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다면
모든 일은 갑자기 일어난다.
우산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품어 가지게 된 것, 영원히 내 곁에 머물 줄 알았던 물건이었다.
어느 날부터 우산은 비가 새기 시작했다.
꼭꼭 닫아두었던 마음에 네가 들이쳤다.
꼼꼼히 뜯어보자 틈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로 새어드는 격한 감정들, 난 그것을 집에 가만히 가둬두지 않고 억지로 품고 다녔다.
새어드는 빗물은 강한 빗줄기가 내리는 날이면 틈새를 비집고 흘러 머리로 떨어졌고 결국엔 얼굴을 적셨다.
그날도 억지로 너를 품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우산을 잃었다.
그것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6호선과 7호선이 있는 태릉입구역에 유실물 센터가 있다. 태릉입구역의 화장실에 우산을 두고 왔으므로 유실물 센터에 가면 반드시 찾게 될 것이다.
평소에 유실물 센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이 있다.
어두운 공간, 먼지를 품은 채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의 공간.
내가 그곳에 들어서면 조명이 켜지고, 나는 나에게 속한 것을 찾아 천천히 선반을 둘러본다.
마침내 그것과 조우하고 나면, 채워지는 마음과 함께 그곳을 나선다.
그러고 나면 유실물 센터는 다시 어둠에 잠긴다.
환상에 젖은 채 유실물 센터에 들어선다.
똑똑.
문을 열자 유실물 센터에 어울리지 않는 환한 조명 아래 두 명의 직원이 사무적으로 앉아있다. 잠시 당황하는 나와 직원의 눈이 마주친다. 그들이 역무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물건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공간을 간이역에 비유한다면 그들은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역무원이 맞다.
“어떻게 오셨나요?”
당황한 나는 애써 기색을 감추고 밝게 인사한다.
“우산을 잃어버려서 찾으러 왔는데요.”
그들은 매뉴얼대로 행동한다. 나에게 우산을 잃어버린 날짜와 장소, 그것의 생김새를 묻는다. 나는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하고 그들의 답을 기다린다. 그들은 컴퓨터로 물건을 찾는다. 환상 속의 기대대로 유실물이 있는 창고에 초대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긴 우산은 없어요. 죄송해요.”
“아, 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환상이 깨져버렸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지 2분도 채 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우물쭈물하는 나를 그들은 채근하지 않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나의 눈빛을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또 다른 말을 전한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너덜너덜한 상처투성이의 속말.
마음을 놓고 갈게요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유실물 센터를 나선다.
지지부진한 사랑의 유실.
나는 유실물 센터에 너를 두고 나온다.
꺼내어가는 것은 너의 몫이다.
모든 일은 갑자기 일어난다.
다 너 때문이다. 이 답답증은.
그래서 묻기로 했다.
이곳에.
여기에.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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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우산 (by 에픽하이 (Feat. 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