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들롱이 죽었다. 아빠는 알랭 들롱에 관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미남’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전축 장식장 틈에 쌓아둔 카세트테이프 중에는 날개 윗부분에 알랭 들롱의 얼굴 사진이 인쇄된 파란색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다. 작은 조각 사진만으로도 아빠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본 알랭 들롱의 첫 영화는 <태양은 가득히>(1960)다. 물론 영화나 알랭 들롱의 미모보다 각인된 건 귓가를 맴도는 동명의 OST였다. 배우 알랭 들롱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 건 그보다 시간이 흐른 뒤, 비스콘티와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때로 음악은 영화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그렇게 기억된 음악은 다시 영화를 꺼내 보게 한다. 그에 관한 가장 적절한 사례가 ‘고엽’이 아닐까. 고엽의 원제는 ‘Les Feuilles Mortes’이며, 직역하면 ‘죽은 낙엽’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번역한 ‘Autumn Leave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브 몽땅의 ‘고엽’을 알게 된 건 아빠로 인해서였다. 참 좋다고 말씀하신 노래 중 ‘고엽’이 가장 귀에 박혔다. 아버지는 그처럼 쓸쓸한 정조를 가진 분위기 있는 노래를 좋아하셨다. 엄마는 청승맞다고 싫어하셨지만,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도 아빠가 참 좋아하신 노래다. 그렇지만 두 분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얼굴’을 노래방에서 듀엣으로 부를 때만큼은 동그랗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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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폴른 리브스Fallen leaves>(2023,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다른 이름)의 마지막 장면에 전율했던 건 뒤이은 엔딩 크레딧에 흐르던 노래 때문이었다. 그것은 ‘고엽’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노래, Les Feuilles Mortes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영화의 제목을 마주한 순간부터 관객이 떠올릴 그 노래를 아끼고 아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풀어놓는다. 무엇보다 내게 그 노래는 마치 아빠가 보낸 텔레파시처럼 느껴졌다.
‘고엽’이 삽입된 마르셀 카르네의 1946년작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은 이 노래의 작사가인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시나리오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야간문’으로 소개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상처가 아물지 않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서로 돌려줄 것과 돌려받을 것이 남은 사람들이 운명으로 얽히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가수로 먼저 알려진 이브 몽땅으로, 그의 데뷔 초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젊은 시절 이브 몽땅의 모습이 꽤 괜찮았다.
등장인물 중 영화 안에 있지만, 바깥의 개입처럼 보이는 이름 없는 남자가 두드러진다. 그 남자를 연기한 장 빌라르는 유명한 연출가 겸 배우로, 아비뇽 연극제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극 중 그는 걸인이자, 관찰자이자, 예언자이면서 이야기의 운명 그 자체다. 그는 마치 연출자가 개입하듯 영화 속 인물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경고한다. 그러나 그의 경고는 그가 말한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는 운명의 설계자이자 그로부터 인물을 구하는 구조자라는 모순된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고엽’을 연주하며 이브 몽땅이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이브 몽땅이 무대 위에서 각 잡고 노래하는 장면은 없다. 다만 친구의 가족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들려오는 멜로디에 잊었던 가사를 기억해 내고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등장할 뿐이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아쉽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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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을 통해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돌아보며, 두 영화를 연결하는 노래가 단지 배경음악으로만 거기 놓인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방금 병원의 문을 열고 나와 길 위에 선 사람을 보여준다. 병원이 결말부에 두드러진 주요 장소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두 영화를 일종의 대구로 묶어보게 된다. <밤의 문>이 비극적 운명의 체념적 수용으로 향해간다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비극의 문을 열고 나와 끝내 희극을 선택한다.
(<밤의 문>의 줄거리에 관한 자세한 묘사가 있습니다.)
<밤의 문>에서 이브 몽땅이 연기한 디에고는 병원에서 남편 게오르그의 총에 맞아 급히 수술대 위에 오른 연인 말루를 기다리는 참이다. 디에고는 그날 밤 말루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강력한 운명이 둘을 단단히 묶는다. 말루가 총상을 입은 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게오르그가 쏜 총은 말루의 동생 기의 것이다. 기는 과거 나치에 협력해 디에고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이웃인 레이몽을 밀고한 전력이 있다. 이 사실을 아는 디에고를 죽이고자 게오르그에게 총을 건넨 것이다. 자신의 총이 누나를 쏘았음을 목격한 기는 자신의 예정된 운명대로 기차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차를 운전한 건 레이몽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게 가장 놀라웠던 건 말루가 총에 맞은 직후에 벌어진 상황이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가 총에 맞은 상황이 묘사될 때, 대개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곁에 있던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서서히 죽어간다. 영화 속 누구도 죽어가는 사람을 진정으로 살릴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디에고는 자신이 한 일에 충격받은 게오르그를 다그치며 말루를 게오르그의 차에 실어 전속력으로 차를 몬다. 그 순간 나 역시 말루를 살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병원 수술실에서 의사가 수술을 준비하는 모습과 말루의 호흡기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숏은, 간호사가 수술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오고 디에고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간호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숏으로 점프한다. 그러나 간호사는 침묵하고, 디에고의 표정도 곧 달라진다. 그는 병원을 나와서 다시 길로 나와 천천히 걷는다. 그러는 동안 <고엽>이 흐른다. 그는 친구 레이몽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전철을 탔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다시 전철을 타고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마지막은 <밤의 문>의 마지막을 다시 쓰는 것처럼 보인다. 늦은 시각 안사를 만나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훌라파는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입원 중이다. 안사는 그를 찾아가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며 깨어나기를 기다려왔다. 마침내 그는 기적처럼 깨어나고 두 사람은 함께 병원을 나선다. 함께 걷는 두 사람의 모습 뒤로 ‘고엽’이 흐른다. <밤의 문>에서 불발된 디에고와 말루의 결합을 애도하던 노래는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 안사와 훌라파, 그리고 반려견 채플린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노래가 된다. 전자가 개인의 믿음이 이야기의 운명에 좌절되는 순간을 담았다면, 후자는 더는 개인을 짓누르는 이야기가 힘을 받지 못하는 시기에 가능해진 기적을 보여준다. 다만 과거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세계의 비극이었다면, 이제는 오늘의 기적이 우리로부터 등 돌린 채 점차 멀어져 갈 뿐이다.