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왜 나는 그 얘기를 안 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그걸 하는 사람은 많이 없으니까요

by 파르르

2017년 5월, 몸풀기로 공모전을 하나 준비하자는 연락이 왔다. 목표는 HS애드 공모전, 그전에 있을 한국투자증권의 광고 공모전이었다. 기억난다. 1회 차에 내가 도전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과감히 탈락해버린 공모전 애초에 금융투자를 20대한테 어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지금에서야 동학 개미 운동도 있었고, 주식투자에 대한 정보나 접근이 쉬워졌지만 그때만 해도 주식투자는 낯선 영역이었다.


내게 공모전을 제안한 것은 지윤-지금까지 같이 광고계에서 일하는 친구,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일머리가 좋은 AE다.-이었다. 우리는 평소에도 이야기가 잘 통했고, 일의 합이 잘 맞았다. 특히 무언가를 추진하기를 좋아하는 나와 서포팅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추구하는 그녀는 암묵적으로 서로가 도움이 될 것에 동의했다. 큰 일은 아니어도 한 번은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가 3대 공모전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전 제일기획의 실패 때문에 '이번만큼은 더 제대로'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놈의 제대로. 나는 제대로라는 말을 하지 않고서는 어떤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붙는 패시브이던가. 그냥 말만 하는 것일지 몰라도 매번 저런 자세가 도움이 된 적은 없다. 결코.


어쨌든 우리는 '제대로 하기 전에 가볍게'라는 명목으로 한국투자증권의 공모전을 선택했다. 주제는 20대에게 한국투자증권을 마케팅하는 것. 단순한 목표가 제일 어렵다. 어떤 것이던 된다는 말이지만, 어떤 것이던 상을 주겠다는 말은 아니다. 우린 말 그대로 스몰 아이디어로 전단지를 만들 수도 있었고 빅 아이디어로 하나의 큰 캠페인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논리와 콘셉트에 더 집중했다. 대체 왜 금융투자를 안 하는 것인데? 실제로 찾아보니, 한국투자증권은 투자 우수성이 높은 기업이었다. 운용 자산도 많고 안전 수익률도 높았다. 한마디로 금융 투자의 파트너로 선택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기업이었다. 아니, 누군가 금융투자를 맡긴다면 한국투자증권에서 하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탄탄했다. 그러니 더욱 문제는 명확해졌다. 20대는 금융 투자에 관심이 없었다.


원인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아버지가 하지 말래서.' 모범생 타입부터, '패가망신한 친척이 있어서.'까지 안 하려면 이유도 많았다. 그냥 귀찮아서요.라는 대답도 은근히 많았다. 아니 기준금리가 2%대에서 놀고 있는데. '투자를 안 하고 일반 저축만 하는 게' 말이 되나 싶으면서도. 나도 그러고 있었다. 명확하지 않고, 개인적이고, 다채로운 이유로 투자를 안 하고 있었다. 통합되지 않으니 한 가지 이슈를 선택해서 해결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우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웰빙 문화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또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자기 계발 문화가 머리를 뎅- 하고 건드렸다. 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처럼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일까. 거기다 웰빙은 고통스럽기까지 하잖아. 맛없는 것들을 먹고 운동을 하는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했다. 도서관에서 자격증을 준비하는 것도, 단순히 취업에 필요해서 한다기엔 뭔가 더 강력한 동기가 있어 보였다. 취업은 말마따나 그냥 아무 곳에서 일하는 것도 취업이긴 하잖아.


모든 것들은 하나로 귀결됐다. '더 나은 미래'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 운동도, 공부도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모전들도 사실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하다 보니 광고에 대한 애정이 생긴 건 맞지만 출발은 분명 그랬다.


그런데 사실 투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다. 대학생이란 녀석들 사실은 투자를 좋아하고 있던 것이었다. 대학생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투자와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발견해낸 순간, 자연스럽게 유레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만 제시하면 됐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생각을 이끌기로 했다. 퀘스천이라는 책이 도움이 됐다. 그렇게 우리는 한 가지 질문만으로 콘셉트를 이끌었다.

"지금 투자 중이신가요?"


사실은 투자 중이었던 20대. 금융 투자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줄 수 있었다. 누구보다 투자를 잘하는 사람들이니까. 한 친구는 이 논리를 보고 비웃었다. 뻔한 말 아니냐고. 근데 생각한다 뻔한 말인 건 맞는데. 뻔한 말이여도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으면 가치가 있지 않냐고.


내가 작업한 기획서 중 가장 유명한(애들 사이에서만) 2017 DCA광고대상 '칠성사이다' 기획서도 같은 맥락을 취한다. '사이다 트렌드'가 시원함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겠냐고. 왜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통쾌함에만 반응하는 거냐고. 무책임한, 깔끔하지 않은 사이다가 더 큰 피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기획서를 만들었고 수상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대상을 타지 못했다. 한국투자증권에서 대상을 탄 기획서는 어떠한 논리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광고도 아니었다. 혼자 참여한 그분은 기획서 내내 한마디만 하셨다. "한국투자증권 디자인이 안 예뻐요." 그래서 그는 디자인을 아예 싹 다 다시 해서 앱, 웹을 구성해왔다. 지윤이는 "저건 광고가 아니야, 우리가 정통 광고로는 1등인 거야. 자부심을 가지자."라고 말했지만 나는 내심 부러웠다. 광고주 앞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패기를. "해야 할 말을 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느냐"라고 말했지만 정작 말하지 못한 것은 나였다.




공모전 tip.

공모전은 기본적으로 주최사의 의도를 맞추는 게임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주최사의 의도에 맞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있지만, 어떤 것들은 이해관계에 의해서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EX, 위 사례에서 한국투자증권의 디자인이 별로였다는 점.)


그래서 목적의식이 중요합니다. 기획은 2형식이다(남충식 저)에는 목적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입사원들이 '기획의 원리'를 알면 얼마나 알까요?
그들은 '진정성' 하나로 기획한 것입니다.

옆에서 멘토로서 지켜본 바,
그들은 '경쟁 PT의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기획한 것이 아니라,
정말 청각장애우들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겠다는
순수한 '목적의식'으로 기획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 그들에게 저도 많이 배웠죠.
기획에서 '목적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획은 2형식이다. 남충식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획에 임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기획을 잘하고 싶은 거지. 고작 이번 수상에서 멈출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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