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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

그대 노 저어 오오

by 미하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처음 은유라는 것을 배울 때 교과서에서 닳고 닳도록 보았던 문장이 새삼스레 가슴을 친다.

석촌호수에서는 배를 띄울 수도, 그래서 노를 저을 수도 없지만 나는 너의 흰 그림자를 안고 뱃전에 부서질 것 같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벚꽃이 가득한 계절은 죽지도 않고 해마다 돌아온다. 그리고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도. 벚꽃은 일본 꽃이니 벚꽃 축제는 하지도, 즐기지도 말라고 목청이 터져라 시위하는 사람을 보다 보니 모처럼의 꽃구경으로 들뜬 마음이 짜게 식기 시작한다.

벚꽃의 원산지에 대한 왈가왈부는 많지만, 나는 제주 왕벚꽃이 그 처음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나는 저 시위자에게 달려가, 믿는 건 좋을 대로, 벚꽃을 즐기는 건 내 마음이니 당신은 그만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나의 고요를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다.


싫었던 마음을 다시 말랑하게 장전하고 귀를 막은 채 발을 뗀다. 그렇지만 눈은 막지 못했던 탓에 호수의 산책로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음료 잔의 잔해들을 보고야 만다.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덧 내 마음도 이런 취급일까 싶어 먹먹해진다.

물론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님을,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산책로 그득한 커플들 사이로 곁을 비워둔 채 걷고 있는 내가 쓸쓸해져 가엽기도 하다.

혼자면 뭐 어때! 싶다가도 괜스레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찌질함일까. 고개를 흔들고 다시 한번 너의 눈동자 같은 호수를 바라보며 기분 맑음! 억지로 맑아짐! 을 시전한다. 뭐든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즐겁... 즐거워야만 한다!


석촌호수는 본래 한강의 본류였으나 토사가 쌓여 형성된 섬을 육지화하는 공사 중에 물길을 폐쇄하여 만든 인공 호수다. 처음에는 나쁜 수질과 악취로 볼품없던 이 인공 호수는 송파구가 작정하고 명소로 만들겠다 마음먹은 뒤 대대적인 정비 사업의 결과 지금의 아름다운 호수로 탈바꿈했다.


나의 마음은 인공일까 자연적인 것일까. 너에게로의 끌림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것의 관리는 한없이 인공적이다. 너에게로 흐르던 거대한 물길을 막고 그리움과 아릿함을 저장하고 있다. 잘 전해지지 않는 마음이 겨워, 악취로 가득하던 나쁜 속을 정화시키고 어느 정도는 눈부심을 유지하고 있다. 석촌호수처럼 끊임없이 수질과 수량을 체크해야 하는 인공의 호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그 시처럼, 호수다.


이 호수에 돌을 던지고 싶다. 물수제비를 띄워 너에게로 달려가고 싶다. 잘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저 먼 끝까지, 너의 끝에까지 도달할지도 모른다. 한 번 두 번 조심스레, 처음 가는 마음을 네게 주고 싶다. 널 놀라게 하는 파동을 일으키고 싶고 두드리고 싶다. 그러다 보면 너의 마음에 동그랗게 파문이 일지도 모르겠다. 달리던 돌멩이가 물속으로 가라앉아도 그곳은 너의 마음 깊은 곳일 테니 나는 그것으로 좋다. 다시 떠오를 수 없다 해도, 벗어날 수 없다 해도 나는 좋다.


아직 찬바람에 연신 콧물이 난다. 눈가에 맺히는 이 이슬 같은 건, 추위에 무릎을 꿇어서인지 네가 생각나서인지 잘 모르겠다. 모호한 것을 굳이 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 고요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를 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막힌 물길처럼 안으로, 안으로 파고든다. 가끔 파계를 이뤄내는 팜므파탈의 꿈을 꾸어본다.

하지만 그 후, 그 이기적인 마음은 어디로 갈까. 이뤄낸 성과에 행복할까, 파괴된 순수에 불행할까.


노을이 지고 석촌 호수의 명물인 피아노가 있는 곳에 도달한다.

공명. 내 마음에 울림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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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봄날, 벚꽃 그리고 너 (by 에피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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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