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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Sep 30. 2023

스트릿 도넛 파이터

우우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네

거리에서 자욱하게 올라오는 연기를 보면, 계절이 바뀌었구나 실감한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단풍이 쌓일 무렵이면 겨울 채비를 하는 어수선한 틈에 한 평도 되지 않는 간이 포장마차가 길목에 자리한다. 따뜻한 간식을 입에 넣고, 가슴 가득 품에 안고 거리의 맛을 탐닉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계절마다 순번을 바꾸며 찾아오는 포장마차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온갖 상상을 한다.


철저히 집밥을 고집했던 엄마는 길거리 음식을 사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식사 시간이 임박하여 집으로 가는 길에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 나는 엄마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엄마는 묻지 않은 말에 미리 대답을 했다.

" 밥 먹기 전에 군것질하는 거 아니야. 못 봤다 생각하고 한 번만 꾹 참고 가면 되는 거야."

엄마는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길에서 등장하는 먹거리를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번 참으면 천 원, 두 번 참으면 이천 원을 아낄 수 있으니 엄마 손을 잡은 나는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집을 향하곤 했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잘 참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길 위의 만찬들이 여전히 궁금하고 그리운 순간들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더 이상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길에서 음식을 살 수 있음에 환호했다. 이따금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길거리표 간식은 어떤 인사 보다도 다정했다. 혼자 잠깐 멈춰 서서 먹고 싶은 것들을 미련 없이 골라 배를 채우는, 이토록 저렴하고 포근한 위로는 없을 거라고 말하며.  


특히 스물여덟 번째 가을이 오던 날, 나는 임신의 기쁨과 함께 먹고 싶은 것들로 나를 채우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임신은 나에게 큰 변화의 시기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먹고 싶은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는 점이었다. 아기를 잉태한 임신부의 특권이 이토록 어마어마할 줄 몰랐다. 나의 말 한마디면 무슨 음식이든 분주하게 준비되곤 했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능력에 더하여 먹고 싶은 걸 말 한마디로 눈앞에 가져오게 하는 능력, 그야말로 전지전능의 시간이었다.


나는 첫 임신이었지만 임신부의 삶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는데, 당시 팀 내 임신이 유행(?)하는 특수한 상황 덕분이었다. 내 자리를 기준으로 앞, 옆, 뒤 모두 임신부들이 앉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졸리지만 흔한 커피마저 출입할 수 없는 무독의 공간이었다. 어쩌다 보니 출산 예정일 또한 비슷하여 임신 주 차 별로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임신 초중기에 두드러지는 입덧이 그러했다. 입덧이 심해 조금만 낯선 냄새를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탓에 버스조차 탈 수 없는 사람, 안 먹던 음식만 찾으며 괴짜 같이 구는 사람, 먹으면 바로 잠이 쏟아져 오후 내내 세수를 하는 사람까지.  


그중에서 나는 꽤 운이 좋은 임신부였다. 입덧이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지만 비슷한 증상조차 경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가 고프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불편한 기분을 느끼는데 마치 흔들리는 곳에서 멀미를 하는 것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나는 이것을 '먹덧'이라 불렀다. 먹덧을 하면서부터 나는 '먹는 음식'을 조심하는 대신 '먹지 못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배불리 먹지 않고 일찍 잠이 드는 날이면 배가 고픈 나머지 깊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배를 채워야 했다. 먹덧을 핑계로 나는 신나게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아 거침없이 먹었다. 입덧으로 고생하는 임신 동기(?)들도 본인 몫까지 잘 챙겨 먹으라며 물질적, 정신적으로 열렬히 지지한 덕분에, 나는 방해꾼도, 죄책감도, 아쉬움 없이 먹고 싶은 것들에 둘러싸인 채 매일매일이 완벽한 치팅데이였다.

