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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마 Apr 03. 2022

고통스러운 셀프 덕질

저는 그냥 파충류 인간일 뿐인데요

이 지역에 비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닌데, 오늘따라 비가 온다. 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비 오는 날에 나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서 생각하려니 한 없이 삐딱해진다. 이 글은 형벌이다. 글 모임 친구들이 나에게 내린 형벌. 사소한 일도 내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나에게 나 스스로에 대해 좋아하는 점을 써보는 것은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도 그들이 나에게 주는 애정에 화답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어 글을 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종종 내 장점이 없는 것처럼 느낀다. 


거울을 본다. 나는 일단 내 눈을 좋아한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미모는 수직 상승했다. 한 살 때부터 있었던 나의 쌍꺼풀은 4살 때 자취를 감췄고, 곧 생길 거라는 엄마의 말을 20년 동안 들었다. 그 말을 믿으며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24살이 되던 해, 쌍꺼풀이 정말로 생겼다. 젖살이 빠지면서 눈에 있었던 작은 주름들이 힘을 내어 쌍꺼풀이 된 케이스다. 우리 엄마는 정말 두껍고 예쁜 쌍꺼풀을 갖고 태어났다. 그런 엄마의 피를 뒤늦게 물려받을 수 있어서 아주 자랑스럽다. 


또, 내 눈은 정확하다. 약간의 심미안이라고나 할까. 디자인을 했던 엄마의 피를 아주 조금 물려받은 것 같다. 아빠 피가 눈치 없이 섞인 때문인지 직접 그리거나 만드는 데는 영 소질이 없지만, 무언가를 보고 좋고 안 좋고는 기가 막히게 알 수 있다. 콘텐츠를 보는 것에 있어서도 나는 꽤나 날렵한 눈을 갖고 있다. 어떤 콘텐츠를 볼 때 숨겨진 메타포를 찾아내거나, 보완했으면 좋겠는 점들을 손쉽게 찾아내고 설명한다. “모든 PD가 눈이 좋지는 않은데, 새우는 눈이 정확해.” 선배들이 나에 술 먹고 한 이야기다. 나는 내 안목을 꽤나 믿는다. 동물적인 직감으로 움직인다.


맞다, 나는 파충류 인간이다. 주위와 손쉽게 공명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더울 때는 같이 더워지고, 추울 때는 같이 추워지는 그런 사람이다. 형체는 그대로 유지한 채로 내 안의 온도를 그 공간에 적절하게 맞출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무례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을 잘 만들지 않는다.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 까 봐, 내 무지가 있는 영역은 조심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지금 나의 친구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무언가에 대해서 모를 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려고 한다. 변영주 감독님은 동물이 나오는 신을 찍을 때 그들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찍었다고 했다. 그것은 감독님이 동물 옹호자가 아니라, 동물을 무서워하고,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조심스러운 태도야말로, 내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가끔은 과도한 자기 확신이나 조심성 없는 태도가 사람을 해친다. 


그리고 나는 늘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떤 경험을 극복해내는 것은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겪어내는 일”이라는 오은영 선생님의 말을 자주 곱씹는다. 나는 살면서 어떤 상황을 피하거나 포기하기보다, 조금 바보 같더라도 그 상황이 나를 통과하게 내버려 두는 편을 늘 택했다. 떨어질 것 같아도 반장선거에 나가거나, 질 게 뻔한 대회에 나가거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힘듦을 느끼면서도 완주한 많은 활동들이 그랬다. 무언가를 잘 포기하지 못하는 성격과 조심성이,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불편함의 감각을 만들었고, 그런 내 성격 때문에 나는 작은 실패와 작은 성공을 반복하며 늘 앞으로 나아간다. 


또, 나는 의외로 씩씩하다. 전생에 아프리카 스트리트 출신 파충류였던 걸까? 해보고 싶은 것은 부딪혀보는 면모가 있다. 미친 듯이 해외에서 일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돌려서 진짜 일을 해보거나, 조심성 있는 파충류 치고는 꽤나 저돌적이다. 이 직업을 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비슷한 일들을 해보고, 결정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 일을 하기 위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커리어 또한 내가 좀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모여서, 그렇게 좋고 싫은 선택을 반복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과정이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나는 “오프”가 잘 되는 편 인 것 같다. 오프를 하기 위한 나의 시그널들을 곳곳에 심어두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잠깐 산책을 하거나, 나는 식물과 같아서 쉽게 햇빛을 보면 행복해진다. 혼자 사는 내 방이 있다는 그 자체도 나에게 행복을 준다. 그렇게 다양하게 조금씩 조금씩 오프 스위치를 심어둔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맥북과 글도 내 오프 스위치 중 하나다. 행복을 심어두어야, 큰 행복을 심어두어야 어떤 일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김경일 선생님의 말을 신봉한다.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해야 다음 주의 힘든 일을 극복할 수 있다. 아픔을 견디고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한다. 


글을 다 썼더니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다. 친구들이 시켜서 억지로 잘난 척 좀 해봤다. 결론은 나는 눈이 좀 예쁜 아프리카 스트리트 출신 파충류인 것 같다. 파충류의 매력은 물렁물렁한 몸에서 계속 허물을 벗어가며 점점 딱딱한 몸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평화롭게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는 여정 속에서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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