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처음이라, 그런 핑계가 통하지 않는 세상

공모전보다는 공부전, 가장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by 파르르

2016년 7월, 동아리를 수료하는 엠티의 현장에서 나는 기어이 울고야 말았다. "야 나 잘해볼게. 잘 해낼게." 다음 기수를 이끌어 갈 회장이 됐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계속 일종의 정치질을 당해왔으니까. "광래가 다음 기수 회장이지."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밀어냈지만, 욕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훌륭한 집단에서 리더가 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한 기회 같았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올지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와 의지를 함께 해주기로 한 친구들과 함께 7명의 운영진을 꾸렸다. 그렇지만 첫 단추부터 삐걱해버렸다. 나는 홀연히 인도로 떠났고, 그동안 회장이 될 생각도 없던 다능이가 회장의 몫까지를 해내야 했다. 인도에서 주기적으로 주고받는 연락 속에서 다능이는 매번 말했다. "오빠, 거기서는 여기 생각하지 마. 근데 돌아와선 각오해 진짜." 나만 믿으라고 말하던 놈이 운영진을 조직하자마자 홀연히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한 달 반 동안 연락도 잘 안 되는 인도로 가버렸다. 동아리를 시작하는 첫 순간인 모집 홍보 기간을 내팽개치고 나는 홀연히 인도로 갔다.


귀국 후에 말 그대로 캐리어만 내려두고 강남 할리스로 향했다. 홍보 기간에 대한 피로함을 가득 안은 운영진을 만나러 떠났다. 양심과 죄책감으로 찾아간 것이면 다행이었지만, 사실, 문제는 생각보다 심했다. 모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고, 우리는 그 해 모집에서 최악의 지원율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내 탓 같았고 내 탓이었다. 그래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일단 지원한 사람들을 바탕으로 잘 해내 보자고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내 존재였으니까.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이 정상화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때부터 리더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과 책임에 대해 생각했다. 리더의 존재는 무엇일까. 리더는 어때야 할까. 그렇지만 적어도 리더는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해결이나 위로를 건네주지는 못하더라도 존재만큼은 해야 하는 것. 존재가 중요한 사람이란 것이 리더의 어려움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존재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홍보가 망한 것은 기우였던 듯, 다행스럽게도 지원자의 퀄리티가 높았다. 이때 뽑은 친구들은 차기에 운영진으로 이어지고 역대 동아리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황금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아직도 그 초석에 내가 있었고, 그들이 내게 감사를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띨 수 있다. 그렇지만 퀄리티 높은 지원자 때문에 '기가 죽는' 운영진들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실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운영진에게 그것을 강제할 수는 없었고 나는 나를 바꾸는 것이 중요했다.


합격자 발표를 진행하고 난 순간부터 나는 서점에 존재하는 기획 책은 전부 사서 읽었다. 기획의 정석,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기획은 2형식이다 등 현업 기획자들이 쓴 비법서를 정독했다. 온라인으로도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은 다 수집했다. 한때는 수상작이 공개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뒤져서 수상자들에게 구걸하다시피 수상작을 수집했다. 콘퍼런스와 교육 세션에 누구보다 많이 찾아갔다. 이때부터 광고회사 건물에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익은 곳으로 향하게 된다고, 결국 광고회사에서 일하게 된 것을 보면. 어쩌면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이뤄지는 듯하다.


또한 나는 카리스마에 대해 공부했다. 내겐 수많은 독서로 달련된 지식도, 분석을 통해 키워낸 감각도 있었지만 수상 실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눈 앞에서 기획서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래서 자신감을 키우고 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정답인 것처럼, 마치 나의 말을 들으면 다 해결될 것처럼. 힘을 줘서 말하고, 눈과 손에 족쇄를 담아 청중을 끌어당기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아리는 흔들릴 것 같아서. 결국 부족한 내 실력과 센스가 들춰질 것 같아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동아리는 기수 상 최초로 이탈자가 없는 기수가 되었다. 또한 동아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운영진 모집, OB회 결성, 초청 강의 등 교류 활동이 강화되었다. 이는 수상 실적으로 이어져서 이후 기수에서는 매 공모전마다 높은 실적을 차지할 수 있었고 약했던 경쟁력을 극복해서 어느새 '잘하는 동아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한 운영진들은 지금까지도 힘들었다고 말하고, 외로웠다고 말하고, 내가 일반 회원만 신경 쓰는 모습에 상처 입었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사과를 해보아도 부질이 없다. 우리는 천천히 멀어졌다. 아이들이 착해서 다행이었지만, 나는 죄책감을 씻을 수 없었다.


또 하나의 실패는 동아리에서 내가 가지게 된 '상징성'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기수를 운영했더니, 이후 운영진들도 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그와 동시에 나도 동아리에 대한 애착이 심해졌다. 애정을 넘어선 애착, 동아리에 헌신하겠다는 목표로 동아리를 잠식해나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절대적인 의견을 가지게 되는 것, 어쩌면 처음부터 동아리를 '잘' 해내겠다는 말이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왕이 되고 싶었던 듯하다.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많은 것들이 용서가 됐다. 동아리는 매 기수마다 10개 정도의 수상 실적을 쌓아 올렸고, 모집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또한 실력자들이 계속해서 자라났다. 이제는 어느 회사의 마케팅 팀을 보아도 우리 동아리와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씩은 있다. 그들이 나의 자부심이며, 행복이자 유일하게 남긴 유산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잘난 것이지, 내가 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냥 리더가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는데. 처음이라고 용서받기엔 다음이 없을 뿐이었다.




공모전 tip.

공모전을 하면서 항상 리더와 팔로워를 결정하게 됩니다. 아무리 팀이라고 해도, 모두가 동등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게 되면 결국 중요한 때 선택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기획의 과정은 누군가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 피 튀기는 설득을 통해서 결국 더 알맞은 답을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더욱 리더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필요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의견을 내지 않더라도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하는 일을 조율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겠죠. 공모전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내가 낸 의견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팀의 의견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합니다.


팀 내부에서 누구 한 명이라도 의견에 동조가 안된다면 발생하는 문제는 '태업'입니다. 일과 달리 공모전은 명확한 보상이 없습니다. 열정 페이가 한 때 유행인 적이 있었는데, 공모전은 그 열정 페이의 온상입니다. 사실 따져보면 적자뿐이죠.(카페 등등..) 그러니 더 팀을 하나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리더는 그런 존재입니다. 절대 자신 위주로 편성하지 마세요. 모두가 하나가 될 방법을 고민하세요.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의 생산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한 연습입니다. 만약 자신 없다면 혼자 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본인의 욕심이 '함께 좋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인지, '많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인지는 확실하게 했으면 해요. 물론! 회사에선 혼자 하는 일이 없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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