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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차량사업소

매니악

by 미하

차륜전삭고, 차륜전삭기, 현업동, 주습편마, 입환작업차...

알아들을 수 없어도 좋다. 전동차들이 잠자고, 씻고, 새 정비를 하는 이곳, 차량기지는 내 로망 중의 로망이었다. 지금 눈앞에 전동차를 덕질하는 꼬마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그득하다.


본격적인 차량기지 투어 전 간단하게(?) 이곳과 전동차의 구조와 관리 단계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어둠 속에 펼쳐지고 있다. 사람들의 눈이 반짝인다. 나는 마니아도 아니고 학부모, 학부형도 아니지만 그저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로망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전동차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이곳이 나의 마음과, 너와 참 많이도 닮았기에.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해설을 맡은 기지원이 자랑스럽게 선물 한 꾸러미를 내놓는다. 굉장히 상기된 그 톤에 이끌려 나도 아이들과 함께 그 앞으로 몰려간다. 서울교통공사의 캐릭터인 또타 인형과 주먹보다 큰 메모지 상자다.


“또타 인형 구할 수도 없어요. 올해는 만들지를 않아서 이게 남은 수량 다예요. 오늘 오신 분들은 행운이라니까요.”


아이들에게 다 나누어주도록 뒤로 물러나 있었지만 나의 손에도 또타가 들린다. 왠지 고맙고 뿌듯하다. 동심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부끄러움도 지나친다. 역시 한정판은 귀하고 귀하다. 너처럼.


손에 선물을 가득 들고 기지원을 따라나선다. 전동차에 관한 한 척척박사급으로 빠삭한 아이들이 재잘재잘 전문용어를 늘어놓는다. 그 열정에 나의 심장도 같이 열띠게 뛰는 것 같다.

지금만큼은 너에 대한 생각보다 그들의 매니악함에 이끌린다.

너도 이토록 몰두하는 게 있을까. 아직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서울을 탐방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너는,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건지 무척 궁금해했다.

나는 지금 너를 덕질 중이다.

걱정 마요. 놀라게는 하지 않을게.


자전거를 타고 기지를 이동하는 구성원들이 눈에 띈다. 크다 못해 거대한 이곳에 자전거는 필수템이다. 차량정비소 쪽으로 걸어가며 해설사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지하철 호선마다 있는 차량 기지끼리 해마다 야유회 겸 운동 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열띤 응원과 경쟁이 말도 못 할 정도라는 말을 듣는다. 마치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몽실몽실 즐거워진다.


차량기지의 핵심 지역에 도착한다. 많은 기지원들이 차량을 점검, 수리하고 있다. 한창 바쁜 와중에도 견학 온 이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그 마음이 참 상냥하다.

차량의 검사는 일상 검사와 월상 검사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상 검사에서는 운전실, 객실 설비, 옥상 기기, 대차 기기, 하부 기기 등의 상태 검사를 시행하고, 월상 검사 때는 주요 전자기기인 제동장치와 주전동기 고속도차단기를 검사한다.

그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뭔가 전문적인 지식을 알아가는 것 같아 나도 한순간 매니악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해설사가 하는 얘기들을 다 알아듣는 눈치다.

너는,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을까? 내가 너를 덕질하는 만큼, 너는 과연 나를 이해할까 궁금해진다. 검사를 해볼까?


삐- 전동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면 운전실?


견학의 마지막 순서로 차량 내부에 들어가 기기를 조작하는 순서를 가져본다. 운전석에서 이런저런 버튼도 눌러보고 전동문도 열었다 닫으며 ‘차량 문 열립니다.’ ‘차량 문 닫힙니다.’ 하고 안내방송까지 체험해 보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비상시 문을 개폐하는 방법까지.

후에 너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속에 단단히 갇혀버렸을 때 나는 그 사고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을까.


처음에 그저 보호자로만 왔다가 호기심이 동해 체험에 나서는 부모님들도 등장한다. 아이들 속에서도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는 나의 용맹 무쌍함에 무언의 동경(?) 순수(?) 공감(?)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견학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체험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전동차 객실의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창동기지는 언제 폐쇄돼요?”

“이 차량은 남부 다원시스예요? 현대 DV에요?”

“여기서 일하려면 어떤 시험을 봐야 돼요? ***인가요?”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적인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정말 감탄스럽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시험의 명칭부터 차량의 디테일까지 다 알아차리는 그 순간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난 너에 대해 그만큼은 알지 못하는데 아직 덕심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렇게 머쓱함에 머리카락을 꼬아보다, 어느 날 기분이 좋지 않은 너를 알아차린 나의 세심함에 놀라던 너의 눈을 기억해 낸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요.


그래, 네게 한정된, 나의 세심함도 참 매니악하다.


체험을 마치고 전동차를 내려온다. 그때 다른 전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선로를 천천히 움직여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정비소 쪽으로 향하는 전동차다.

해설사는 다시 한번 조심하라고 우리의 주의를 상기시킨다. 다가오는 전동차를 넋 놓고 바라보다 보니 유명 CF의 한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


비록 너는 그녀도, 전동차도, 이 전동차는 자전거도 아니지만, 네가 내 가슴속에 들어온다. 경적을 울리면서.

조심해요,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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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들었다 놨다 (by 데이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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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