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Q&A 세션 절찬리 진행 중
내 글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쟤 절대 퇴사 안 할 것 같지?” 하는 부류와 “정말 곧 퇴사할 듯!” 하는 부류다. 아마 그 어떤 클라이맥스를 향해 글이 달려가는 느낌이 드는 가보다. 내 글 모임의 친구들은 내가 이 일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예스 시발 킵 고잉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저 정도면 그만둘 수도 있겠는데?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냥 이직을 하면 되는 일이라고 한다. 재밌다. 마치 다음 편을 알려주지 않고 끊어버린 드라마 작가가 된 기분이다. 카페 베네 로고와 익숙한 BGM을 상상해보자. "커 쥬 얼 마이 걸~"
그래서 준비했다. 셀프 Q&A 세션이다. 아직 결말을 내리지 못한 드라마 작가에 내려지는 형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아직 어떤 인물을 살릴지, 죽일지, 결정하지 못했다. 아잇, 솔직하게 고백하는 거다. 중간에 이야기에 말렸음을 인정하고, 휴재를 때리고 독자들의 Q&A를 받는 웹툰 작가랑 비슷하다. 나도 내 나름대로의 셀프 Q&A를 진행해보려고 한다. 주로 많이 받은 질문 순이다.
#S1. "아직 다니는 이유가 뭐야?"
몇 주 전, 나는 초롱초롱한 얼굴로 친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주를 공부했다는 친구였다. 언론사를 다니면서 주변인들은 모조리 사주를 봐줬다고 했다. "나 지금 뭔가 잘못된 거지? 지금 내 사주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 힘든 거지?" 침묵이 이어지고, 친구는 곤란한 표정으로 딱 한 마디를 했다.
“너 완전히 언론인 사주임.” 그 순간 나는 책상에 머리를 내리찍었다. 사주는 몇 세기를 걸친 학문인데, 몇 세기의 통계학이 "너 지금 아~주~ 잘 가고 있어~ 의도한 바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힘든데! 아주 잘 가고 있다고?" 수백 년의 통계학이 내 미래를 가로막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나는 화로 가득 찬 사람이다.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 오행 중에 화가 가장 중심이 되는 사주를 갖고 태어났다. 화가 얼마나 많으면, 촛불도 아니고, 태양 사주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을 어디론가 쏘아 없애야 하는데, 그 방법을 잘 찾기 전에는 아마도 사회의 악을 향해 불을 쏘아 올려야 할 팔자인가 보다.
"건강은? 조심할 건 없대?" "그... 머리에 열 자주 뻗치니? 그것만 조심해." 그 직전 아이템을 하고 나서 흰머리가 5개쯤 자라 새치염색을 한 나는 소름이 끼쳤다. 머리에 열이 뻗치는 게 내가 화의 기운을 타고나서 그런 거라고?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 갑자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이마에 가끔 나던 뾰루지도, 정수리에 몇 가닥 나던 흰머리도 모두 그놈의 '화'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 좀 더 막 자유롭게 있잖아, 외국도 가고, 영화도 공부하고 그러는 건 어때? 내 사주가 뭐래?” “음… 일단 지금 네가 하는 일이 굉장히 사주상으로는 잘 맞거던? 그냥 교양 PD 하면 심심해할 거고, 시사를 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물론 화가 많아서 네가 생각한 대로 해야 하고 좀 더 예술적인 감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언론인 사주라고 보여.”
쳇. 사주에게 삐져버렸다. 그렇게 삐진 감정은 몇 주를 갔고, 오늘 김진영 작가님의 북 토크를 다녀왔다. "저도 사주를 봤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 말고 다른 일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불굴의 의지로 하고 싶은 일을, 최상위 가치로 놓고 계시다고 말했다.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물개 박수를 쳤다. "맞아요!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나도 내 가치를 생각해본다. 그전에 일단 도전해본 나를 칭찬해주기로 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니까, 두렵더라도, 온갖 곳을 찾아다니며 취재하고 촬영하고, 정치인들에게 전화를 걸고, 그런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갈등 회피형 인간이 갈등을 취재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주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일은 어쩌면 내 운명. 그러나 사주가 내 가치를 세워줄 수는 없다. 나는 내가 세운 최상위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로 유의미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지금의 직업을 통해 나는 수많은 소스들을 만나고 있다고 믿는다. 시사교양 PD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의 온갖 면을 보는 직업이 또 있을까? 한 아이템을 할 때마다 그 사안에 대해서 점점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카메라를 갖고 그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관련 자료를 읽고 그 사람에 대해 취재한다. 무엇을 부각할지, 무엇을 연출할지 고민하고 편집한다.
