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라

공모전을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

by 파르르

2020년 3월, 멈췄던 공모전 사이클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제일기획부터 HS애드, 대홍기획까지 나는 또다시 돌아온 3대 공모전의 바다에 나를 던졌다. '이젠 제발 한 번만!' 기획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특히 제일기획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4년 동안 제일기획에만 10개가 넘는 기획서를 냈는데.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HS애드라고 다를까. 나는 내가 가진 것보단 가지지 못한 것들에 집중했다. '대홍기획에서 금상을 탄 사람' 너무나도 오래돼서 이제는 저 타이틀도 유명무실했다. 그 이후로 벌써 3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삐그덕 댔다. 나는 팀원이 낸 아이디어가 내게 만족스럽지 않으면 예민해졌다. 그래 놓고 나도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오지는 못하면서, 더 생각해오라고 면박을 주곤 했다. 한 번은 "원래 이런 게 잘 먹혀."라는 말을 던져버리고는 그 말을 했는지조차 몰랐다. 당시 함께하던 팀원이 지적해준 덕분에 깨달았지만, 그때부터 알아차렸다. 이제는 이 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더 이상 팀원이 아니었다. 과거의 영광으로 팀을 좀먹는 벌레였고 꼰대였다. 우스꽝스럽게도 그때 다루던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의 콘셉트는 꼰대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꼰대면서 꼰대에 저항하는 콘셉트를 만들었다. 팀원들이 말하던 '네이티브한 꼰대의 느낌'은 어쩌면 진심이었다.


그 해, 나는 이노션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도 참여했다. 이전에 같이 KPR을 했던 친구들과 다시 합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잘라냈다. "이건 별로야.", "이건 새롭지 않아." '알만큼 아니까 이제는 설명이 불필요하지?'라는 태도로 자꾸만 잘라냈다. 그래 놓고 결국엔 좋은 아이디어 하나 내지 못했다. 나는 그냥 공모전을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을 때 선택해야 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허접으로 시작하거나. 아니면 멈춰서 그때의 영광을 추억 삼아 술이나 마시면 됐다.


그런데 나는 그 세상에서 계속해서 영광을 이어나가려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을 잘 알고, 열심히 할 마음도 없었으면서. '사실은 취업이 잘 안돼서 그래.'라고 핑계를 대보려 해도. 충분히 일할 기회들은 있었다. 나는 그냥 1등이 되고 싶어서, 1등이 아닌 것들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시작부터 1등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대장 노릇에 심취해서 중학교로 가고 싶지 않던 초등학교 6학년처럼.


결국엔 사건이 터졌다. 팀원이 내게 눈물을 보였다. "광래님은 왜 자꾸 저를 평가하냐고. 그리고 왜 자꾸만 내 아이디어를 무시하냐고." 절대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말로 변명해보려 해도 그게 맞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상황 판단이 빨랐고, 나는 나쁜 사람이었다. 실수도 아니었고 잘못이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그러니 용서할 권리도 너의 것이라고. 나는 그냥 이번 죄를 담고 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것이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8월이 되고 DCA 광고대상까지 나는 공모전 활동을 이어갔다. 아예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건 맞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래도 해봤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오만했다. 그렇게 DCA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그럭저럭 쓸만한 크리에이티브 5건을 냈다. 디자이너 두 명이 그렇게 고생했고, 나는 그 고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 고생했다는 말로 팀 플레이를 마무리하려 했다.


"오빠랑 하는 것 솔직히 힘들었어. 팀이 아니라 클라이언트랑 공모전을 하는 느낌이었거든." 공모전을 끝내고 함께 했던 팀원 혜린이가 내게 말했다. 이번에도 나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 나는 나쁜 사람이었고 잘못된 사람이었다. 내가 추구하던 함께 즐겁게 기획에 빠져보는 팀 플레이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전장의 흉터를 보여주며 괜스레 이두와 삼두에 힘을 주는 해병대 할아버지 같았다. 사실은 해병대도 아니었고, 흉터는 넘어져서 생긴 그런 사람 말이다. 다만 이번에는 반복된 잘못에 더 이상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공모전을 하지 않는다. 무리해서 참여한 공모전들이 나를 힘들게 했고,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 나는 공모전이 주는 높음에 취해서 자꾸만 돌탑을 쌓았다. 본래 돌탑은 평평한 돌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인데, 나는 그저 돌을 쌓는 것만을 생각했다. "어때 높지? 잘났지?" 하는 내 과거가 생생히 들린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영광의 순간이, 가장 잘 나갈 때가 새로움에 도전할 때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공모전에서 충분히 박수받았다. 그런데 그 박수가 좋아서 떠나기 싫어했다. 마침 새로운 세상은 내 생각대로 열리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속한 우물에서 영원한 왕으로 군림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늦었지만 과감히 왕관을 부쉈다. 내리쬐는 태양이 두려워서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선크림을 덜 바른 채로 우물 밖으로 나왔다.


우물 밖은 역시나 뜨겁다. 시도 때도 없이 차오르는 업무들이 나를 태우고, 그 안에서 불안한 관계들이 휘청거린다. 그렇지만 이곳에도 그늘과 오아시스가 있다. 역시 우물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 물론 이 우물도 영원하지는 않으리, 그렇지만 그때만큼은 가진 것을 버리고 뛰쳐나가리. 까맣게 그을린 내 피부가 자랑스러운 도약의 증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




공모전 tip.

공모전에서 충분히 도전해봤다면, 그 기록들을 꼭 정리해두세요.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 공모전에서 배운 것들과 공모전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기록하세요.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가치를 두는 것은 여러분의 수상 실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정말 허무하게도 공모전 수상이 주는 메리트는 정말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공모전에서 많이 상을 탄 사람들이 취업이나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잘하고 있고 멋지게 지내고 있는 이유는 수상 실적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과 삶을 배우고 더 많은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니까요.


공모전이라는 우물에 막 들어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다음 도약을 위해 뛰쳐나올 순간을 응원합니다. 마음껏 부딪히고 깨져보세요. 다행히 이 곳의 바닥은 꽤나 푹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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