수화물 함량은 줄이고 단백질과 지방 비중을 높인, 소위 '저탄고지' 도시락은 주요 반찬이 대부분 닭가슴살로 꾸려져 있었다. 여러 개를 살수록 가격이 저렴하여 30개를 구입, 10개씩 나눠 점심먹자는 계획이었다. 좋아하는 간식을 외면하고 도시락만 먹기로 결심은 즉시 구매와 익일 배송 시스템 덕분에 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드디어 처음 먹어 본 닭가슴살 도시락. 매일 아침마다 스스로 챙겨야 할 도시락에 비하면 훌륭한 구성이었다. 게다가 맛도 나쁘지 않았다. 점심 메뉴를 고른다는 핑계로 과하게 많이 주문하여 먹었던 나에게 적절한 방법이었다. 나를 포함한 각서 3인은 크게 어려움 없이 다이어트 첫 주를 보냈다. 여기까진 성공적이었다.


다이어트 둘째 주. 점심은 다이어트 도시락, 저녁은 집에서 건강하게 자율 식단 체제로 잘 진행되던 우리의 다이어트 루틴에 적신호가 걸렸다. 점심 도시락까진 괜찮았다. 다만 오후 4시가 되면 적막한 사무실에 지엽적으로 소리가 울렸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꼬르륵 알람이었다. 인간의 생체 신호는 추위와 배고픔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생존을 위해 신호에 반응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었다. 텅 빈 위장의 호소로 각서 3인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굴었다. 탕비실을 기웃거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지금 생각하니 환각일지도 모르겠다)가 풍겨와 이성을 잃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필 사무실 바로 맞은편에 노브랜드 매장이 개업을 했는데 업무 중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먹거리를 팔고 있었고, 그 매장에서 할인 판매하는 스낵들이 나의 업무 공간까지 침투하고 만 것이다. 사실 개업 소식을 진작부터 들어 알고 있었고, 과자를 좋아하는 나는 매장 앞에 진열된 과자 묶음과 광고 전단지를 보며 평생 먹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수없이 되물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법. 나는 각서 내용을 떠올리며, 지금 먹지 않는다고 과자에 얽힌 추억들이 사라지지 않을 테니, 이번만 참자고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탄수화물 안전지대였던 사무실에 대거의 라면과 간식이 유입되기 시작한 건, 회사의 긴박한 조치로 사무실 전 부서가 비상에 걸리고 만 8월부터였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야근과 대기 근무는 야심 차게 계획한 다이어트 루틴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400Kcal에 불과한 닭가슴살 도시락 하나로 버티기엔, 하루는 너무 길었고 고단했다. 나는 노브랜드 매장을 기웃거렸다. 아무 생각 없이 골라 담은 게 수 만 원어치의 과자들이었고 황홀함을 놓지 못한 나는 과자를 풀어놓고 야근 중 과자파티를 열었다. 매장에서 계산할 때만큼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언한 것이 생각났지만 위화감, 긴장감 하나 허락하지 않는 천진난만한 과자들 앞에서 나는 잠시동안 손에 가루를 잔뜩 묻힌 아이였다. 도원결의 멤버들 또한 하루의 끝을 붙잡은 주먹을 펴고 우리는 전투 중에 목을 축이는 병사들처럼 생존을 확인했다. 자꾸만 손이 가는 스낵의 덫은 '다이어트는 망했어'-라고 울부짖으면서도 싱글벙글 웃게 만드는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같은 목표를 가진 각서 3인은 회식비가 걸린 내기를 계속 상기하며, 스낵을 옆 사람에게 가깝게 끌어다 주거나 음료수를 가득 따라주는 괴상한 매너를 만들어냈고, 결국 우리는 먹은 만큼 움직이기로 극적 타협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일단 걸어보자고 무작정 강남대로를 따라갔다. 횡단보도가 나오면 건너고, 강이 나오면 다리를 건넜다.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그렇게 걷다 목이 말라 멈춘 곳은 이태원 어느 카페. 우리는 한남대교를 건너며 다이어트를 하는 이야기를 나눴고 그 저편에 있는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배부르게 먹었던 스낵들은 어느새 발칙한 추억이 되었고 함께 걸으며 눈에 담은 밤의 풍경은 어떤 디저트보다 담백했다. 스낵으로 얼룩지고 만 다이어트 루틴과 일에 치어 챙기지 못한 나의 마음을 어루만진 건 매 순간 흔들려도 실패라고 말하지 않는 우리의 대화와 괜찮고 할 수 있다고 말하던 나의 목소리였다. 비록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삶이지만, 참고 굶주리고 버티고 실컷 먹고 다시 걷길 반복하는 우리는 모두, 시작된 여정에 서 있는 사람들이고 아직 실패하지 않은 매듭들이었다.  