적어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날도 나는 복숭아 한 박스를 혼자서 거뜬히 해치우고 한가롭게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코코넛 향과 바닐라 향, 그리고 갓 튀긴 밀가루 향이었다. 단단히 작정하고 똘똘 뭉친 냄새들은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나를 유혹했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니, 그것은 바로 미니 도넛이었다. 앗, 이거 내가 아는 도넛인데? 한 때 동네에서 유행했던,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링 도넛을 보고 반가운 나머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식기 전에 서둘러 입에 넣으려는 찰나, 갑자기 부르르 진동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나는 순간 놀라 갑자기 눈을 떴고 눈앞에 하얀 벽지만 보였다. 아, 꿈이었구나. 복숭아를 먹고 배가 불러 잠이 들었던 거였다. 도넛이 있던 자리엔 복숭아 씨앗만 쌓여 있었다. 이토록 생생한 꿈이라니. 나는 혹시 태몽인가 싶어 인터넷에 검색을 하며 '꿈 보다 해몽'을 시도했지만 갑자기 만난 추억의 간식이 자꾸 떠오르는 바람에 온종일 내 머릿속은 '꿈 보다 도넛'이고 말았다.



우우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네.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  


학창 시절의 내가 자주 드나들던 골목에는 오래전부터 간식을 파는 작은 포장마차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사장님들의 분위기가 대체로 비슷했다. 어두운 색상의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은 머리를 질끈 묶었고 빨간 페인트를 연상시키는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러다 아파트 입구에 막 개업한 새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진한 주황색 현수막에는 미니 도넛으로 끝나는 이름이 둥글둥글한 글씨로 쓰여 있었고 같은 색으로 두건과 앞치마를 제작하여 입은 사장님은 행인들을 향해 외쳤다.


"새로 나온 도넛이에요. 맛보고 가세요."

장사 첫날이라 시식용 도넛들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놓여있었다. 부담 갖지 말고 와서 가져가라며 이쑤시개로 하나씩 꽂아 놓은 사장님은 행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은 학교 끝나고 걸어오던 나에게도 닿았고 무료 시식이라는 말에 눈빛이 매섭게 변한 책가방 군단들이 뛰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달린 결과, 몇 개 남지 않은 이쑤시개 중 하나를 집어 간신히 도넛을 입에 넣었다. 별 기대 없이 먹은 작은 도넛, 소스 하나 묻지 않은 빵 튀김은 예상했던 맛과 달랐다. 그간 내가 먹었던 도넛은 찹쌀로 만든 것뿐이었다. 태어나 처음 먹은 즉석 도넛의 맛은 역시나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고소한 맛이었다. 모양만 보면 어니언링을 닮았으나 질감은 바삭하면서 부드러웠고, 살짝 바닐라 향과 코코넛 가루 냄새가 섞여 고급지게 달콤하여, 내가 길거리에서 만난 풍미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했다. 가격을 보니 즉석에서 도넛 반죽을 기름에 튀겨 종이봉투에 담은 게 천 원이었다. 시식의 기회는 (양심 상) 단 한 번이므로 나는 다시 먹을 기회를 찾아야 했다. (도넛을 사 먹을) 용돈을 걸고 부모님께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번 시험을 잘 보면 용돈을 받고 싶어요."  


도넛을 향한 열망은 사뭇 진지했다. 설마 했던 시험 결과는 좋았고 나는 몇 봉투의 도넛을 먹을 만큼의 포상을 받았다. 도넛 장수를 기다리며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렀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또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서야 도넛 장수가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붕어빵이나 떡볶이에 익숙한 사람들이 선뜻 미니 도넛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지 않은 탓이었다. 거센 향기를 내뿜으며 등장한 패기에 미각을 빼앗긴 나는 예고 없이 맞닥뜨리게 된 이별 앞에서 첫사랑을 놓친 듯한 아쉬움을 느꼈던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맛과 향기뿐, 실종된 도넛을 찾기 위해 필요한 어떤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넛의 이름조차 일기장에 적어 두지 않은 건 다시 먹을 기회도 기대도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완전히 잊은 줄 알았던 도넛이 꿈에 나타나면서 나의 식욕은 고장이 났다. 허기질 때면 그 도넛이 떠올랐다. 비슷한 빵이나 밀가루 음식으로 적당히 달래던 나는 그 도넛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존재했던 맛이니 어디에 단서가 있을 거라 믿었다. 일단 나만 기억하는 맛을 잘 설명하기 위해 그 맛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한 사람이 그 맛을 알고 있었다. 나의 오랜 먹부림 동지, S였다. 나는 S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혹시 기억나? 우리 아파트 앞에 팔았던 도넛 장수? 그 자리에서 튀겨서 파는 데 그 주황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팔았었거든."

