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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

묻힌 고요

by 미하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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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은 중구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의 망북루(望北樓) 아래쪽에 있다.

한옥마을의 천우각, 전통공예관, 굴뚝, 방송콘텐츠를 찍는 사람들, 김치 움막, 청아한 물소리가 흐르는 계곡을 구경하다 오늘의 목적지로 향한다.


조용한 바람이 분다. 운석 분화구를 닮은 이 움푹한 공간 속 아무도 찾지 않을 고요함을 기대했지만,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커플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그들도 아마 북적거림과 수선함을 피해 이곳을 택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괜한 질투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뻘쭘함에 밖으로 나가려다 멈칫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그들의 신경 쓰이는 눈길보다 너에 대한 내 신경의 예민함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광장의 나선형 돌벽에 자리 잡은 고양이와 마주한다. 나는 잠시 도망가려 했지만 이 대단한 고양이는 나와 다르다. 도망가지 않는다. 새삼스레 이 작은 생명체에게 존경을 담은 눈길을 보낸다.


너도 누군가를 생각하니?


이 거대한 타임캡슐은 1394년 조선 건국 때 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정한 지 600년이 지난 것을 기념하여 1994년 11월 29일 이곳에 묻혔다.

타임캡슐의 개봉 시기는 400년 후다. 보신각종을 닮았다는 이 거대한 캡슐 안에는 서울을 대표하는 문물 600점이 들어있다. 담배, 팬티스타킹, 건강식품, 신용카드, 작물의 씨앗, 피임 기구, 인공심장까지 상상 안의 것들과 상상 밖의 물품들이 이 안에 잠들어 있다.

지금 그 안의 모습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 나는 그 역사적 사실과 진실한 마음 위에 서 있다.


겉은 꼭 무덤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돌에 각인된 수많은 유명인들의 축하 메시지들을 만지작거리는 지금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 타임캡슐이 더 궁금해져 안내 터치스크린 있는 곳으로 향한다. 스크린을 눌러보지만 작동하지 않는다.


왜? 왜 너처럼 대답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어보는 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어느 커플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영원한 사랑의 맹세라도 하는 걸까. 이곳에 그들의 즐거운 지금을 기념하는 순간을 묻고 있기라도 한 걸까.

몇 걸음을 떼어 다른 터치스크린을 건드려본다. 화면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 다시 한번 도전하면 움직인다. 나의 마음처럼 너의 마음도 어쩌면.


이 캡슐을 묻던 당시의 서울시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타임캡슐 수장 품목 600점은 서울을 사랑하는 시민들에 의해 선정되었으며 그 속에는 400년 후손들을 사랑하는 이 시대 시민들의 따뜻한 애정도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 애정은 개봉과 함께 온기를 갖고 생생하게 전해져 시공을 초월한 감동을 나누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너를 묻으러 이곳에 왔나.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끝내기에 알맞다 생각하여 방문한 곳이지만 어느덧 내 마음은 400년을 훌쩍 지나 다시 너와 마주한다.


지난 계절 가을의 낙엽이 사라지지 않고 이 봄, 소리 내어 굴러다니고 있다. 지난 흔적들이 자취를 남긴다. 과연 타임캡슐을 묻을 만한 곳이다. 시간이 더딘 듯 빠르게 흐른다.

나의 마음도 너에게로 다시,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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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버겁네 (by 아우릴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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