일은 늘 괴롭다. 그러나 계속 잘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건 내가 더 이상 잘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포기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을 오늘 북 토크에서 배웠다. 그것을 포기한다면 당연히 제약이 생긴다. 갈 수 있는 회사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가치에 반하는 일이고,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EXIT 플랜을 짜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론은 퇴사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난 퇴사하거나 말거나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김진영 작가님의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추천한다.)
#S2. "왜 굳이 지방으로 갔어?"
귀가 아프게 들어본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온갖 변화구를 통해 맞아봤다. 그냥 담백하게 물어보면 될 것을 수도권에 대한 찬양으로 말문을 여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수도권에 25년을 살았다. 수도권에 대해서는 나도 안다. 내가 잘 몰랐던 것은 경상도다. 아무튼 왜 여기에 왔느냐. 그것은 바로 운명이기 때문이고, 또 두 번째는 이 시간이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 나는 나를 믿는다. 머릿속에서 생각해보는 진로와 직접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면서 생각하는 진로는 아예 다르다. 이 시간이 조금 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연고 없는 경상도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몰랐다. 고작 교환학생을 다녀온 경험과 오랜 자취 경험으로 나는 혼자서도 쉽게 타지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분명 그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의 삶에는 내가 하는 일을 혼자 감당해내는 것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고요함을 배웠다. 지독한 고요함을 사랑해내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혼자 사는 내 공간을 나만의 취향으로 온전히 채워 넣고, 주말에는 책을 펼쳐 후루룩 읽어나가는 과정, 그러다 넷플릭스도 보고, 노이스 캔슬링이 필요 없는 고요한 나의 집. 바닥을 다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매일 든다. 나는 새로운 나와 만나면서 나는 내 바닥을 다지고 있다. 단단한 바닥을 먼저 세워야 오래가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바닥을 다지는 이 느낌이 좋다. 바닥을 쳤다는 것도 이렇게 고상하게 표현하면 있어 보인다. 바닥을 치면 그 김에 단단하게 다지면 될 일이다.
#S3. "정말 때려치워?"
일단 그저께랑, 어제랑, 오늘은 참았다. 참은 대신 계속 쓰고 싶다. 나 또한 글쓰기의 회복력을 믿기에. 내가 내 불행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다.
좋지 않은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까지 불만이 있을 때 눈을 꼭 감고 견뎌보려고 하거나, 다른 성취로 나 스스로를 현혹시켰다. 아주 잘못된 해결방법이다. 어떤 감정들은 온전히 겪어내는 것이 가장 빠르게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정을 겪어내기 위해서는 써야 한다.
쓰면서 내 불행을 명징하게 구분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내가 겪은 불행이 내가 여자여서 겪은 일인지, 내가 이 일을 하기 때문에 겪은 일인지, 내가 경상도에 있어서 겪은 일인지, 내가 나여서 겪은 일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원한 없이, 경쾌하게 나아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해결되고 훨씬 더 행복해지는 마법 같은 일은 없다. 다만, 경쾌하게 나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내가 겪어낸 불행을 통해 나는 많은 무기를 얻는다. 그 무기가 내 다음 스텝을 좀 더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고, 그 무기를 통해 행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낼 힘이 생긴다.
큐엔에이 세션은 끝났다. 나는 내가 이 과정 속에서 내가 불안정이 두려워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불안정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단 한 가지, 내 51%의 확신이 필요할 때까지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들은 내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한 그 목표를 달성한 이유에도 내 삶은 여전히 불안정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타지에 있다고 해서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친구가 있다. 잠시 멀어져도 다시 다가오는 친구들이 있다. 매일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매일 행복한 사람도 없다(고 이효리가 말했다. 어쨌든 나는 나에게 찾아온 작고 소중한 불행을 다정하게 이름 불러주고 싶다. 그래야만 조금 더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두려워하지 말기를, 스스로에게 가장 큰 시어머니가 되지 않기를, 조금 더 너그럽고 지금 더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쓴다. 언젠가 시나리오가 되길 바라면서, 꼬박꼬박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