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를 못해서 신년회로 재무장하여 1월에 모이자 했으나 다시 취소, 겨우 날짜를 다시 잡았지만 아기들 감기 소식에 다시 또 취소. 나를 포함하여 고작 넷이 전부인 이 동창 모임은 한번 모이려면 수많은 관문들을 통과해야 하는 그야말로 거국행사다. 모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인 데다, 사는 곳도 다 달라서, 만나려면 오고 가는 시간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사실 이런 상황이면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고 소원해지기 마련인데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건 저마다 알게 모르게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며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30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추한 꼴, 엄한 꼴을 사이좋게 나눈 청춘의 혈맹으로서 적어도 계절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보며 참 많이 먹었고 열심히 떠들었다. 죄를 지은 것도, 공소시효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아쉬운 마음에 주기적으로 서로의 흑역사를 상기시켰다. 코흘리개 시절도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우리의 장기 기억 캡슐에 선명하게 박제되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왜 매번 했던 이야기만 또 하냐'며 뻔한 레퍼토리와 예상가능한 지점에서 깔깔 웃다가 '진짜로 다음부터는 했던 이야기 또 하지 말자'는 말을 또 하며 다음 모임을 기약하곤 했다. 그렇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시간들은 넷이 전부 모일 때만 완성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런데 자꾸 미뤄지는 모임, 게다가 벌써 세 번째 취소라니. 매일 부르던 노래도 하루 이틀 거르다 보면 가사를 잊어버리듯 얼굴도 자주 만나야 까먹지 않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다 같이 만나야 했다.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다시 톡을 보냈다. 야야 우리 언제 볼까. 하나 둘 답이 오는데 유독 한 녀석만 답이 없다. 범인은 '손'이다. 넷 중에서 가장 소심하고 겁이 많은 녀석. 모두가 대답한 뒤에 가장 마지막에 대답하는 녀석. 그런데 이미 셋이 먼저 이러자 저러자 의견을 냈는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손'은 답이 없다. 녀석, 왜 이리 바쁜 척이야.
'손'의 바쁜 척에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본래 조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라 직장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락 가능한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녀석도, 전업주부로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집에서 혼자 우두커니 돈걱정만 하고 있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분위기 바꾸며 사장님이 되었다. 김밥을 말고 우동을 끓이는 분식집 사장님이다.
나는 '손'의 답을 기다리는 대신, 2년 차 사장님의 일과를 직접 훔쳐보기로 결심했다. 마침 점심시간 전후로 여유가 생겨, 빨리 가보려는 마음에, 분식집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연락 없이 찾아가는 짓을 얼마 만에 해보는지. 친구가 가게 사장님이라서 좋은 점을 찾았다. 영업일이면 언제든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설렌다. 가슴이 하는 짓이 참 어이가 없다.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괜히 들뜬 나에게 분명히 해 둔다. 난 그저 녀석의 바쁜 척을 꾸짖으러 가는 거다. 보고 싶고, 뭐 그런 거 아니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지하철은 왜 이리 늦게 오는 건지.
드디어 도착. 주방에 서 있는 녀석이 보인다. '손'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잽싸게 김밥을 말고 있었다. 나는 축지법 쓰듯 신속하게, 그러나 티 나지 않게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한다. 하여간 녀석, 눈치가 없는 건 여전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주문서를 들고 주방에 다가가 한 마디하고 만다. "아이고 사장님 너무너무 바쁘시네요." "어머나, 너 뭐야, 연락도 없이!" 사장님은 어린애처럼 웃으며 뭐 시켰냐 아침은 먹었냐 근데 혹시 살 빠졌냐, 마치 자기가 손님인 듯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 맥락 없는 수다 중에도 손은 결코 재료를 빼먹거나 멈칫하지 않는다. 그렇다. 사장님이 정말 너무너무 바쁜 게 맞았다. 나는 혼잡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구석자리를 골라 앉았다. 괜히 혼자 흐뭇하다. 물론 배가 고파서 사장님을 계속 쳐다보며 빨리 달라고 복화술 쓴 건 우정의 표시다.
소고기 마요 김밥은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다. '손'의 추천 메뉴이기도 하다. 녀석은 배시시 웃는 얌전한 관상과 다르게 육식에 최적화된 '건치 미식가'여서 못 먹는(뜯는) 고기가 없다. 고기에 무척이나 진심인 '건치 사장님'은 김밥에 넣는 고기에도 거짓이 없다. 난 그런 훌륭한 사장님을 친구로 둔 것이 참 자랑스럽다. 이것은 결코 녀석이 서비스로 만들어 준 공짜 김밥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김밥을 말기 시작하고 녀석은 '살아가기'에 더욱 진심을 다했다.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던 녀석이 진짜 진심을 담아 '자기 일'을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떤 식으로는 녀석의 '살아가기'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음, 일단 김밥을 먹는 것부터 하자.
김밥을 하나 먹어 본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맛있다. 참 맛있다. 참 다행이다. 맛있다고 엄지 척-해주고 싶었으나 식사가 끝나가는 동안 '손'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김밥만 말았다. 나는 김밥을 남김없이 먹고 지능형 블랙컨슈머답게 따끔히 한줄평을 날린다. "사장님 오늘 김밥 맛있네요. 그래도 단톡방에 답은 해주세요." 사장님은 이따 전화할게! 라며 활짝 웃는다. 답도 제때 안 하고 반말만 하는 사장님, 아직 멀었군. 나는 이제야 빼먹었던 꾸중을 늘어놓는다.
배가 고파서 찾아간 김밥 맛집. 나는 저녁까지 속이 든든할 정도 넘치도록 배를 채우며 깨달았다. 녀석이 만든 김밥은 최고였다고. 사실은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 맛있는 김밥 덕분이었으니. 그리고, 배고픔과 보고픔은 무척 닮았다고.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보내는 신호, 그렇지만 매번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연약함이 닮았다. 먹고 싶다는 건 사실 보고 싶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넷은, 서로의 용안을 확인하는 것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것은 '손'의 김밥이 맛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담아 바쁘게 '살아가기' 중이기 때문이다. 지금 '손'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맛있는 김밥, 배고픔을 달래고 보고픔을 어루만질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