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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 국궁전시관

마음의 정도

by 미하

인왕산 자락을 따라 놓인 도로를 올라간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가게도 거의 없는 곳에 산새만 지저귀고 있다.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좀 더 오르니 황학정 국궁전시관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미리 예약을 하면 국궁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국궁은 우리 고유의 활을 쏘는 무술이자 대한민국의 전통 스포츠로, 황학정은 고종이 광무 3년 기해년(1899)에 활쏘기 문화를 되살리고자 무과시험을 치르던 장소인 등과정 터에 세운 활터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습사를 할 수 있는 작은 활터가 있고 오른편에 국궁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쪽으로 들어가 예약을 확인하고 체험비를 결제한다. 활쏘기는 10발에 4000원이고 추가 10발은 2000원이라 하는데 한 번도 쏴본 적이 없기에 20발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체력이 허락한다면 분명히 하루 종일도 쏴보고 싶을 테다. 한국인이라면 활에 진심이니까. 게다가 정신 수양에 딱 아닐까. 네 생각을 조금은 덜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이라 하니 직원분이 가르쳐주신다 한다. 뒤를 졸졸 쫓아 활터로 나간다. 손에 국궁이 쥐어진다.

양궁과는 달리 활에 장치가 하나도 달려있지 않다. 활을 걸칠 수 있는 걸쇠 하나만 있는데 이것도 연습용이라 달려있는 장치다. 조준경도 없고 그야말로 감각으로 쏘는 것이 국궁이라 한다.

벌써부터 내 감각의 정도가 궁금해진다.


먼저 서는 자세부터 교육을 받는다. 양궁은 과녁을 중심으로 할 때 옆으로 선다. 그리고 검지 중지 약지 이렇게 세 손가락으로 시위를 당기는데 국궁은 과녁을 중심으로 마주 보고 선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하나로만 시위를 당긴다. 발은 정자도 팔자도 아닌 모양으로 벌려서는데 오른발을 왼발의 2/3쯤 뒤로 빼고 어깨폭만큼 벌려 발끝은 약 15도 밖을 향하게 선다. 몸의 중량이 양발에 고루 실리도록 하며 발끝이 앞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는데 이것은 두 팔이 앞뒤로 움직여 활을 힘껏 당겼을 때 몸통이 앞뒤 혹은 좌우로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안정시킬 수 있는 것으로 비정비팔의 자세라 한다. 선 다음에는 화살을 얹는다. 화살의 위치는 양궁과 다르게 활의 오른쪽이다.


어깨까지 시위를 힘껏 당긴다. 화살을 잡는 방법, 힘을 언제까지 주느냐에 따라 활에 실리는 힘이 달라진다고 한다.

화살을 잡는 엄지의 힘을 느끼고 살짝 왼쪽으로 돌린다. 직원분이 이제는 손가락을 풀라고 하는데 잘 놓아지지 않는다. 덕분에 첫 화살은 과녁까지 가지 못한다.


나는 네 앞에 어떤 자세로 서 있나. 안정적인 비정비팔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활도 쏘지 않았는데 앞뒤,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그야말로 엉거주춤의 자세다. 그래서 화살을 얹지도 시위를 당기지도 쏴보지도 못하고 있다. 과녁까지 당도하지 못할지라도 시위를 당기기라도 하고 있으면 힘에 겨워서라도 언젠가 화살을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너무 완벽히 서려고 하고 있는 걸까.

자세가 완벽하지 않아도 화살을 무작정 쏴대다가 우연히 한 발이라도 맞는 확률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건 궁도가 아니다. 그리고 우연은 여러 번 지속되지 않는다. 나는 화살을 쏠 때마다 과녁을 맞히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서는 법부터 익혀야 하는 게 맞다.


20발 중 한 발이 허무하게 소비되었다. 하지만 저 당도하지 못한 화살도 제 역할, 제 값은 하고 있다.

처음부터 잘되는 건 별로 없어, 괜찮아. 속으로 되뇌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선 자세를 살피고 화살을 얹어 힘껏 당긴다. 망설이지 않고 손을 풀자 이번에는 과녁을 맞힌다. 곰인지 멧돼지인지 헷갈리는 그림에는 맞추지 못했지만 화살이 나무에 가 박히는 소리가 꽤 묵직하다.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모습을 지켜보시던 직원분이 활의 무게가 좀 만만한 것 같다고 무게가 더 나가는 것으로 바꾸어도 되겠다며 다른 활을 건네주신다. 난 만만하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전문가가 그렇다 하니 순순히 활을 바꿔든다. 활을 쏴보니 과연 뭔가가 다르다. 좀 더 안정감이 생겼다고 할까.


어떻게 만만한 무게인지 아신 걸까. 아마도 활이 날아가는 속도, 과녁에 맞는 방향, 소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알게 되는 경험의 이치일 거다.

고백이나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도 경험이 쌓여 적당한 감을 알게 되는 것이면 좋겠다. 사실 난 이 두 번째 활도 나에게 적당한 아이인지 알 수가 없다. 스무 발쯤 쏘게 된 후면 알게 될까.


몇 발을 더 쏘는데 과녁을 곧잘 맞히고 있다. 뒤에서 구경하시던 분들에게 소질이 있다는 소릴 듣는다. 그중 한 분이 고수의 냄새를 풍기시며 다가와 레슨을 해주신다 한다.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용어 설명을 먼저 조금 해주신다. 활을 쥐는 손은 줌손, 활을 쏘는 손은 깍지손,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은 사이는 범아귀다. 그리고 먼저 시범을 보이신다.

양팔을 쭉 펴면서 활을 높이 들었다가 팔꿈치를 펼치면서 내린다. 항아리를 이고 있다가 벌어지는 느낌으로 줌손은 밖으로 힘껏 뻗고 깍지손은 안으로 힘껏 당기면서 내린다.