S는 바로 맞장구를 쳤다. 녀석을 스쳐간 다른 간식들처럼 S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히려  더 디테일한 묘사를 하며 과연 '먹'동무 다운 대답을 해주었다. 문제는 S도 그 도넛 맛을 알지만 지금 그 도넛을 파는 곳은 모른다는 거였다. 20년 전 길거리에서 팔던 도넛을 찾는 게 쉬울 수 없었다. 나는 그 맛을 기억하고 있는 S가 그저 고마웠다. 어설픈 단어로 풀어도 알아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과거의 내가 사랑했던 맛을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물론 대화 말미에 솟구쳐 오르는 허기를 달랠 방법은 없었지만, 나는 과거의 맛을 현재에서 찾고 말겠다는 고귀한 미션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S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며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묻기로 마음먹었다. 고민 끝에, 다음 카페에 [도와주세요]라는 머리말을 넣어 글을 써 올렸다. 해당 도넛을 언급하며 유사한 도넛을 아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절실함이 느껴졌는지 글을 보고 지나치지 않고 혹시 비슷한 도넛일지 몰라 이름을 남긴다며 한 번 먹어 보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이것이 수개월 간의 도넛 대장정의 시작이 될 줄. 그리워서 내디딘 발걸음이 만들어 내는 철없는 행복이 될 줄.   



ㄴ    XX시장에서 파는 풀빵이랑 비슷해요.

당시 나는 일단 길에서 도넛과 비슷한 풀빵을 발견하면 무작정 다가갔다. 풀빵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미니 도넛을 만드는 과정과 닮았다고 느꼈다. (요리 경력 0년, 베이킹 경험이 전무했던 점을 고려하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을 수도 있다.) 임신 30주를 넘긴 뒤로 나는 튀어나온 배만큼 얼굴을 들이밀며 풀빵과 미니 도넛 간의 상관관계를 노골적으로 묻기도 했다. 사장님은 가루를 더 넣고 적당히 섞어 튀기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며, 일단 풀빵부터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나는 38주 차에 인생 최대 몸무게를 기록했는데 '풀빵 벌크업'이 한몫했음에 이견이 없다.  


ㄴ    올드훼션드! 던킨도너츠에서 파는 기본 스타일인데 유사한 맛이 나요!

댓글을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이미 올드훼션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맛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댓글을 써준 분의 노고와 정성에 감동하여 던킨도너츠로 당장 달려가 올드훼션드를 사 먹었다. 미니 도넛과는 다른 맛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었다. 제가 찾던 그 맛이에요!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도넛 추천의 댓글에 매우 감사하다는 대-댓글을 잊지 않고 달았다. 지금도 매장에 갈 때마다 커피와 올드훼션드는 늘 옳다.  

http://m.dunkindonuts.co.kr/menu/view.php?seq=5020


ㄴ    하라도너츠를 먹으며 모든 도넛과 이별을 했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신촌 현대백화점에 입점했다는 제보를 받고 일본식 도넛에 희망을 걸고 찾아갔다. 이 도넛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에 물어보았으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정말 댓글 하나만 믿고 찾아갔다. 먹어 본 맛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런 시도는 흔히 않았고, 이런 내 모습이 왠지 신선하게 느껴져 혼자 싱글벙글 웃으며 걸었다. 도넛계의 얼리어답터가 된 것처럼 도넛을 평정하러 온 파이터처럼 매장에 들어가 도넛 1박스를 사서 나왔다. 토핑이 과하거나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다만 어린 시절에 나에게 전송하기엔 도넛 맛이 너무 담백하고 고급스러워서, 새로운 도넛을 만났다는 기쁨의 맛으로 속결했다. 가지 않던 길에 들어서면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되듯, 남은 여정에서 과연 어떤 맛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아는 맛을 넘어서, 알고 싶은 맛이 생길 것만 같은 생경 하면서도 짜릿한 기분에 아이처럼 도넛을 펼쳐 놓고 우유에 흠뻑 담가 먹는 것도 잊지 않고.  