전우여, 저탄고지로 가자!


다시 체중계에 올라 서기로 한 날이 왔다. 나는 결국 원하는 체중을 달성했다. 가장 외롭던 날을 함께 보낸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고 우리는 함께 축배를 들었다. 아, 나머지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묻는 분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동의를 구해 살짝 공개해 본다. 그들의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다이어트 도시락을 다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더 찌는 막강한 반전을 이루어 냈다. 물론 기초대사량 보다 적게 먹었음에도 살이 찌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무언가를 먹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쨌든 그들은 각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부터 내기가 종료될 때까지 주변을 떠나지 않고 관전한 사무실 동료들로부터 열렬한 놀림을 받았다. (참고로 두 사람은 현재 체중 감량을 하여 당초 세운 목표 체중에 근접한 상태이니, 고생했다는 의미로 박수를 쳐 주길 부탁드린다.)


나는 다이어트와 일은 서로 닮아 있다고 느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하고 나면 나름의 결과가 있다. 계속해 나가지 않으면 밀린 숙제처럼 쌓이고 만다. 그리고 외롭고 지치기에 함께 하는 동지들이 때로는 큰 위안이 된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관성과 나태에 맞서 나를 깨우고 달리게 하는 것. 각양각색의 방법이 있지만 나에게 딱 맞는 걸 찾기 어려운 것. 꾹 참고 나를 위해 스스로 끌고 가야 하는 것. 그리고, 오직 나를 위해 나의 선택으로 해야 하는 것. 행복의 과정이어야만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다이어트는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삶의 노동과 결을 함께 한다. 결국 일과 돈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 건조하고 냉정한 조직의 맛은 쓰지만, 함께 고생하며 나눠 먹는 스낵의 맛은 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나름 제대로 했던 다이어트 내기의 일화는 여기에서 끝난다. 나름 제대로 했다는 문장에서 나는 '제대로'에 강조음을 넣고 싶다. 일하면서 입에 털어 넣은 간식들과 꽤 자주 즐긴 치팅데이를 두고도 그렇게 말하느냐고 물어도, 나는 단호하다. 지향점을 두고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을 택할지, 여정의 선택권은 나에게 있기에, 그 길을 '제대로' 걸었는지 대답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그토록 먹는 걸 좋아하면서, 세 끼니를 다 챙겨 먹으면서, 그게 무슨 다이어트 선언이냐는, 온갖 시선들이 나의 진심을 의심하더라도, 나는 최선을 다해 제대로 즐겼다고 말할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해야만 100% 일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몇 킬로를 뺐느냐가 아니다. 지금 몇 킬로인지, 다이어트 중에 무슨 간식을 먹었는지, 이런 감시의 대상 하나하나가 아니다. 왜 다이어트를 마음먹었는지, 왜 건강해지고 싶어 졌는지, 어떤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가-이다. 어떤 계기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떻게 나의 현재와 지향점이 바뀌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시작은 있어도 실패는 없을 우리는 에이스(ACE), 함께라면 오-예스(Oh, Y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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