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큐마 Mar 06. 2022

하얀 방과 차차차

나는 왜 글을 쓸까? 당신은요?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멍청한 짓은 모두 혼자 있는 것을 견디기 못해 일어난다” 유튜브 세상에서 내가 현인으로 모시는 곽정은 선생님께서 하신 말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지저스. 이거 나잖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을 때 나는 늘 누군가의 품으로, 맛있는 술과 음식으로 도피했다. 누군가의 품은 나에게 훌륭한 안식처였다. 틈새 없이 남자를 사귀고 남은 시간에는 여자들과 무리 지어 술을 마셨다. CC도 하고, 밴드도 하고, 친구들이랑 몰려다니고. 웃고 있지만 불안한 나날이었다. 나는 나를 똑바로 보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나를 나만의 방에 버려두고 문을 잠갔다. 그 키는 당시에 사귀던 사람에게 줘버렸다.


이별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경상도로 내려오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오, 망했다. 이제부턴 정말 혼자군.” 굳이 서울로 매주 올라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다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나는 인간이 모두 혼자라는 당연한 명제를 강제로 껴안았다. 가끔 나의 삶은 시뮬레이션 같다. 하얀 방 안에서 퀘스트를 깨다 절망하고, 내 목소리만 홀로 하얀 방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어도 철저히 혼자다. 마치 그렇게 설계된 것처럼 말이다.


홀로 타지 생활이라는 하얀 방에 있다가 문득 내 손을 내려다봤다. 내 손안에 키가 쥐어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을 찾아가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내가 버려뒀던 나는 그 상태 그대로 방안에 있었다. 방치해둔 나 자신은 나를 갈아먹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가 버거웠다. 이미 몇 번 나에게 배신당한 나는 관심이 필요한 갓난아기처럼 굴었다. 낮에는 어른인 척 몸에 힘을 주고 살았고 밤에는 갓난아기처럼 아파했다.


어느 날 하얀 방에 퀘스트처럼 노트북 한 대가 들어왔다. 옆에는 책 한 권도 놓여있었다. 인생이 원래 이렇게 괴로운 것인지 물어볼 사람이 없어 책을 무작정 읽었다. 내가 나인 것이 짜증 날 때는 정여울 작가님의 책을 읽었고, 인생의 고통에 몸부림칠 때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고, 그냥 무작정 괴로운데 넷플릭스에 질렸을 때는 온갖 에세이와 신간을 읽었다. 그러다 쓰기 시작했다. “아! 나 원래 작가 하고 싶었지?” 쓰면서 깨달았다. 하얀 방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경쾌하게 타자 치는 소리가 울음소리를 대신했다. 아니, 사실은 두 소리가 사실은 협주곡처럼 함께했다. 나는 노트북이랑 책이랑 차차차를 췄다. 원이 책, 투가 노트북, 차차차는 내 타자 소리랑 울음소리다. 원 투 차차차, 원 투 차차차.


그렇게 살만 한 가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마추어 차차차 인간이다. 차차차로 버거울 때는 무심결에 카톡을 보낸다. “선생님, 저 이렇게 사느니 그냥 그만둘래요” 가장 힘들던 어느 날이었다. 내 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좋아하던 교수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는 늘 그를 쌤이라고 불렀다. 그는 “안돼!!!”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날 저녁에 나에게 전화를 거셨다. 인생의 한 페이지에 그렇게 혼자 모든 걸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말로 나를 달래 부산에 보냈던 그였다. 그날의 통화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생각보다 우울한 나에게 쌤이 당황하셨다는 것만은 선명하다.


꽤 많은 계절이 지나고 쌤이 뜬금없이 부산에 왔다. 우리는 광안대교가 보이지만 유달리 대학가의 허름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쌤은 앞에를 보면 왕십리인데 옆에를 보면 광안대교라면서 자꾸만 수직 각도로 몸을 틀고 술을 마셨다. 보리굴비를 매달아 놓고 보면서 꽁보리밥 먹는 꼴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각자의 추억을 말하다 갑자기 쌤이 말을 꺼냈다. “너 그 선배 아니?” 제자 중 한 명이 자살했다고 했다. 그가 다니던 곳은 유명한 언론사였는데, 가장 정의로워야 하는 곳에서 산재처리를 피하고 있었다.


“살자. 살아야 복수도 하고, 살아야 비난도 하고, 살아야 저주도 해.” “무조건 살아야 해. 그러니까 너무 못 다닐 것 같으면 그만둬. 내가 술은 계속 사줄게.” 나를 똑바로 보지 않고 저 멀리를 보며 그가 말했다.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오셨구나 싶었다. 추임새처럼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 학교에서 동기들과 같이 공부를 했던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고 다녔던 그가 너무 나와 겹쳐 보였다. 동시에 한 명이라도 살리려는 생각으로 그가 타고 온 철로가 너무 버거워 보였다. 그를 호텔로 보내고 나는 선배 집에 가서 술을 더 마셨다.


“쌤이 저 죽지 말라고, 그 말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봐요 선배” 수영강이 훤하게 보이는 선배의 거실 창문에 코를 박고 나는 말했다. “맞아 그러니까.” 선배가 식탁에서 술을 머그컵에 따르며 말했다. “야! 너, 우리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가. 너는 어린애가 왜 그렇게 애늙은이 같냐?” 갑자기 선배가 언성을 높였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우리 생각하지 말고 나가기로 나랑 약속해. 이 회사 그냥, 네가 이용해. 가스 라이팅 당하지 말고, 너무 열 내고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 에너지 아껴서 더 좋은데로 가. 뒤돌아보지 말고. 너 나 신입 때보다 힘든 거 알고 있으니까, 알았지?” 눈물이 고이려고 했지만 나는 농담을 했다. 그렇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는 펑펑 울면서 이 글을 쓴다. 각자의 최선으로 나를 위로하려는 어른들이 고맙다.


혼자인 것이 버거운 나에서 혼자인 것이 자연스러운 내가 되기까지, 나는 내가 받은 위로들을 글로 적는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자신만의 하얀 방이 조금 더 견딜 만 해지길 바라면서 적는다.

이전 09화 우리 엄마는 토끼인데, 저는 호랑이입니다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