한번 따라 해 본다. 뭔가 자신감이 차오르는 자세다. 다시 한번 활이 만만하다고 가볍다는 얘기가 들린다. 어떤 무게가 맞는 것이냐 묻자 약간은 쩔쩔매는 듯한, 그럴 정도의 느낌의 무게가 좋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는 쏘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라 말씀해 주신다.


쩔쩔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정도의 무게.

그와 비슷한 지금의 내 마음은, 너에게 화살을 쏘기 딱 좋은 무게인 것일까. 좋은 무게를 들고서도 확신하지 못해 활을 얹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일단 활을 얹고 시위를 당기고 활을 쏴보면 그다음에는 지금이 적당한 무게였는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화살이 많지 않아서, 단 하나뿐이어서 무작정 시위를 당길 수 없다. 너에게 쏟아낼 내 마음의 개수가 스무 발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여러 번 당겨 적절한 무게를 알아볼 수 있을 텐데. 너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나는 우리 사이의 무게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25파운드의 활이 건네진다. 전에 것은 18파운드라고 한다. 무려 7파운드라니. 하지만 이것도 적절한 무게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시 한번 자세를 잡는다. 그때 뒤에서 계속 지켜보시던 또 한 분의 고수가 훈수를 두신다. 깍지손이 지적받는다. 그래서 화살을 잡은 손을 보니 움켜쥐고 있다. 너무 움켜쥐어 손이 꺾이면 팽팽한 일직선의 힘을 낼 수 없다. 화살을 쥘 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확실하게 쥐기는 하지만 힘은 넣지 말라는 거다. 달걀을 쥐듯이 해야 한다. 힘이 들어가 있으며 팔의 근육과 어깨까지 경직이 되어 유연한 동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너무 내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 쉽게 마음이 흘러 떨어질까 봐 너무 경직되어 있는 거다. 확실하게 다잡아 마음을 쥐되 부드럽게 달걀 다루듯 해야 하는데. 그래야 너에게로 팽팽한 일직선의 힘을 낼 수 있을 텐데.


곰의 이마는 한번 꽂고 가셔야 되지 않겠냐는 응원의 말에 깍지손뿐 아니라 온몸에 힘을 풀어본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비정비팔의 자세로 과녁을 마주 보고 똑바로 선다. 줌손으로 활을 흘려 잡고 시위에 활을 얹는다. 깍지손에는 힘을 풀고 화살을 확실하게 쥔다. 양팔을 쭉 펴면서 활을 높이 들었다가 팔꿈치를 펼치면서 내린다. 그리고선 시위를 살짝 틀어쥔 손을 풀어 화살을 놓는다.


퍽- 과녁의 오른쪽으로 화살이 가 박힌다.

활이 좀 더 무거워져서 그런지 과녁이 화살에 맞는

소리는 더 강하다. 고수님께서 내 화살이 박힌 쪽을 보시더니 앞난다 하신다. 그게 무엇이냐고 여쭤보니 과녁의 왼쪽으로 화살이 꽂히는 것을 뒤난다, 오른쪽으로 화살이 꽂히는 것을 앞난다라고 한다고 하신다.

활을 너무 세게 밀거나 당기는 힘이 부족하면 뒤가 나고, 활을 밀어주는 힘이 부족하거나 당기는 힘이 너무 세면 줌손이 안쪽으로 딸려 들어오게 되면서 앞이 난다. 그리고 앞나는 것은 아직도 활이 가벼워서 당기는 힘이 세서 그런 것이라 한다. 좀 더 무거운 활을 건네주시면서 모든 건 균형과의 싸움이라 하신다. 미는 힘과 당기는 힘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방향을 통해 내가 어디서 균형을 잃었는지 어디에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알아낼 수 있다.


밀당이라니. 머리가 갑자기 지끈거린다. 내가 정말 못하고 또 싫어하는 거다. 그렇지만 균형이란 말로 대체하니 한편으로는 조금 괜찮아지는 것도 같다. 아직도 활이 가볍다니. 나는 조금 더 무거워지도록 마음을 쌓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밀어내는 힘과 나에게로 당기는 힘 중 과연 어느 쪽이 센 걸까. 네가 과녁이고 내가 화살이라면 나는 앞이 날까 뒤가 날까.

화살을 쏴보면 당연히 알 것을 나는 머리로 애써 밀고 당기는 힘을 상상해 본다. 그래, 상상만 말고 어디 한번 밀당의 균형을 맞춰볼까.

다시 한번 모든 자세를 복기해 가며 차분하게 활을 쏜다.


퍽-!

웬걸. 과녁의 정중앙, 곰의 이마에 화살이 가 박힌다. 밀당이 완벽했나 보다. 고수님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이건 좀 완벽했다는 말과 함께. 희열이 찾아온다. 스무 발 안에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는데 아직 화살이 꽤 남아있다.

너에게도 에라 모르겠다 질러 버렸는데 웬걸, 네 마음 정중앙을 꿰뚫어버릴지도. 막상 해보니까 알았노라고 나는 밀당의 천재였다는 자만심이 생겨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국궁 용어 중에 ‘빠개다’라는 말이 있다. 다소 과격하게 들리는 이 말은 가슴을 내밀어 연다는 시원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활과 과녁이 꼭 맞는다’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하려는 일과 닥친 일이 꼭 들어맞는다는 말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널 향해 빠개면 활과 과녁은 꼭 맞아서 대체 왜 그동안 애끓며 망설였을까 쏜살같이 지나온 시간을 아까워할지도 모른다.

활이 명쾌하게 박히고 환희에 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명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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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Perfect (by One Di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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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