https://instagram.com/haradonuts?igshid=MzRlODBiNWFlZA==


ㄴ    시판 가루로 직접 만들어 보세요. 딱 그때 그 도넛 맛이 난답니다.

사실 가장 애매한 댓글이었고 일치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 선택지였다. 또한 가장 마지막 선택지이기도 했다. 댓글에서 소개한 시판 가루는 이름마저도 앙큼한 '도나스 가루'였는데, 눈에 확 띄는 제품명 폰트도 압도적이었지만 제품 뒷면에 실린 레시피는 엄마나 할머니의 요리 강좌보다 훨씬 친절했다. '5) 튀김 스텝'에 등장한 사진 속 미니 링도넛이 단번 눈에 띄었는데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도넛과 참 닮아 있었다. 절대로 이 믹스가 그 도넛일리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어쩌면 시판 도넛에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향수를 직접 재현해 보라는 신의 계시일지 몰라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도넛 한 개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려 5인분의 '도나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판 가루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튀기는 기름에서 정확히 그때 그 소리가 났다. 갓 튀긴 링도나스에 이쑤시개를 콕 박아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주저앉았다. '이런, 결국 너였어?' 바닐라 향이 코 끝으로 들어오는 순간, 방 안에 가득 매운 향기가 걷히며 그날의 장면들이 우르르 모여 스쳐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쭈그려 앉아 배를 잡고 키득거리며 웃고 말았다. 집에서 스무 걸음이면 닿는 마트에서 산 시판 가루가 내가 찾던 그 도넛이었을 줄이야.


https://naver.me/Ftuv6fOC

나는 만화책에서 어떤 극한의 감동을 묘사한 장면을 읽은 적이 있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주인공이 와인을 한 잔 입에 넣는 순간 끝없는 포도나무가 펼쳐진 와이너리가 짜잔-하고 등장하더니 동시에 포도를 채집한 순간으로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다. 수 십 년 동안 발효된 포도와 장인의 삶, 바람과 햇빛까지 와인 한 방울에 담긴 노고와 축복의 역사를 단 몇 초 만에 느끼며 주인공은 와인의 깊이에 흠뻑 빠진다. 나는 태어나서 그토록 아름답게 과장된 장면은 처음이어서 온몸에 닭살이 돋는 듯한 오글거림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게 환상적인 맛이라고?- 되물으며 와인을 먹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비록 신의 물방울을 만나진 못했지만, 수년이 지난 후 도나스 가루로 만든 링 도넛 하나를 입에 넣고 3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눈물을 찔금거린 내가 만난 게 바로 [신의 도나스]였다.


"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건 꿈이 현실이 되리라 믿는 것이지."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그토록 원했던 보물은 뜻밖에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처럼, 도넛은 언제나 나의 기억 속에 그리고 언제든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 먹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놓여있었다.


추억의 맛은 어쩌면 적층 된 기억과 장면의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다른 맛으로 재해석되거나 미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맛이 좋아서 그것과 똑같은 도플갱어를 찾으려 했던 걸까. 아니면, 도넛을 입에 물면 다시 만날 것만 같은 그때의 향기와 소리, 사람들이 그리웠던 걸까. 나는 S에게 말했다. 도나스 믹스에서 비슷한 맛을 찾았지만 그 도넛은 여전히 꿈속에 있다고. 우리는 그리움을 벗 삼아 살아가는 중이라고. 여름 햇살이 하얗게 식는 계절마다 바닐라향이 가득했던 달콤한 꿈을 꾸며, 끝내 그 맛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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